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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세트 - 전10권 ㅣ 삼국지 (민음사)
나관중 지음, 이문열 엮음 / 민음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게 삼국지는 책이나 글이 아닌 어떤 매체로서의 인상이 강하다. 그만큼 여러 경로로 삼국지를 접했기 때문이다.
처음 삼국지를 접한 것은 박홍근 작가가 글을 쓰고 신동우 화백이 그림을 그린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삼국지』였다. 당시 초등학생이 읽기에 엄청난 분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을 다 본 것은 신동우 화백의 그림때문이었다.(그렇다. 난 이당시 읽지는 않고 그림과 글자를 봤을 뿐이었다. 아무리 그림이 많을지라도 16권의 소설은 초등학생에게는 벅차다) 페이지마다 있는 그 그림이 없었더라면, 난 아마 그 책을 포기했을 것이다.
두번째로 접한 것은 1990년 MBC에서 신년특집으로 한 삼국지 애니메이션이었다. 블루 아이 섀도우를 바른 제갈공명, 꽃미남 유비, 금발머리의 조조(여기까진 그렇다 치자..), 조조를 연모하는 '여장수' 우금(응?), 닌자 부대를 이끄는 허저(뭐라?), 미니스커트(!)를 입은채 글라이더를 타고 날아다니는 여화(헉!!), 그리고 장엄한 결말은 유비와 조조의 일기토 대결(WTF!!). 말이 삼국지이지 삼국지의 인물들을 제멋대로 각색한 작품이었으나,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나와 같은 어린이들에게는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후에 3편으로 나눈 비디오 테이프를 교보문고 음반코너에서 기어이 사고 말았다.)
세번째로 접한 것은 같은해 여름에 개봉한 중국 영화 『삼국지』였다. 중학생 시절에 처음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고 국도극장에서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그당시 14살 중학생의 눈으로 볼때에도 영화는 참으로 허접했다. 한정된 러닝타임 안에 수많은 인물과 사건을 다루려니 캐릭터는 캐리커쳐가 됐으며, 스토리는 요약 이상은 아니었다. 2시간 30분 가량의 영화였으나, 이야기는 적벽대전까지밖에 다루질 못한 것도 미완성인 느낌이 들어 실망이 컸었다.
그리고 그 해 『이문열 삼국지』를 읽었다.
이전까지 읽(고 보았)었던 삼국지가 어린 마음에도 유치하다고 느꼈었더라면, 『이문열 삼국지』는 달랐다. 『이문열 삼국지』를 읽는 순간, 문장에 품격과 힘이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이전까지 임정진 류의 하이틴 소설들만 읽었으니 그 충격은 더했다.(그렇다고 그당시 하이틴 소설이 수준이 낮다는 말은 아니다. 난 단지 '필력'에 대해 이야기한 것 뿐이다.) 지금까지 '이미지'로만 익혔던 삼국지를 활자를 통해 머리속에서 재구성할때의 희열은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어쩌면 난 처음으로 『이문열 삼국지』를 통해서 글을 읽는 방법과 즐거움을 익혔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기억으로 존재해있던 이미지와 단순한 개념(유비-착한놈/조조-나쁜놈)으로 이루어진 캐릭터가 처음으로 피와 살을 가진 존재로 거듭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작가 이문열의 힘이고 공이다. 평면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원작 소설속의 등장인물들이 고뇌하는 모습과 컴플렉스를 드러내는 모습을 작가 이문열은 본인의 역량을 바탕으로 풀어놓았다. 그것만으로 500여년전의 옛소설이 21세기에 걸맞는 현대소설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껏 이런 삼국지를 본적도 없었고, 독자들은 그에 걸맞는 대접을 해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히 말해 『이문열 삼국지』이지 『삼국지』는 아니다. 정본이 아닌 원형이판평역본이다. 안타깝지만, 『이문열 삼국지』는 『황석영 삼국지』나 『본삼국지』의 대열이 아닌, 『고우영 삼국지』나 『창천항로』의 위치에 서 있을 각색 삼국지이다.(『황석영 삼국지』 또한 갖은 오역으로 유명하지만, 여기선 작가의 의견을 빼고 정본에 가깝게 번역했다는 데 의의를 두어 이렇게 분류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문열 삼국지』를 정본으로 여기고 있다. 이미 엄청난 권력을 누리고 있는 책이지만, 아닌 것은 아니기에 언급해 봤다. 예를 들어, 도스또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읽기에 어렵다고 누군가가 읽기 쉽고 재밌게 각 인물들에게 살을 붙이고 그 해석을 단 작품을 낸다면, 그 책을 읽은 사람은 과연 도스또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숱한 오류(이것은 이미 『본삼국지』의 저자 리동혁이 쓴 『삼국지가 울고있네』에서 충분히 밝혔다)와 아전인수격 평역(6권 적벽대전에서 제갈량과 관우에 대한 고우영의 해석 -책에서는 '누군가'의 해석이라고 했으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고우영의 해석이다. 『고우영 삼국지』를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을 정사를 끌고와서 비웃고는 본인은 8권 관우의 죽음에서 그 해석을 차용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소설이여, 역사가 되어라!'식의 평역은 이 외에도 굉장히 많다)은 이 장쾌한 문체로 이루어진 소설의 수준을 끌어내리고 있어서 심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정본 삼국지가 몸에는 좋으나 맛은 없는 '웰빙음식'이라면, 『이문열 삼국지』는 조미료가 듬뿍 들어간, 자극적이고 맛은 있으나 건강에는 좋지 않은 '불량식품'이다. 물론 몸에 좋은 음식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으나, 때로는 불량식품에 끌리는 게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치켜세우기도 하고 깍아내리기도 했으나, 『이문열 삼국지』는 내게 있어 처음 활자로 접한 『삼국지』였다. 문체의 마력에 흠뻑 빠져, 나중에 『황석영 삼국지』나 『본삼국지』를 읽을 때 굉장히 힘들게 읽었었다. 정본을 읽어보면, 작가 이문열의 필력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작가 이문열의 필력을 느끼고 싶으면 『이문열 삼국지』를, 그렇지 않고 1800여년간의 시간을 견디어 낸 역사, 전설, 신앙, 민중들의 바람을 책으로 엮은 고전 『삼국지』를 읽고 싶으면 다른 판본을 읽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