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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다시, 유럽
정민아.오재철 지음 / 미호 / 2015년 7월
평점 :
떠날 준비를 하는 이들에겐 다양한 정보로 여행 길잡이를, 마음은 굴뚝 같으나 일상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이들에겐 간접여행의 대리만족을, 떠날 생각 없는 이들에게조차 책장을 넘기는 동안 에세이의 재미를 넘어 저절로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매력을 품은 책이 바로 여행에세이다. 그런 점에서 이책 <함께, 다시,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사진작가의 향기가 느껴지는 멋진 사진들에 감탄하고, 부부가 제각각 들려주는 여행 이야기에 공감하며, 하나씩 풀어내는 보석같은 장소들에 눈을 반짝이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은 그들을 따라 이미 유럽의 어딘가로 달리고 있다. 더불이 그들이 다녀온 여행 루트나 직접 준비하고 몸소 겪은 장기여행 꿀팁까지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으니 <함께, 다시, 여행>은 매력돋는 유럽여행 에세이다.
이책을 알게 된 건 우연히
포털에서 클릭한 기사 덕분이었다. 신혼여행으로 414일 간 세계여행을 떠난 신혼부부, 그 흔한 커플링 하나 없이
결혼을 했고 그동안 모아둔 돈과 갖고 있는 물건들을 처분해 마련한 경비로 장기여행길에 올랐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세 개의 대륙에서 일년 넘는 시간을 함께 여행하는 동안 한 번도 안 싸웠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대체 이런 용기와 이해심을
가진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졌다. 그 호기심이 <함께, 다시, 유럽>을 펼치게 만들었다.
중남미 222일,
유럽 96일, 북미 96일로 총 414일 간 이어진 그들 부부의 신혼여행 루트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책의 앞부분에 공개되어 있다.
여행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문득 여행은 중남미에서 시작됐는데 왜 첫 여행책의 장소로 유럽을 골랐을까 하고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앞서 저자 서문에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답이 나와 있는데,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먼 남미보다 친숙한 유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이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란다. 그런 이유로 그들 부부가 여행한 세 대륙 중 유럽 여행이야기가 먼저 세상에 나왔다.
남미를 여행하고 왔다고 하면 용기가 대단하다며 다들 놀라워하지만 그뿐입니다. 그러나 정작 유럽 여행
얘기를 풀어내면 눈을 더 반짝이며 빠져 듣곤 합니다. 질문도 훨씬 많고요. (중략) 아직 멀고 멀게만 느껴지는 남미보다 언제고 한 번 갈 수
있을 것 같은 유럽이 더 친근하게 와 닿나 봐요. 그래서 이책에는 조금 먼저 들려주고 싶은 유럽 여행에 대한 기록을 담았습니다. (22~23쪽,
'그녀'의 서문 중)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함께 있었더라도 여행은 각자에게 다르게 기억된다. 일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개의 대륙을 여행한 그들 부부 역시
마찬가지였고, 서로의 다른 기억을 함께 이야기 해보자는 것이 이책을 쓴 동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함께,
다시, 유럽>은 그와 그녀의 이야기가 함께 담겼고, 그들의 유럽 여행을 관통하는 스무 개의 테마에 그와 그녀의 이야기가 담긴 마흔 개의
이야기 보따리로 채워졌다.
비밀장소, 마을, 섬, 낭만, 드라이브, 영화, 축제, 건축, 사람, 공연, 아침, 밤 등의
테마별로 여행자의 궁극의 추억들만 골라 공유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이책의 장점이다. 또한 책의 순서나 흐름에 관계없이 관심있는 주제를
찾아 읽어도 좋다. 주제별로 담긴 그와 그녀의 이야기 모두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라 (묵직한 책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면) 들고 다니며 틈틈이 한
꼭지씩 읽기에 좋다. 그들 여행 경로의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여행하듯 따라가고 싶었던 독자라면 이런 주제별 구성이 다소 아쉬겠지만, 이책의 집필
동기 자체가 서로의 다른 기억을 함께 풀어내는 것에 있었으니 그런 점에선 의도에 충실한 구성이라 하겠다.
사람들의 얼굴이 제각각인 것처럼 성격도 다르고, 보고 싶은 것, 경험하고 싶은 것도 제각각 다르다.
