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가 앨범을 발표했다. 로잔연방공과대학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스위스 화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상도 받고, 미국에 특허도 취득했다. 난 지금 공학박사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사실 맞다...) 루시드 폴, 조윤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를 처음 만나것은 98년 SUB라는 음악잡지에서 주는 샘플CD에 담긴 「송시」라는 노래에서였다. 수많은 노래 중에서 유독 그 노래에 끌렸던 이유는 치기어린 난해한 가사보다는 어떤 실연의 처절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자포자기한 '분노'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마음속의 울림은
               내 입속의 신음은
               항상 그대에겐 짐이었을뿐
               곳곳을 둘러 봐도
               성한 곳 하나 없고
               난 언제까지 썩어 갈건지 

     - 「송시」 중에서 -                

 

   이 노래를 듣고, 피리부는 소년을 따르는 쥐처럼 난 바로 음반가게에 가서 이 노래가 있는 앨범을 샀다. 앨범명은 『Drifting』이었고, 그룹명은 미선이였다. 그날 앨범을 듣고 오랫동안 먹먹해있었다. 사랑에 상처받고 세상에 상처받은 내 또래의 친구가 내 앞에서 한탄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에 얘기한 「송시」가 실연을 당한 입장에서 부른 노래였다면 「시간」은 실연을 한 입장에서 부른 노래다.  

 

               내 위로 떨어져 내린 촛농 같은 시간들
               멀리서 나를 부르네 날아가야 한다고
               계절은 항상 이렇게 아픔속에 오는가
               한없이 늘어만 가네 내 나이의 상처

               이젠 헤어졌으니 나를 이해해줄까
               사랑 없이 미움 없이
               나를 좋아했다면 나를 용서하겠지
               미련 없이 의미 없이 

 - 「시간」 중에서 -                

 

   이 때 그는 '사랑'에 대한 분노와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같이 불렀었는데, 아마도 감히(!!) 비유하자면, 이런 세상에 대한 분노를 이토록 아름다운 선율에 얹어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정태춘 이후 처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다시 진달레 피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봄을 타고
               개같은 세상에 너무 정직하게
               꽃이 피네
               꽃이 지네
               올해도 

- 「진달래 타이머」 중에서 -                 

 

   <미선이>는 단 한장의 앨범을 내고 해체했다. 이유는 구성원들의 군입대와 유학때문이었다. 홀로남은 조윤석은 새로운 프로젝트앨범을 기획하는데 그것이 바로 <루시드 폴>이다. Lucid Fall, 청명한 가을이라는 말은 얼마나 쓸쓸하고 설레는 단어인지... 

   <루시드 폴>로 이름을 바꾼 그는<미선이>에서 다 못다한 이야기가 있는 듯 쓸쓸한 노래들로 진을 뺐었다. 이른바 '풍경 3부작'이라고 불리웠던 「나의 하류를 지나」, 「너는 내 마음속에 남아」, 「풍경은 언제나」를 통해, 헤어진 연인을 생각하고, 그 아픔때문에 어둡고 차가운 골방에서 차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쓸쓸한 청춘에 대해 노래했었다. 조윤석의 목소리엔 기교가 없다. 무심한 듯, 무덤한 듯, 일상을 이야기하듯 감정을 싣지 않는다. 그래서 더 슬프고 처절하게 들린다. 

   그런 그가 유학을 떠나기 전 『버스, 정류장』이라는 OST를 만들었다. 이 앨범은 <루시드폴>보다는 <미선이>에 조금 더 가까운 앨범이었다. 어쿠스틱 보다는 일렉 기타가 더 많이 들어갔고, 솔로라기보다는 밴드같았다. 게다가 <sweet>의 이아림이 참가한 노래는 쓸쓸함이 아닌, 산뜻함이 느껴졌다. 그 앨범을 끝으로 그는 기나긴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시절 낸 2장의 앨범, 『오, 사랑』과 『국경의 밤』은 듣지 않았다. 실은 『오, 사랑』은 들었었다. 하지만 조윤석의 감성이 유희열과 만났을 때의 느낌은 어떤날 2집이나 동물원 4집을 들었을 때의 느낌. 어떤 어울리지 못하는 '세련됨'의 이질감을 느꼈었다. '이렇게 멀어져가는구나'하고 생각하고 한동안 그의 앨범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동안 그의 앨범을 듣지 않은 까닭은, 그에게 내가 원하는 것만 바라고 있던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매너리즘을 요구하는 팬들의 가혹한 요구. 그의 시도가, 결과가 어떻게 되던간에, 최소한 지지는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번달엔 그의 노래를 들어봐야겠다. 얼마나 슬픈지, 혹은 '얼마나 사랑스런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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