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 Tokyo Godfather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조금 아쉬운 제목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의 원제는 『동경대부(東京代父)』이다. 영어 제목도 『Tokyo Godfathers』로 원제를 충실히 따랐으나, 영화를 수입한 영화사는 제목 선정에 상당히 고민했을 것이다. 원제인『동경대부』를 따르자니 뭔가 모를 조폭영화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점에서『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이란 제목은 상당히 잘 지은 제목이다. '크리스마스'와 '기적'이라는 평범한 우리들이 크리스마스에 꿈꾸는 저 두 단어를 제목에 넣은 것은, 그만큼 영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까운점은 저 제목때문에, 이 영화의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하루'에 벌어지는 이야기로 착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의 이야기는 정확히 12월 24일 저녁에 시작해서 1월 1일에 오후에 끝난다. 영화는 크리스마스라는 종교성을 드러내기 보다는 12월 말, 한 해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부딪히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2. 곤 사토시 

   감독인 곤 사토시는 지금까지 『퍼펙트 블루』, 『천년여우』,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파프리카』 이렇게 4편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다. 그의 작품들은 현실과 환상이 기가막히게 뒤섞여 있지만, 기존의 저패니메이션과는 좀 떨어진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의 작화와 편집의 리듬은 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내는 가공품이 아닌, 수공품이다. 곤 사토시는 미야자키 하야오, 오시이 마모루 등과 같이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화 한 또 하나의 사례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은 다른 세편과는 달리 '환상'이라는 요소가 부족하지만, 그에 걸맞는 연속된 '우연'이 크리스마스에 허용되는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저마다 사연을 가진 노숙자들이 주인공이라는 점, 군더더기 없는 빠른 전개와 편집은 그의 작품을 다른 저패니메이션과는 달리 독특한 위치에 서게 한다.   

 

3. 아기 예수의 탄생일에 시작된 기적 

   영화는 알콜중독자인 긴, 드랙퀸 하나, 가출소녀 미유키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쓰레기장에서 갓 태어난 어린 아이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아이를 부모에게 돌려주기로 하고 아이의 부모를 찾아 나선다. 그 와중에 야쿠자, 이민자 살인 청부업자, 폭력적인 십대들과 긴, 하나, 미유키의 가족들이 서로 얽히게 된다. 12월 31일 밤.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엄마에게 돌려주지만, 실은 그 엄마가 진짜 엄마가 아닌, 아이를 유괴하고 버린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나타난 이 '기적'과도 같은 아이, 그리고 이 아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긴, 하나, 미유키는 각자의 인생을 복기한다. 자신들이 어째서 노숙자로 살고 있는지, 얼마나 인생을 후회하는지 조근조근 드러낸다. 후회하고 다시 돌이가고 싶지만, 자신들을 원망하고 있을 가족들에게 미안해 그들은 계속 그 자리에 머문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에 만난 이 '기적' 덕분에 그들은 가족을 만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4. 실현된 기적을 맞이한 새해 

   어쩌면 사람들이 겪는 불화는 아주 조그마한 것에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는 그 상처나 섭섭함의 크기가 커서 용서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어도, 지나고 보면 세월의 풍화에 무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우리는 그 불화의 간극을 메우지 않고 지낸다. 너무 멀리 떨어졌기 때문이다. 먼저 다가간다면 그런 불화들은 다 봉합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처럼. 

   크리스마스에 시작된 이 작은 소동은 '기적'을 낳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한다. 너무 뻔한 결말인가? 크리스마스에는 한번쯤 용서해주자. 

 

 

 

5. 덧붙임 

- 곤 사토시 감독은 '정신나간 여자/남자'를 정말로 섬뜩하게 연출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정신나간 캐릭터'들은 영화에 엄청난 긴장감과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아이가 유괴범에게 돌려졌을 때, 유괴범인 여인이 눈이 풀어진채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은 정말 섬뜩합니다. 그 섬뜩함이 후반부의 클라이맥스를 지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 영화 덕분에 이제 더이상 베토벤 9번 교향곡을 들으면서 『Clockwork Orange』의 알렉스를 떠올리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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