또, 그날그날의 기분이나 몸 상태에 따라서 여행지에서 받는 느낌과 감동도 각자 다른 게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 좋았다고 극찬하는
그곳에 대해 난 별로였다 말하기를 꺼린다. 남들과 다른 의견을 내고, 다른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모두가 똑같을
수 없고, 똑같이 살 수 있다 해도 그게 진짜 행복은 아닌데 말이다. (15쪽, '그'의 서문 중)
<함께, 다시,
여행>은 시작부터 한 장의 동굴 사진만으로 나를 매료시켰다. 스무 개의 주제 중 처음으로 말을 건 테마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그들만의 비밀장소였는데, 그가 꼽은 포르투칼 베나길의 해식동굴인 히든비치는 사진만으로도 감탄사를 뽑아내며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 역시 웅녀히 본 한 장의 사진에 반해 물어물어 어렵사리 찾은 곳이라는데, 그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만으로도 그런
고생을 할 가치가 충분히 있어 보였다. 이런 멋진 곳에 온전히 둘의 시간을 보내다 왔다니 그들 부부의 여행이 한층 더 흥미로워졌고 책장 넘어가는
속도도 빨라졌다.
그들 부부가 꼽은 유럽의 곳곳은 익숙한 곳도 있고 낯선 곳도 있었는데, 각각 나름의 인상을 남겼다. 작년에
다녀온 남해의 독일마을이 떠오르는 파스텔톤의 그림 같은 풍경의 스페인 네르하에서는 두 손 꼭 잡고 길을 걷는 노부부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인상적이었고, 열 갈래쯤 뻗은 화살표 표지판이 안내하는 스위스 체르마트는 컨디션에 따라 원하면 언제든지 트레킹 코스를 바꿔 걸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 체력을 길러 마터호른이 지키고 있는 체르마트 트레킹 코스에 도전해보고픈 생각도 들었다. 도대체 어디일까 궁금했던 책표지는 그녀의
드라이브 장소로 꼽힌 야생의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사진이었고, 나에겐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로맨틱한 공간으로 기억되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그에겐 살고 싶은 유럽의 도시로 꼽혔다.
그가 고요한 아침을 만끽했다던 이탈리아의 치비타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모델이라는 말에 책에는 없는 치비타의 전경을 보려고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했고, 니스에서 마티스와
샤갈의 작은 미술관을 찾거나 꼭 가보고 싶었던 이탈리아 폼페이나 스페인의 가우디 건축물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부러움에 침을 꼴깍 삼켰다.
반면 그 즐거움이 상상이 되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끄의 거꾸로 집 이야기는 웃음을 머금게 했다. 사진만으로 로망이 되어버린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수상 오페라도 기억에 남지만, 느린 여행자가 누리는 카페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은 내가 직접 경험해 봤기에 더 공감이 됐다.
저자인 '그'의 직업이
사진작가인 만큼 <함께, 다시, 유럽>에 담긴 여행사진들은 참 좋다. 전문가의 포스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아름다운 유럽의 모습을 담아낸 사진들이 마치 그곳에 같이 있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때론 한 장의 사진이 긴 글보다 더 강렬하고 생생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가. 이책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풍성하게 실린 여행사진들은 <함께, 다시, 유럽>의 또다른 주인공이다.
이책이 이런 묵직함을 자랑하게 된 것 역시 고퀄의 사진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다만 개인적으로 실려있는 사진에 설명이
전혀 없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물론 장소를 먼저 정하고 글이 진행되는 방식이라 굳이 코멘트를 요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지만, (나만 그랬는지는
몰라도) 간혹 어디쯤인지 지명이 뭔지 궁금해지는 사진들이 있는데 알 방법이 없어 답답할 때가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우고
읽어내려 갔기에 더 여행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으로 여행을 따라가는 독자를 위해 전부는 아니더라도 몇몇 사진에는 약간의
설명을 달아주었음 어땠을까 싶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면
생각지도 않았던 꼭지가 나오는데, 여행의 준비부터 도착까지 장기여행의 꿀팁들을 따로 모아놨다. 여행경비 마련부터
배낭고르기, 짐싸기, 여행 정보 모으기,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사진을 위한 카메라와 데이터 보관법 같은 준비과정 등이 그들의 실제 준비과정과
함께 잘 정리되어 있다. 여행 준비가 막막했던 이들이라면 저자 부부의 경험에서 나온 친절한 조언이 큰 도움이 될 듯하다.
