세상이 점점 무섭게 변해간다. 고매한 이상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적어도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지녀야 할 것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정말 1년에 7%씩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저 아득한 숫자가 실체가 되면 우리는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저 매직 넘버가 이루어지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버리며 살아갈까? 

 

   몇 시간전에 온라인 게임에 빠져 아이를 굶겨 죽인 부모의 기사를 읽고 잠시 든 생각이다. 그 부모가 PC방에서 탐닉했던 게임은 '사이버 딸을 양육하는 게임'이었다고 한다. (기사보기)  

 

   예전에 『조대리의 트렁크』를 읽고, 말도 안 돼는 끔찍한 소설이라고 진저리를 쳤었는데, 이제는 그 평가를 철회해야겠다. 백가흠 작가님. 당신이 그렸던 세상은 끔찍한 악몽이길 바랐었는데, 이제는 현실이 되었네요. 당신도 아마 이런 상황을 바라지는 않았을테지요. 「웰컴 베이비!」, 「웰컴 마미!」는 이제 사회면 기사의 좋은 예가 된 것 같습니다...  

   무정할거면 차라리 '컴―퓨―터씹'을 하던가!

 

               새로운 시간을 입력하세요 
               그는 점잖게 말한다 

               노련한 공화국처럼 
               품안의 계집처럼 
               그는 부드럽게 명령한다 
               준비가 됐으면 아무 키나 누르세요 
               그는 관대하기까지 하다 

               연습을 계속할까요 아니면 
               메뉴로 돌아갈까요? 
               그는 물어볼 줄도 안다 
               잘못되었거나 없습니다 

               그는 항상 빠져나갈 키를 갖고 있다 
               능란한 외교관처럼 모든 걸 알고 있고 
               아무 것도 모른다 

               이 파일엔 접근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그는 정중히 거절한다 

               그렇게 그는 길들인다 
               자기 앞에 무릎 꿇은, 오른손 왼손 
               빨간 매니큐어 14K 다이아 살찐 손 
               기름때 꾀죄죄 핏발선 소온, 
               솔솔 꺾어 
               길들인다 

               민감한 그는 가끔 바이러스에 걸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쿠테타를 꿈꾼다 

               돌아가십시오! 화면의 초기상태로 
               그대가 비롯된 곳, 그대의 뿌리, 그대의 고향으로 
               낚시터로 강단으로 공장으로 
               모오두 돌아가십시오 

               이 기록을 삭제해도 될까요? 
               친절하게도 그는 유감스런 과거를 지워준다 
               깨끗이, 없었던 듯, 없애준다 

               우리의 시간과 정열을, 그대에게 

               어쨌든 그는 매우 인간적이다 
               필요할 때 늘 곁에서 깜박거리는 
               친구보다도 낫다 
               애인보다도 낫다 
               말은 없어도 알아서 챙겨주는 
               그 앞에서 한없이 착해지고픈 
               이게 사랑이라면 

               아아 컴―퓨―터할 수만 있다면!  

- 최영미 「퍼스널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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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konwho 2010-03-04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제가 사랑하는 최영미님의 시군요.
개인적으로,사랑의 절절함을 이보다 더 마음에 와 닿게하는 시인은 없더라는...
상처의 힘으로 오롯이 버텨야 하는 분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저도 뉴스보고 백가흠씨 소설 생각했었는데...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자극적이고 충격적이었던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들이
사회병리현상으로 나타나는 세상이 온 것 같아 착잡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성석제님의 글로 헝클어진 마음 좀 달래야 겠어요.

tag. 홍상수,생활의 발견!

Tomek 2010-03-04 16:37   좋아요 0 | URL
무서운 세상입니다...

근데 밑에 쓰신 tag는 무슨 뜻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