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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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부신 하얀 빛의 할머니와 칠성이. 나는 차라리 그 빛을 따라 바리도 가버렸으면 했다. 12살 바리가 가족과 고향을 떠나 아버지와 이별하고, 언니를 잃고, 할머니를 잃고, 칠성이를 잃으면서 이미 바리는 아귀지옥, 불지옥, 피지옥으로 기어들어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지옥이었구나. 서로 물고 뜯는 지옥, 한 쪽에서는 굶주려 죽고, 또 한 쪽에서는 전쟁 때문에 죽고...우리가 세상에 지어놓은 지옥, 불길과 연기가 끊이지 않는 지옥.

 바리가 지옥을 지나 아니 지옥에서 무장승을 만나고 그나마 가족이 생기면서 다소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샹 언니가 나타나고 '산타클로스의 선물'만한 빨래를 들고 샹과 순이를 남겨두고 빨래방에 가겠다고 말하는 순간 내 가슴은 정말 철렁했다. 그러고는 원망했다. 샤먼이라면서 왜 나도 짐작하는 것을 너는 짐작하지 못하는 거야?! 이어지는 순이의 죽음 앞에 나는 바리를 원망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승과 저승 중간에서 그들을 이어주고 불쌍한 넋을 위로하는 그 넋을 위로함으로써 산 자들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였지 그렇다고 자신에게 닥치는 앞 일 모두를 내다보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만큼 마음이 아팠을 뿐이다.

 순이의 죽음으로 바리는 불바다, 피바다. 기러기 깃털도 가라앉는 모래바다를 지나 무쇠성에 간다. 생명수를 가지러. 그리고 죽은 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결국 무쇠성에 도착한 바리는 넋살이꽃을 꺾어 여러 넋을 구원한다. 그리고 밥해 먹는 보통 물을 마셔보고는 생명수가 아님에 실망하여 돌아온다. 하지만 뒤늦게 자신이 마셨던 물이 생명수임을 까막까치를 통해 알게 될 뿐이다. 어쨌든 돌아오는 길,죽은 자의 질문에 대답해준다. 바리는 순이가 자신과 함께 있음을 깨닫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후 바리는 압둘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할아버지, 세상을 구해낼 생명의 물이 있다면 좋을까요? 그걸 얻을 수만 있다면......' 할아버지의 대답 속에 생명수가 무엇인지 힌트를 숨기고 있다. 작가의 의도겠지?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 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만,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힘센 자의 교만과 힘없는 자의 절망이 이루어낸 지옥에서 우리는 교만한 힘센 자에게 빌붙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경찰차와 앰뷸런스 경적소리가 가득한 거리에서 울고 있는 바리와 알리를 따라 나도 울고 있다. 분단과 대립, 종교, 모든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과 사랑. 그녀의 눈물이 생명수이길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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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갈호수 2007-10-07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망이 존재해야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 그래서 희망을 버려선 안된다는것 비롯 현재 살아가는 모습에서 모든이들이 힘들고 또 괴로워하지만 우린 사람사이에서 희망을 다시 발견해야하는점 그리고 그 중심에서 내가 있다는것 서평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