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치?"
"네, 충치."
오랜만에 만나서 한다는 말이 고작 충치야? 속으론 맘이 상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아니, 그려려고 노력했다. 그는 원래 이렇게 엉뚱한 면이 있었으니까. 여전하네. 16년 전에 너를 처음 봤을 때도 이렇게 엉뚱했었지. 8년 전, 겨우 수소문해서 너를 다시 만났을 때도, 2년 전, 네가 결혼하기 전에 겨우 다시 만났을 때도 넌 항상, 우리가 원하는 주제에서 벗어난 말로 대화를 시작했었지. 그래. 여전히 엉뚱해.
"의사 선생이 뭐라고 길게 얘기했었는데... 치아엔 음식물이 씹히는 교접면과 음식물이 끼는 인접면이 있는데, 제 경우엔 인접면이 다 썩었대요. 이전 치과에서 떼운 게 엉망이어서 충치가 떼운 치아 속으로 파고 들었다나? 그래서 다 들어내고 치료한 후, 새로 씌워야 한대요."
술술술 재미없는 말도 네 입에서 나오니 감미로운 노래처럼 들리는구나. 예뻐. 아, 지금 당장 너를 끌어안고 잘 수 있다면! 아니 하다못해 저 입술에 입이라도 맞출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내 이를 다 뽑아서 네 치아를 대신해 줄 수 있을텐데! 그럼 우린 항상 같이 있고, 네 혀는 항상 날 쓰다듬을 수 있겠지!
"돈 많이 들겠네."
"돈이야 많이 들죠. 억울한 면도 있는데, 차라리 잘 된 일이라 생각해요."
"뭐가 잘 된 일인데?"
"지금이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이요. 물론 처음같은 치아는 불가능하죠. 이미 썩을만큼 썩었으니까. 전에 엉망으로 봉합한 치아들은 지금 당장은 괜찮아보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썩어버릴 테니까요. 초기는 아니지만, 지금에서라도 발견한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고통과,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아직은,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까. 지금 우리 관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