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 시티 - Sin Cit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란 무엇일까?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프랭크 밀러가 공동 감독한 『씬 시티』를 보면서 이런 근원적인 생각까지 거슬러 오른 것은 괜한 지적 허영이 아니다.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영화는 '누더기 예술'이다. 일단 영화는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매채다. 일단, (오페라와 연극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 필요하고 음악과 미술이 필요하다. 영화가 예술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과학적 '발명품'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리고 뤼미에르 형제는 이 '발명품'을 '구경거리'로 만들어 '돈벌이'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영화는 처음부터 예술이 아닌, 발명품이자 구경거리고 돈벌이인 태생을 지녔다. 

   그런 영화가 예술적 지위를 얻은 것은 영화가 다른 예술들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고양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화 내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정성일 평론가는 그런 순간을 "Cinematic Magic"이라 했다. 영화사에서 이런 마법같은 순간은 자연 현상이나 배우들의 연기에 의해 일어나는 화학반응의 경우가 많았다. 즉 영화라는 매채가 아무리 누더기같이 이것 저것을 기워 붙인다 하더라도 그 누더기조각들은 진짜 배우들의 연기를 진짜 공간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씬 시티』는 대부분 그린&블루 스크린에서 촬영했다. 이 영화의 공간은 CG로 만들어진 공간이고 진짜는 배우뿐이다. 문제는 그 실제 배우들조차 각자 따로 연기를 한 것을 붙였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순 연극같은 무대, 아니 텅빈 공간에서 배우들이 자신의 상대역을 마치 있는 것처럼 연기하는 것을 한데 모은 이 영화는 어쩌면 새로운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는 눈속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씬 시티』는 좀 심했다. 이 영화는 누더기 조차도 가짜로 가득 차있는 셈이다. (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난 형식적인 면에선 보수주의자이자 근본주의자인가 보다..)

   이것을 영화라 불러야 할지 다른 이름을 붙여야할지는 모르겠다. 카메라로 '담은' 것과 카메라에 '그린' 것은 그 질감이 다르니까. 하지만 이것도 영화가 21세기를 견디어내고 통과해 나가는 과정임에는 분명하다. 그렇기때문에 형식적인 면에서 『씬 시티』를 평가하기엔 너무 이른감이 있지 않은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내게 매혹적인 이유는 프랭크 밀러가 창조한 인물들을 실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랭크 밀러의 『씬 시티』연작들은 '쌈마이'적인 정서가 물씬 흐르지만 각 인물들의 고뇌하는 독백은 고혹적이다 못해 아름답기까지하다. 거의 시에 가까운 수준인데,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이 이 '시'들을 낭독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각 파트의 주인공 롤을 맡은, 조쉬 하트넷, 미키 루크, 클라이브 오웬, 브루스 윌리스, 이들은 모두 멋진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It's a lousy room in a lousy part of a lousy town.  
   
   
  She smells like angels ought to smell.  
   
   
 

"Ask yourself if that corpse of a slut is worth dying for."

"Worth dying for. Worth killing for. Worth going to hell for. Amen."

 
   
   
  The young girl lives. The old man dies. Fair trade.  
   

   이와 같은 대사들은 눈으로 읽는 것보다 귀로 들었을 때 더 큰 감흥을 느낀다. 그러니 영화 『씬 시티』를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은 영화와 그래픽 노블 두 매채를 같이 감상해야 한다. 한번은 눈으로 다른 한번은 멋진 배우들이 낭독하는 것을 귀로. 하지만 불행하게도 영화의 자막은 문학성 있는 대사를 모조리 뭉개놓았다. 이 대사를 제대로 된 번역으로 감상하려면 세미콜론에서 나온 『씬 시티』번역본을 구해야한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바벨탑을 지었던 먼 옛날의 조상들을 원망하곤 하지만... 

 

*덧붙임 

브리트니 머피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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