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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12 - 제4부 동트는 광야 ㅣ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숨막히게 처절한 해방 전 우리 민족의 삶. 러시아에서 중국, 동남아, 하와이까지 우리 민족이 내쫓긴 체 핍박받는 장면을 훑어내 보여주느라 아니 그들이 끈질기게 견뎌낸 수난의 역사를 보여주느라 작가의 발과 펜이 얼마나 닳았으며 작가의 가슴은 얼마나 시커멓게 변했을까? 감히 어떻게 이 책을 내가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없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다만 깨달았을 뿐이다. 지나간 우리 민족의 아픔은 가르칠 수 있는 대상(우리는 역사시간에 '그땐 그랬지'라고 배우며 주먹 불끈 쥐어보고 그 시간 끝나면 잊어버리곤 하지 않는가?)이 아니며(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곧 차득보요, 연희네며, 지삼출이고, 송수익이며, 필녀요, 보름이고, 서무룡이요, 양칠성이고, 정상규요, 정도규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과거는 단순히 과거로 끝나는 것(현재진행형의 과거?)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부끄럽다. 땀 냄새로 얼룩진 이 책의 주인공들에게 말이다. 땀 냄새로 얼룩진 그들이 '껍데기를 벗겨야 할 인종'들이라 말한 이들을 여지껏 처단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오히려 끌려다녔던 해방 후 역사가 너무도 부끄럽다.
책 속의 인물에서 내 모습을 본다. 신세호. 아마도 나는 이 인물 같은 성향을 가졌으리라 본다. 그래서 더 오줌대감 신세호의 아픔에 공감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신세호가 송수익의 강인한 신념과 거침없는 실천력을 부러워했던 것처럼 나 역시 가열하게 이 세상에 대한 올곧은 신념으로 맞서고 싶어하나 전혀 그렇지 못한 나약한 인간임을 매일 한탄만하는 인물이니까. 나같은 인물이 너무 많아서 항상 정의가 승리하지 못하는 것(그렇다고 내가 부정의 편이라는 말은 아니다. '좋은게 좋은 거지'라는 생각으로 침묵하는 인간이라는 말이다.)은 아닐까 생각하며 신세호의 시커멓게 탄 가슴을 쓰다듬는다.
책을 덮고 나니 더 가슴이 먹먹해진다. 굳세고 굳센 만년장수 송수익의 감옥에서의 죽음, 배포만큼 덩치 큰 공허 스님의 허탈한 죽음, 금예가 보고 싶어 몸달았던 필룡이의 죽음, 위안부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순임이, 돌아오는 길 중국인들에게 맞아 죽는 이주 농민들....이를 어쩌나. 가슴만 아프다. 차득보는 돌아와서 연희네를 만났기를 두 손 모아 빌어보는 밖에!
대장정에 내 가슴도 갈갈이 찢어진 듯하다. 그러나 한 가정을, 한민족을 파탄으로 몰고간 뼈아픈 역사가 거듭되지 않게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수많은 송수익과 공허, 오삼봉이와 차득보,윤일랑을 위하여 묵념. 그리고 또 수많은 양칠성이와 장덕풍, 장칠문, 이용구, 박정애와 민정환과 이광수에게 돌팔매를.
아리랑은 끝나지 않는 노래임을 확인하며 이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