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분야의 책을 이렇게나 오랜동안 깊이 고심하며 읽었던 때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참 부지런히도 내달렸던 나날이다. 물론 그 마음을 보채는 일이 활력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에 좋았다. 달 초가 되면 신간 목록의 책들을 훑어보고, 어떤 책을 읽게될까 하는 바람부터 내 손에 책이 전해지기 까지, 또한 다 읽고 나서 어떤 물음들이 내게 던져졌나 글을 써보는 과정들이 있었기에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거의 모든 책이 내 좁은 앎의 문턱에서 힘겹게 오르내리며 조롱하는지도 몰랐지만, 기쁨과 때로 크고 작은 감동을 전해주기도 하여서 고마운 이유다. 9기 평가단을 하는 내내 예술이 가져다 주는 풍요로운 기운들을 잔뜩 코로 들이쉬고 조금 더 나은 날숨을 내뱉게 되어 행복하다.
- 신간평가단 활동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지혜로 지은 집, 한국건축>은 우리가 살아온 '집'에 대한 역사와 깊은 성찰을 담은 책이다. 전무하다 싶을 정도로 알지 못한 한국건축의 재료와 쓰임에 관한 것부터, 집의 정신적 세계관까지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건축의 철학에는 어떤 섬세함이 숨어 있는지 알게 된 게 가장 큰 소득이다. 틈 하나에도 어떤 과학적인 구현이 이루어졌는지 상세한 그림 설명과 함께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지혜로 지은 집, 한국건축>은 한국건축의 아름다움을 과학적이고도 섬세한 성찰의 면모로서 전해주는 아주 성실하고 인상깊은 책이었다.
-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미술사라는 말만 들어도 읽기도 전부터 그 방대한 역사와 구분을 어찌 다 알겠는가 하는 한탄부터 나오게 마련이다. 그런데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는 어떤 특정한 유명작가로 대표되는 미술사가 아닌 철학적 역사적 중심에서 자연스럽게 태동된 미술사의 뿌리를 더듬는 책이다. 읽는 내내 모더니즘시대의 위대한 면모가 왜 더욱 돋보이던가를 알게 되었는데, 특히 사회적인 목소리를 냈던 격렬한 예술이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손철주의 글은 놀랍도록 시적이고 단아한 얼굴을 해서 마치 옛 시인을 만난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소박했던 옛사람들과 자연과 사물들을 한 장의 그림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좋았고, 작가가 유심히 바라본 소소한 즐거움을 한장 한장 글로 넘겨 보는 일도 좋았다. 계절이 바뀌거나 여유로운 감정이 드는 순간마다 자꾸 꺼내 읽어보고 싶어지는 책일 것 같다.
이 책은 한국 건축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무지함을 새삼 반성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한국인이면서도 내가 사는 땅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하는 자조감이 이 책을 더욱 파고들라고 부축였다. 작은 돌 하나에도 쓰임이 있는 실용과 속깊은 지혜로움의 더해짐을 세심하게 바라보게 된다. 어떻게 '집'으로 완성되었는가를 아는 일은 정말 소우주의 탄생과정을 아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성찰에 반하고 그만큼 오랜시간을 공들여 읽게 되는 책이다.
세계적인 건축가인데도 그 어떤 외부의 가르침 없이 독학으로 이 자리까지 오게된 점이 놀라웠다. 그의 건축에 대한 철학은 언제나 '떠남'에 있었다. 자발적 방황에서 오는 삶에 대한 물음표가 그가 지은 기둥과 지붕 위를 더돌며 아름답게 빛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굽시니스트의 정치 만화를 읽으면서 그가 어떻게 세상이 바뀌길 바라는지 한숨 섞인 자조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젊은 작가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