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밴드 - Bus
김창완밴드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2008년 전작 『The Happiest』에서 밴드 신고식을 마친 김창완 밴드가 올해 1년이 채 안되는 시점에서 새 앨범을 발표했다. 혈연 밴드 산울림을 뒤로 하고, 산울림이란 공통점으로 만난 사람들을 주축으로 새로이 밴드를 짜서 앨범을 발표했다. '솔로' 김창완이 아닌 김창완'밴드'로서 방점이 찍힌 이 결과물은 이전의 산울림과도, 그리고 이전의 EP와도 다른 노선을 택했다. 

   전작 『The Happiest』를 기대하고 데크에 CD를 넣은 사람이라면 서정적인 기타 솔로로 시작되는 첫 곡에서 적지않게 당황했으리라 생각한다. 산울림 13집과 김창완밴드 EP앨범에서 느껴졌던 위악적이고 내지르는 에너지는 회환과 쓸쓸함을 서정으로 감싸는 것으로 대체됐다. 이것이 김창완밴드에게 있어서 독이 될지 득이 될지는 아직까지 판단을 할 수 없지만, 그는 평균연령의 2/3를 훌쩍 넘긴 나이로 세상을 돌파하기 보다는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가 바라본 세상을 한 번 살펴보자.  

 

   첫 번째 곡, 「내가 갖고 싶은 건」은 영롱한 기타소리로 시작한다. 그리고 들려오는 조곤한 김창완의 목소리. 그는 '멋진 자동차', '멋진 옷', '성같은 저택', '흰 돛 요트'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물론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대의 따뜻한 사랑'이라고 이야기 한다. 김창완은 '사랑'이란 말을 오랜 시간 피해왔었다. 산울림시절, 그가 '사랑'이란 단어를 처음 쓴 것은 산울림 8집 「내게 사랑은 너무 써」에서였다. 그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사랑'이라는 말로 개념화시키는 것을 의식적으로 거부해왔다. 그 이후에도 그는 '사랑'이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피해왔었다. 그런 그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산울림 12집을 겨우 마친, 비공식적으로 산울림을 해체하고 난 후 발표한 솔로앨범 『Postscript』에서였다. 첫 곡 「추신(追伸)」에서 그는 '사랑해~~애애애애애~'라고 절규하듯이 부른다. 떠나간 사랑 앞에서 다급하게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사랑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비로서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는 이제서야 '사랑'이 어떤 것인지 느끼기 시작한 것일까? 만약 그것이 그의 동생을 잃어서 알게 된 것이라면, 인생에서의 깨달음은 얼마나 잔혹한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사랑'을 원하는 노래를 부르고, 두 번째 곡 「아이쿠」에서는 예의 그 김창완으로 돌아온다. 같은 사랑 노래이지만, 이 곡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상황만이 나올뿐이다. 어쩌면 이 곡이 사랑노래가 아닐 수도 있다. 사랑이 시작되는 그 낯설고 날선 감정. 모호하고 혼돈스런 그 감정속에서 사랑은 피어나는 것이 아닐까? 태초에 천지창조가 혼돈속에서 이루어졌듯,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닐까. 

   세 번째, 네 번째 곡 「Good Morning」은 시간때문에 part 1, 2로 나뉘어진 곡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노래는 지난 2007년 산울림 30주년 콘서트에서 연주했던, 산울림 14집에 실릴 예정이었던 「도시인」이란 노래다(한 번 들었던 노래라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산울림은 해체되었고, 그 곡은 고스란히 김창완밴드에 의해 연주되고 불려지게 되었다. 이 노래는 도시의 아침, '지하철에서 버려진 아침 신문'을 주워 '구직광고를 살피'는 구직자의 시선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출근길 지하철, 모두들 어디론가 갈 곳을 향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어디 갈 곳도 가야 할 곳도 없는' 나는 도시의 '이방인'같은 존재다. 이 도시는 목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Good Morning'인사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차갑게 대한다. '내게도 희망은 있는'지, '내일은 내게도 기회를 줄'런지 알수 없는 기약과 자학만을 남기는 이 도시에서는 '그리움도 사치스러운' 존재다. 어디 갈 곳 없는 나에게 도시는 인사하지 않는다. '도시에는 바람만 분다 / 외로움이 바람이 되어' 

   다섯 번째 곡 「29-1」에서 김창완은 예의 개구쟁이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곡 진행은 빠르고 기타는 디스토션을 잔뜩 걸고, 목소리는 일부러 찌그러뜨렸다. 사고처럼 다가온 사랑을 29-1번 버스라는 매개물로 병치시키는 모습은 안타까우면서도 재미있다. 많은 사람들이 타는 29-1번 버스는 노래를 부르는 '나'에게 있어선 그녀를 떠올리는 특별한 버스가 될 것이다.  

