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맨 - The Wolf M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늑대인간(werewolf)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멀게는 그리스 신화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도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악마' 이미지는 중세 시대, 흡혈귀와 마녀 논쟁이 한창 벌어지던 때에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도 '늑대인간'은 많이 다루어졌는데, 그 중 첫 작품은 <늑대인간(The Werewolf)>이란 작품으로 1913년에 무성영화로 만들어졌으나, 화재로 소실,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늑대인간 영화는 <런던의 늑대인간(Werewolf of London)>으로 1935년 작이다, 1941년 <울프맨(Wolfman)>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이 영화는 <런던의 늑대인간<American Werewolf in London)>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향후 모든 늑대인간 영화의 기본이 된다. 헐리우드가 이 매혹적인 소재를 가만 놔둘리가 없다. 2010년에 개봉한 조 존스톤 감독의 <울프맨(The Wolfman)>은 1941년 작을 리메이크 한 영화다.  

 

    

<울프맨>. 왼쪽이 1941년작, 오른쪽이 2010년작. 

 

   아쉽게도 '늑대인간'이란 소재에서는,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이란 거의 없다고 해도 과한말이 아니다. 관객 입장에서 늑대인간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인간에서 늑대로 변하는 과정. 그 과정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보여주느냐 였다. 그리고 그 성취는 이미 80년대에서 다 이룬 상태였다. 

 

<런던의 늑대인간> 인간이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렇다면 <울프맨>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배트맨 비긴즈> 이후로 여러 히어로들에게 통과의례가 된 '자아의 고뇌'가 남아있다. 

   일단 <울프맨>의 시간적 배경은 19세기 말의 영국이다. 아! 19세기 말 영국에선 무슨 일들이 벌어졌던가! 산업혁명으로 도시엔 스모그까 깔리고, 어두운 밤에는 연쇄 살인범 '잭 더 리퍼'가 활동한 시기였다. 물론 당대의 명탐정 셜록 홈즈가 활동했던 시기이기도 하고, 복수에 눈이 먼 스위니 토드의 살인과 인육파티가 벌어진 공간이기도 하며, 희귀병을 앓고 있는 존 메릭의 절규 - "난 동물이 아니에요. 난 사람이에요." - 가 뿜어져나온 시기이기도 했다. 첨단과 전통, 이성과 비이성이 공존한 뒤죽박죽의 시기. 그런 때에 늑대 한 마리쯤 풀어 놓는다고 뭐가 이상하겠는가? 

 

기어이 런던에 간 (미국인) 늑대인간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미국에서 배우로 활동하던 로렌스(베네치오 델 토로)는 형의 약혼녀인 그웬(에밀리 블런트)에게서 형이 실종당했다는 편지를 받고 아버지(안소니 홉킨스)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형은 그 사이 시체로 발견된다. 형의 죽음에 대해 조사하던 로렌스는 형의 유품과 관련이 있었던 집시들을 조사하던 중, 알 수 없는 괴수에게 공격당하고 의식을 잃게 된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정신을 차린 로렌스는 어느 순간부터 몸 안의 변화를 느끼게 되고, 보름달이 뜨자 극심한 고통을 느끼면서 늑대 인간으로 변하고 그를 잡으러 온 마을 사람들을 살육한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된 로렌스는 사람들에게 잡혀가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알 듯 말 듯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서 중간까지만 정리) 

 

   영화는 두 가지 전략을 구사한다. 하나는 자신의 육체가 변하고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는 자아의 고뇌이고, 다른 하나는 늑대 인간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거대한 살육'이다. 

   첫 번째 전략은 이 잔혹한 영화에 뭔가 있어보이게 하는 것이다. 일단 주인공 로렌스는 매우 복잡한 인물이다. 히스페닉계 어머니의 죽음, 이방인으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것, 형의 죽음 등 그의 머리 속엔 온통 잡다한 트라우마가 가득 차 있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쇠약한 인물이 늑대 인간으로 변하면서 그의 트라우마 목록엔 죄의식과 늑대의 공포가 첨가된다. 게다가 그는 이런 정신적 트라우마를 해결해야 하는 동시에 형을 죽인 범인도 쫓아야 하고, 형의 약혼녀인 그웬과도 사랑에 빠져야 한다. 베네치오 델 토로는 이런 복잡한 인물을 잘 캐리커쳐 했다. 

   오히려 눈에 띄는 역할을 한 연기자는 아버지 역의 안소니 홉킨스다. 요근래 맘좋은 할아버지 역만 한 이 노배우는 오랜만에 물만난 물고기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악마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마치 <한니발>의 렉터 박사와 <드라큘라>의 반 헬싱 교수를 반씩 섞은 듯한, 우아하면서도 히스테리적인 역할이었다.   

 

웃는 듯, 우는 듯, 안소니, 안소니

 

   두 번째 전략인 '거대한 살육'은 좀 아쉬웠다. 영화에서는 총 5번의 보름달이 보여진다. 즉, 관객이 늑대 인간(의 살육)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다섯 번이나 된다. 하지만, 그 횟수는 마음에 들지만, 표현은 조금 아쉽다. 영화는 늑대 인간 영화답게, 희생자들의 팔을 자르고, 목덜미를 물어 뜯고, 머리를 날려버리고, 배를 물어 창자를 물어 뜯어내는 등 잔혹하지만, 끔찍하지는 않다. 좀 더 길게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을 정신 없이 빠른 편집으로, 그저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할 뿐이다. 어차피 R등급의 영화를 목표로 만들었으면, 좀 더 막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오히려 영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기법은 '귀신집 효과'로 정신없이 뻥뻥 터지는 음향에 있다. 동물의 왕국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고어 장면을 기대할 만한 영화이면서도 심리적인 공포를 유발하게 한 효과는 앞서 언급했던 주인공 로렌스의 '심리적'인 요인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영화는 품격이 높아졌는지 모르겠으나, 장르 영화로는 조금 아쉬운 면이 있다.

 

로렌스의 침대를 기어올라오는 '골룸(정확히 표현하자면 미친 늑대병-Lycanthrope-환자)' 장면은 <장화홍련>의 침대 씬이 떠오를만큼 아찔했다. 하지만 영화는 김지운 감독처럼 더 나가지 않고, 심리적 한계선에 다다르기 전에 멈춘다.

 

   이런저런 불평을 남겼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제외하고는 영화를 보는 내내 재미있어 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났고, 21세기에나 어울리는 주제를 19세기 말을 배경으로 하는, 그것도 장르 영화에 풀어 놓은 것도 흥미로웠다. 걸작이 될 영화는 아니지만, 나름 수작(秀作)이다.

 

 

 

*덧붙임 

집사람과 같이 봤는데, 집사람은 늑대 인간을 보더니 츄바카가 생각난다고 하더군요. 듣고보니 그럴듯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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