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과 세상 - 김훈의 詩이야기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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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새로울 수 없으리라는 확실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

 
   

 

   책을 펼치면 에피그마 같은 이 문구에 멈춰버리고 만다. 이 단한마디의 '촌철'로 김훈은 독자들을 '살인'한다. 이 한마디 말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고 난감하다. 긍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딱히 반론을 내세우기도 힘들다. 김훈의 저 말은 중년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말이지만, 중년을 향해가는 이 챗바퀴같은 일상을 경험하는 사람들 또한 아마도 중년의 삶은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내 곧 수긍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김훈은 경험하지 않고서는 '감히' 말 할 수 없지만,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 뜻을 이해하고 수긍하는 '글'을 쓴다.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은 김훈의 글이 처음으로 '묶인' 책이다. 본인 스스로도 인정하듯 기자 시절 '밥을 벌기 위해' 쓴 글이다. 본인 스스로 자부하는 글도 있지만, 기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본인 말에 의하면 '이 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짜내듯 쓴 글들도 여럿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개정판인데 원책에 있던 '시'에 관한 글만 모아서 다시 엮은 책이라 한다. 물론 지금은 아쉽게도 절판되어 있다. 출판사에서 다시 찍어낼지, 그대로 절판할지는 모르겠으나, '김훈'이라는 네임밸류를 쉽게 포기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대개가 신문 '기사'로 쓰여졌기 때문에, 『풍경과 상처』나 『자전거 여행』과 같이 하나의 대상을 끝까지 파고드는 '사유의 집요함'은 없다. 대신 '친절하게' 그가 읽은 시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는다. 글의 리듬도 느릿하지 않고 적당하게 흘러간다. 다른 책들에 비해선 좀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시를 읽을 때 지역과 대상을 구분하고 그에 맞는 시를 소개하는 것은 참신했다. 해당 지역을 취재하고 그곳을 노래한 시를 소개하는 방식은 후에 그가 기행산문집을 써내려간 방식과 흡사하다. 무등산을 바라보며 광주와 무등산을 노래한 시를 소개하고, 그 시에서 역사와 고통을 이야기 하는 모습은 문학과 인간, 삶과 역사를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본보기로도 보인다. 전에 리뷰에서 『풍경과 상처』야 말로 김훈 글쓰기의 시원(始原)이라 했었는데, 그 말을 취소해야겠다. 이 책이야말로 김훈 글쓰기의 시원이다. 

   이전까지 '시'라는 것에 관심이 없던 사람을 시집을 펼치게 할 정도로 독서의 적극성을 실천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김훈의 이 책은 엄청난 가치가 있다. 하루빨리 이 책의 개정판, 아니 완전판이 나오길 기대한다. 

 

 

*덧붙임 

개정판은 원래의 책에서 '시'에 관한 부분만 추려냈다고 합니다. 옆동네 책읽는 낭만푸우님의 블로그에 보니 초판에는 시뿐 아니라 소설에 관한 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 본인은 숨기고 버리고 싶은 글일지도 모르겠으나, 독자는 그가 메모장에 써갈긴 글자 하나라도 읽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완전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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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0 2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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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0 2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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