   연주곡을 건너 일곱 번째  곡 「길」은 예전에 『꾸러기들의 굴뚝여행』이라는 앨범에서 먼저 발표된 곡을 다시 불렀다. 김창완은 어렸을 때 부터 '애늙은이'라는 별명을 지녀왔는데, 20대에 만든 「청춘」이나 이 「길」이란 노래를 들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물론 그는 후에 '그 나이에 이런 노래를 만들었던 것은 만용'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도 좌충우돌 젊음의 시절이 있었고 젊어서 지닐 수 있었던 만용을 부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노래들을 부를때 드는 느낌은 그 때와는 다르다'고 이야기 한다. 젊음의 만용이 이제는 깨달음, 깨달음이 아니면 회환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원곡 「길」은 혼란스러움, 될대로 되라는 식의 감정이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 50대 중반의 그가 부르는 노래는 어떤 '체념'의 정서가 물씬 베어 있다.  

 

          내게 길을 물어온다면
          친절하게 가르쳐준다오
          어짜피 아무도 모르는 길을

          전에 내게 애인이 있었어
          젊고 아름다운 연인
          그러나 이제는 지나간 추억 

- 「길」 중에서 -          

 

   여덟 번째 곡 「앞집에 이사온 아이」는 이 앨범을 통털어 가장 서정적이고 쓸쓸한 노래다. 도시에서는 어린아이들도 쓸쓸하다. 이들은 이 쓸쓸함을 몸에 새기고 이 도시를 살아나갈 것이다. 아이들은 이게 쓸쓸함인지, 지루함인지 모른다. 그게 쓸쓸하다고 느끼는 주체는 그들을 바라보는 어른의 시점이다. 텅 빈 오후의 도시는 그렇게 쓸쓸함을 머금고 있다.  

 

          앞집에 이사 온 세살쯤 되보이는 어린아이
          누가 묶어줬는지 머리엔 고무줄을 질끈 묶고
          아직은 낯선지 골목을 벗어나질 않고 노네
          친구가 없는지 혼자서 하루종일 놀고 있네 

- 「앞집에 이사 온 아이」 중에서 -          

 

   아홉 번째 곡 「그땐 좋았지」는 10여년전 『도시락(圖詩樂) 특공대』라는 프로젝트 앨범에 수록한 곡을 다시 불렀다. 『도시락(圖詩樂) 특공대』에서는 어쿠스틱 기타를 주축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추억하듯 불렀는데 이번에는 프로그레시브하고 싸이키델릭한 대곡으로 편곡해서 그런지 더욱 몽롱하게 들린다. 그도 나이가 들수록 그런 즐거운 일들은 아득한 추억이 되는 것일까? 따뜻했던 노래가 조금 차가워진 느낌이 들어서 더 먹먹했다. 

   열한 번째 곡 「결혼하자」는 제목같이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노래다. 하지만 그 가사가 왠지 서글프다. '이담에 돈 많이 아주 많이 벌어 / 이담에 아이들 아주 많이 낳아 / 행복할거야' 결혼은 사랑의 약속이지만, 현재의 결혼은 '돈'이다. 돈이 없으면 결혼'식'을 진행할 수 없다. 이 소꿉장난같은 노래는 결국 '돈'에도 소외되는 사람들을 노래하고 있다. 어쩌면 김창완의 노래에서 처음으로 '계급'이라는 단어를 쓰게 될런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는 변하지 않았는데 이 사회가 점점 계층화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그저 노래를 만들고 부를 뿐이다.  

 

   쓸쓸한 도시인의 삶에서 김창완은 노래한다. 예전처럼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고 선동하지도 않고, '변해야 한다'고 소리지르지도 않는다. 이제 그는 세상을 감싼다. 따스하게.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 기타가 세상을 위로할 수도 있다. 김창완밴드의 이번 앨범은 그것을 실제로 증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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