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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164
박용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7월
평점 :
절판
길을 품은 마음. 이 마음의 주인은 항상 외로운 법이다.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 분명 녹록치 않을 것이다. 이 길은 아직 포장되지 않아 길이라 부르기 힘든, 여기저기 나무들이 솟아나 있고, 바위를 비롯한 무수한 돌들이 굴러다니고, 비좁고 꼬불꼬불 하겠지. 게다가 동행도 없이 이 길에 들어서 가뜩이나 외롭고 힘든데,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며, 간혹 눈발이 날리겠지. 심지어 바람이 심한 날이면 이 길 끝에 있는 바다에서 몰려온 큰 파도가 길을 덥썩 삼켜버려 애써 낸 길조차 없애버리는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아마도 또다른 길을 품겠지. 어리석은, 그래서 존경스러운, 모험가. 화자와 우리 모두!
비 오기 오 분 전
봄날 경춘국도에서
나, 흐른다.
자꾸 사람이 보인다.
그리고 흩어지는 날들,
물 한 잔 마시면
마치 내 몸 속에 마약이 흐르는 것 같다.
마약 같은 길,
나, 어디로든 가려하고
후드득 후드득
꽃들이 장마비처럼 쏟아진다.
덧붙이는 말: 시인은 지구만큼의 무게를 짊어지느라, 그걸 짊어지고 시를 쓰나라 어깨가 남아나지 않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