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상처 - 김훈 기행산문집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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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과 상처』는 김훈이 처음 출판한 책이다. 그 때는 '기자'라는 밥벌이가 있었던 시절이라, 지금과 같은 생존의 조건을 우선으로 한 글쓰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것은 어쩌면 가장 '순수한' 김훈과 만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순수란 '타락'의 반대말이 아닌, 밥벌이라는 노동이 제외된 어떤 '유희'의 의미를 뜻한다. 하지만 김훈이 괜히 김훈인가? 그는 유희보다는 그의 치열한 사유를 펼쳐놓는다. 

   일반적인 독자라면 첫 장부터 그가 풀어놓는 사유의 지난함에 기가 질릴 것이다. 그는 지금껏 그의 몸 속에 담아온 생각들을 끝을 보기라도 할 작정으로 끝까지 나아간다. 그는 그러한 과정을 자신의 내면에 새겨진 '상처'를 통해 바라보는 것이라 했다. 

   여기서의 풍경은 단지 경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바라보는 풍경은 여러 지방의 모습들이기도 하고, 역사이기도 하고, 그가 읽어온 시(詩)이기도 하고, 그의 고향이기도 하고, 그가 좋아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즉 그는 세상 모든 것을 마치 풍경을 보듯이 관찰한다.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모질게. 그가 바라본 풍경들은 후에 다시 꺼내는 이야기이거나, 혹은 이번에 이야기 한 것을 끝으로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내용들로 마구 뒤섞여 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이 품어온 사유를 쏟아내고 싶은 '공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가 써온 '기사'처럼 한정된 공간에 일회적으로 소모되는 것이 아닌, 오래 남을 수 있는 '책'이라는 공간에. 

   올해 새로 쓴 [작가의 말]에서 김훈은 '이제 이런 글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그의 글에서 이런 긴 템포의 지난한 사유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의 독자로서는 아쉬운 일이기도 하다. 내가 바라는 매너리즘에 갇힌 작가에 대한 욕망과, 늘 새로워지고 싶어하는 작가의 욕망은 서로 부딪힐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나아감은 응원하고 격려할 일이기도 하나, 아쉬운 일이기도 하다. 

   이제야 지난하게 거꾸로 거슬러 올라 겨우 그의 글의 시원에 도착했다. 시원의 김훈은 혼란스럽고 치열했다. 그의 글은 하류로 흘러갈수록 혼란함을 걷고 더욱 치열해졌다. 김훈이라는 거대한 강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그 처음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풍경과 상처』가 그 대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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