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커피
일요일 아침에 커피 한 잔. 일주일에 한 번 즐기는 호사다. 주말엔 특별히 알람에 의지하지 않는데도 평상시보다 일찍 일어나게 된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둑어둑한 하늘을 뒤에 두고,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머그컵에 가득 커피를 내린다. (이럴거면 도대체 왜 에스프레소 머신을 산건지..) 정장바지에 벨트를 두르는 대신 편안한 추리닝 바지를 입었다는 사실에, 잠시나마 일에서 해방되었다는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해가 고개를 내밀기 직전의 하늘과 차가운 공기, 그리고 따스한 커피 한 잔. 어쩌면 세상은 살아갈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 라디오 북클럽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는 MBC에서 방송하는 라디오 북클럽 때문이기도 하다. 이 프로그램의 열혈 청취자는 아니나, 징진 감독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기대어 책을 듣는 기분이 좋기때문에 찾아 듣고는 한다. 다시듣기 서비스도 제공되지만, 신기하게도 이 프로그램은 일요일 아침 7시, 즉 그 방송시간에 듣지 않으면 흥취가 떨어진다. 마치 일요일 아침을 선점이라도 했듯이.
오늘은 발레리나 김주원씨가 나와 <음악가와 연인들>이라는 책을 소개해주었다. 내밀한 예술가들의 삶. 만일 그들의 삶이 괴팍하고 용서받지 못할 행동으로 점철되었는데 그들의 작품이 아름답고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면, 우리는 그 작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삶과 예술을 분리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자체로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방송은 흥미로운 내용으로 진행되었으나, 혼자서 괜시리 이런 생각까지 해보았다. 조용한 아침은 적막한 밤처럼 사색(혹은 망상)의 공간을 제공하는가 보다.
김주원씨와 짧은 만남을 가진 후, 장진 감독이 읽어준 책은 김영하 작가의 <오빠가 돌아왔다>였다. 낄낄거리며 읽은 책이었는데 장진 감독의 차분한 목소리로 들으니 더욱 재미있었다. 지현우가 주연으로 캐스팅된 영화얘기도 있었는데 어떻게 진행됐는지 궁금하다.
3. 그리고 어김없이 돌아오는 끼니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 새 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쳐낼 수도 없었다.
- 김훈 <칼의 노래>에서-
밥을 먹는 것은 시간을 견디어 내는 힘을 얻는 것. 밥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