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슬쩍 훓어보면, 이 책, 힘들게 힘들게 글을 모아 겨우 책을 낸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조악한 느낌이 든다. 특히 마지막 수상소감과 서문 모음을 보면, 이렇게까지 해서 분량을 채워 책을 냈어야 할 작가가 남세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약 190여페이지를 겨우 겨우 채운 책은 힘겹게 흘러 겨우 겨우 하류에 도착한 조강의 느낌이 든다. 그래서일까? 이 책 제목 『바다의 기별』은 그가 힘들게 흘러 도착한 강 하류에서의 어떤 '다짐'처럼 보인다. 

   책은 조악해보이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임팩트하게 몰아 넣은 듯 힘이 있다. 지금껏 내면의 현미경으로 세상을 관찰해온 김훈은 이번엔 그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돌렸다. 그가 생각하는 것들, 그가 바라보는 풍경, 그가 읽고 있는 책, 그리고 그가 처음 밝히는 '설화적'인 가난, 아버지의 존재와 죽음, 가부장이 된다는 것. 그런 소회들이 이 책 전반에 펼쳐져 있다. 

   모든 글들이 다 의미있고 새롭지만, 이 책 『바다의 기별』에서 유난히 내 관심을 붙잡았던 부분은 그의 부모님에 대한 소회와 언어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 돌아가신 아버지를 땅에 묻을 때 서럽게 울고있는 그의 여동생들을 향해 일갈한 김훈의 말. "요사스럽다. 곡을 금한다." 이 말은 지금의 김훈을 김훈으로 있게 하고, 독자들이 바라는 김훈의 상을 완성한 말일 것이다. 마치 아득한 역사의 한 저편에서 흘러 나온 듯한 박제된 인물의 일갈처럼. 그는 문체뿐만 아니라, 인간 삶 자체가 고전적이다. 이 말을 하면서 그가 가부장에 대해 다시 생각한 것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아버지의 자리를 자신이 대체한 아마도 그의 삶을 규정한 어떤 큰 사건이었다고 함부로 추측해본다. 

   하지만 유난히 가부장적인 그도 언어에 대해서는 한없이 섬세하다. 조사 '-은/는'과 '-이/가'의 쓰임새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이런 '사소한'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것 같은 가부장의 모습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세상의 삶을 개념화시키는 것에 대해 환멸을 느끼면서도, 그 개념화된 언어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그는, 그 자신의 밥벌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 모순을 끌어안고 삶에 가까운 언어를 선택하기 위해 고민하고 사유한다. 그렇기때문에 한자, 영어, 독어의 모습에서 문법이 어떻게 적용되고, 그런 모습을 통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사유하고 고민한다. 자신이 생각한 틀에 맞춰 거침없이 발언하는 그가 고작 조사 하나에 저렇게 고민하는 것을 보면, 그는 어쩌면 세심한 마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참으로 그다운 모습이다.

   그가 어떤 사람이건, 그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써왔던 그의 글들을 정리했다. 돌아보니 강의 하류이고 강의 하류는 바다와 강의 경계가 없는 혼재된 공간이다. 그는 바다로 나아갈까, 아니면 하류를 거슬러 다시 시원(始原)에서 시작할까. 최근작 『공무도하』를 보면 그 답이 보일듯도 하다. 그는 육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강도 육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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