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홍상수 감독, 고현정 외 출연 / 프리지엠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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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한국에서 홍상수의 영화를 보는 것은 과감한 결단이다. 홍상수라는 이름은 박찬욱, 봉준호와 같이 브랜드화 되어있지만, 그들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사람들에게 여겨진다. 즉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예술영화'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느낄 수 있다. 극 중 구경남의 말대로 홍상수의 영화에는 "예쁜 화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홍상수의 영화에는 일반적인 영화에는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의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홍상수의 영화를 (도중에 끊지 않고 끝까지 견뎌서) 보고 나면 대개 두 가지 반응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낄낄거리던가, 혹은 불쾌하던가. 그런데 이 두가지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낄낄거리는 것은 홍상수 영화에 나왔던 인물들의 행태를 보고 '나도 그랬어'하면서 동조하는 것이고, 불쾌한 것은 '아.. 저거 왜 들춰내는 거야'하고 부정하는 것이다. 결국 홍상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치졸한 인성을 철저하게 영화에서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삶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도 특별한 것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TV나 다른 영화에서 보여주는 포장술을 걷어낸 각자의 인생은 얼마나 비루한 것인가.  

   홍상수는 그런 포장지를 다 걷어내고 인간 본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월한 수컷이고자 증명하는 남자들, 찝찝한 상황에서 혼자서 벗어나고자하는 치졸함, 감정의 기복, 자존심을 위한 말싸움 등 우리가 인생에서 당하고 행하는 모든 일들이 그의 영화에 다 나와있다. 즉, 홍상수의 영화를 보는 것은 <올드보이> 이우진의 말처럼, "인생을 통째로 복습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홍상수의 영화가 [인간극장]과 같은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그는 영화적 형식을 끊임없이 찾고 있으며 각 영화마다 다르게 구성해왔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는 4명의 등장인물을 각각 주인공처럼, 마치 4편의 단편영화처럼 찍었고, <강원도의 힘>에서는 하나의 이야기를 앞, 뒤가 아닌 화자의 시선으로 나누어 찍었고, <오! 수정>에서는 하나의 이야기를 추억하는 각자의 기억에 따라 서로 다르게 찍었고, <생활의 발견>에서는 같은 이야기를 주체와 객체를 서로 바꿔 다른 공간에서 반복되는 이야기처럼 찍었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는 세명의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다가 중간에 두명의 주인공이 사라지고 혼자남은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끌어갔고, <극장전>에서는 영화속 영화와 영화속 현실을 찍었고, <해변의 여인>에서는 결코 만날 것 같지 않던 두 여자들이 한자리에 서로 만나는 '마술'을 보여주었고 <밤과 낮>에서는 처음으로 편년체 형식을 썼으나 여주인공의 과거와 미래가 걸쳐있는 전인미답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만큼 홍상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을 찾아서 '영화적'으로 보여주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마치 지금까지의 모든 홍상수 영화의 집합체이다. 이제 그는 각 영화에서 개별적으로 다루던 기억과의 싸움을 그의 전 영화로 확장시킨 것 같은 느낌일 정도로 전작들의 등장인물들이 했던 상황과 대사가 무차별적으로 쏟아져나온다. 그렇다고 힘든 영화는 아니다. 초기작에서 보여주었던 위악스러움은 많이 사라졌고, 살벌한 유머도 많이 유해지만, 그래도 홍상수는 홍상수다. 계속 지속되어왔던 '죽음'이라는 테마는 그게 진심이든, 그냥 한 말이든 이번에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홍상수의 영화를 보는 것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하루하루를 떼우며 살아가는 것이라면, 굳이 홍상수의 영화를 찾아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살아가는 것이라면, 홍상수의 영화를 꼭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의 영화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진 않지만, 생각할 시간을 준다. 요즘 같은 세상속에서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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