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업무에 관련한 자료 검색을 하던 중,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했다.  

 

‘8등신에 슬픈 눈매’ 가야 소녀 복원
(기사 읽기 클릭) 

권력자 무덤에 순장된 10대 여성
고대한국인 대상 첫 과학적 성과 

 


   이달 초, 유골이 출토되었다는 소식에는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막상 복원된 모습을 보고나니, 1500여년 전 그 시대를 살았을 소녀의 모습에 왠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현의 노래』에 나온 순장된 왕의 시녀 아라가 떠올랐다.  

   내게 있어 순장은 '지배자가 죽을 때 아랫사람들을 같이 묻는다'는 개념화된 지식으로만 여겨졌었다. 하지만, 『현의 노래』를 읽고 나서 그 개념화된 순장이 실체가 되어 다가왔다. 김훈이 묘사한 순장을 조금만 들여다 보자. 

   
 

   왕의 관이 석실로 내려올 때, 문무의 두 순장 중신들은 흰 수염을 가지런히 하고 눈을 감았다. 군사들이 석실의 돌뚜껑을 덮을 때 쇠나팔이 길게 울렸다. 순장자들의 구덩이마다 배치된 군사들이 일제히 돌뚜껑을 들어올려 구덩이를 덮었다. 구덩이를 덮을 때, 울음소리나 비명소리가 한 줄기도 새어나오지 않으면, 백성들은 그 적막을 죽은 왕의 덕으로 칭송했다. 간혹 구덩이 뚜껑을 덮을 때 흑, 흑 젊은 여자들의 웃음인지 비명인지가 새어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 불경하고 요망한 일을 입에 담지 않았다. 또 돌뚜껑이 덮이는 순간, 뚜껑을 밀치고 구덩이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자들도 더러는 있었다. 군사들이 달려들어 몽둥이로 사지를 부러뜨려 구덩이 안으로 밀어넣었는데, 그 일도 사람들은 애써 기억하지 않았다. 때로는 장례 전날 밤, 소복을 입은 채 달아난 처녀들도 있었다. 군사들이 갈대숲과 바위 틈을 뒤져 처녀들을 붙잡아 여러 토막으로 베었다. 군사들은 처녀의 몸 토막을 우물에 던지고 흙으로 메웠다. 처녀의 부모들이 쇠터의 노비로 끌려갔고 살던 집은 헐렸다. 처녀들의 도망은 없었던 일로 바뀌었는데,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은 그 참담한 일을 일절 입에 담지 않았다. 

(별 中)

 
   

   순장에 선택되는 것은, 그시대에선 자연사나 다름 없었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블합리하지만, 따를 수 밖에 없는 그 시대의 질서였다. 그러나 아라는 달랐다. 그녀는 그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받아들여야 할 어쩔 수 없는 죽음과 하나의 생명체로서 삶을 이어가고 싶은 본능 사이에서 그녀는 질서를 받아들이는 대신 삶을 선택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그녀가 우륵과 니문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결국엔 그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왕의 충성스런 신하들 덕분에 아라는 결국 순장되고 만다.

   
 

   아라는 상여의 왼쪽에서 올라왔다. 붉은 비단천을 휘감은 몸뚱이가 삼줄로 묶여 있었고, 긴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로 늘어졌다. 눈을 가렸고, 입에 재갈이 물려 있었다. 

   상여는 더욱 다가왔다. 아라의 머리카락에서 햇빛이 부서지면서 흘러내렸다. 

   지관이 요령을 흔들며 상여 앞으로 나아가 두 번 절했다. 태자의 구덩이 남쪽으로, 아라의 구덩이는 얕고 좁았다. 그 옆에 두 쪽짜리 돌뚜껑이 놓여 있었다. 지관이 아라의 구덩이 속에 토기 세 개를 넣고, 먼 가야산 쪽을 향햐 두 번 절했다. 내위군 한 명이 달려들어 아라를 밀쳤다. 아라는 구덩이 안으로 쓰러졌다. 지관이 밥 한 그릇을 구덩이 속으로 던졌다. 군사들이 돌뚜껑을 밀어서 덮었다. 지관이 우륵 앞으로 다가왔다.  

(월광 中) 

 
   

   그녀의 죽음은 어떻게 찾아왔을까. 구덩이 안에서 돌뚜껑이 덮어지는 광경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소란스러움이 사라진 후 그 적막함은 어떤 느낌일까. 원하지 않는 죽음을 인위적으로 시나브로 맞이해야 하는 그 절망감은 어떤 느낌일까. 이 어쩔 수 없는 불합리함에 분노하지 못하고 체념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라의 죽음은 이렇게 경험하지 못하고, 해결할 수 없는 질문만을 내게 남겨주었다. 

   그런 그녀가 현대 과학의 힘으로 그 때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섰다. 그녀의 모습은 다부져 보이지만, 눈빛은 왠지 슬퍼보인다. 1500여년 전의 아라는 지금의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려 지금 다시 나타났을까. 그 이야기는 나중에 듣더라도, 지금은 그 당시 어쩔 수 없는 죽음 앞에 체념하고 공포에 떨었을 수많은 가야의 아라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더이상 무서워 말라고. 외로워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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