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창비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의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를 관통하는 열쇳말은 현실과 환상이다. 그는 늘 세상 한 구석에서 벌어질 법한 일을 쓰지만, 그 현실에 사는 주인공들을 감싸는 분위기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이사」의 내용은 이사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본 일들이다. 하지만 김영하는 주인공들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상황으로 밀어넣는다. 영화감독 테일러 헥포드는 만약 악마가 인간 세상에 산다면, 아마 변호사로 살 것이라고 이야기 했었는데(『데블스 애드버킷』), 김영하는 아마 이사짐센터 직원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이사 당일 새벽에 도착한 그는 마치 악마와도 같은 존재다. 그는 황사를 몰고 왔고, 엘리베이터를 고장냈으며, 이사짐센터의 전화마저 불통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그는 새끼 악마들을 데리고 주인공 부부를 압도하고 협박하며 이사짐을 나른다. 갑자기 현실감을 잃은 공간. 그 공간안에서 인간인 주인공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런 비현실성은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서도 나온다. 조근조근 진행되는 이야기가 갑자기 '자연발화'라는 미스테리에 접근한다. 가장 비현실적인 이야기이지만, 현실의 이야기는 뭐 현실적인가? 현실적인 이야기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합쳐져서 슬픈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말도 안 돼'의 이야기를 그럴싸한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것은 김영하의 힘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종교적 갱생담이다. 이 이야기는 세 수컷들이 '공유한' 한 여자의 추억을 살인사건과 미스터리 수법으로 풀어낸다. 그들에게 죄의식은 없다. 동물들에게 인간 수준의 것을 요구하는 것은 실례다. 주인공은 옛 여자를 만나고 탄식한다.  '이제 너랑 다시는 잘 수 없겠구나.' 하지만 그녀가 죽고나서 그는 죄책감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쁜 사람이 착하게 되는 것은 단순한 갱생담이 되지만, 짐승이 사람이 되는 것은 종교적인 갱생담이다. 그것도 그들이 죽인 순교자를 통한 이야기라니!! 살인사건이 해결되고 돌아오는 안도감. 하지만 그는 매 해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가 인간이 되게 해준 그 순교자를 향한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때 뿐일 것이다. 

   가장 짧지만 강렬한 「마지막 손님」은 울림이 크다. 2003년 12월 31일. 영화판에서 미술일을 하는 주인공 부부에게 일이 떨어졌다. 영화에 쓰일 여고생 시체를 만드는 것이다. 칼로 난자를 당한 피투성이의 여고생 모형을 거의 만들었을 때 일을 의뢰한 감독이 방문한다. 감독은 더미를 보고 장소가 없으니 여기에 며칠 남겨두자고 한다. 감독이 떠나고 두 부부와 죽은 소녀의 모형은 새해를 맞이한다. 어쩌면 창작자란, 이런 시체 모형을 만드는 일과 같지 않을까? 진짜같은 가짜. 그 가짜를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 하지만, 남겨진 것은 외로움이다. 사회에 속하지 못하고 골방에 틀어박혀 이상한 것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들의 모습. 김영하는 그 모습을 쓸쓸하게 바라본다. 

   이런 저런 말을 하더라도, 김영하의 소설은 '재미있다' 현실에 기반하면서 환상을 끌어대는 그의 이야기에 유쾌할 따름이다. 

  

 

*덧붙임 

   그 외 「오빠가 돌아왔다」, 「너를 사랑하고도」, 「너의 의미」,「보물선」까지 마저 이야기하려 했으나, 리뷰에서 다 밝혀버리면 안될 것 같아 남겨둡니다. 아마도 '재미'면에서 따지자면, 이 소설들이 정수라 할 수 있겠지요. 개인적으론 「너의 의미」가 최고라 생각합니다. "감독님, 왜 자학하세요?"는 정말 최고의 대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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