또한
이동 수단의 선택, 리스와 렌터카의 차이점, 렌터카 고를 때 유의점, 숙소 고르는 법, 돈 아끼는 식사법 등 여행 현장에서 필요한 여러가지
팁들이 소개되어 있다. 특히 식비 항목에서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거지처럼 때우기'라는 소제목에서 빵 터졌는데, 가장 큰 지출을 요하는 외식
대신 직접 장을 봐서 요리한 경험에서 비롯된 깨알같은 장보기와 초간단 요리 팁들을 소개한다. 그외 레포츠, 문화 관람, 축제 등 여행의 큰
즐거움인 여러 체험거리에 대한 부분도 함께 곁들여 놓았다.
<함께, 다시,
유럽>은 유럽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부담없이 읽기 좋은 여행에세이다. 사진 작가가 찍은 유럽 분위기 물씬 풍기는 멋진 사진들이 많아
보는 재미가 있고, 글 또한 술술 잘 읽히고 길이 또한 길지 않아 금방금방 넘어간다. 무엇보다 그들 부부가 소개하는 마흔 개의 추천여행지 중 잘
몰랐던 유럽의 반짝이는 장소를 많이 알게 되어 좋았다. 다음에 언젠가 유럽을 가게 된다면 이책을 길잡이 삼아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벌써 몇
곳이나 생겼고, 저자의 추천처럼 여행사진에 대해서 공부해 보고 싶어진 것도 나름 수확이었다.
크고 묵직해서 휴대용 책으로 갖고
다니기엔 좀 부담스럽지만, 책장을 넘길 때 손에 착 달라붙는 종이의 질감이 좋고(나는 이런 것도 좀 중요한 편이라 ㅋ) 여행의 즐거움을 전해줄
여행사진의 색감도 좋다.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책이 참 예쁘다. 세련되고 간결한 표지 디자인의 첫 느낌이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곁에 두고
자주 손을 뻗고 싶어지는 책이다.
처음에는 각자 따로였지만,
이번에는 '함께' '다시' 찾은 '유럽'인 만큼 <함께, 다시, 유럽>에서 그들 부부는 예전과는 달리 '함께 하는 여행'의 묘미를
느끼고 경험한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에 더욱 행복했던 그들의 여행 이야기는 이책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나 글을 읽고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그래서 그들의 여행기가 즐거웠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기나긴 여행을 통해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한 관계의 성장은 물론 일상의 우리를 얽매는 소유 욕구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마음의 성장까지
얻었다니 이거야말로 정말 제대로 부러워진다.
그들 부부가 다녀온 세계여행의 세 대륙 중 유럽이 첫 포문을 열었으니 그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은 중남미일지 북미일지 궁금해진다. 아름다운 사진과 그들만의 경험이 녹아든 이야기로 글을 풀어낸다면 어느 곳이든 좋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나는 중남미 대륙이 두 번째 책의 주인공이었으면 싶다. 너무 멀어 직접 날아가진 못하지만, 정말 가보고 싶은 곳들이 많은 신비로운
중남미의 매력에 다시 한번 빠져보고 싶기 때문이다. 용감한 도전을 아름답게 마무리한 그들 부부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
어쩌면 우리는 너무 앞만 보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정해져 있는 인생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길이 외롭고 고달픈데도 숙명인 양 그길만을 고집한다. 빨리 간다고 해서, 멀리까지 간다고 해서 많은 것을 보는 것은 결코 아닐 텐데, 뒤처질세라 앞을 향해 열심히 걷고 또 걷는다. 갈 수 있는 곳까지만 가보면 어떨까? 내일을 바라보기보다 오늘을 둘러보면 우리 삶이 좀 더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89쪽)
한국으로 돌아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자 그저 한바탕 꿈을 꾸었던 것처럼 언제 세계 여행을 하고 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일상에 완벽히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길다고 생각했던 14개월은 인생에서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마음가짐이겠지요. 떠나기 전에는 무엇을 가져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주변을 신경 쓰며 전전긍긍 살았던 것 같아요. (중략) 세계 여행을 하는 동안에 길 위에서 우린 참 많이 웃고 행복했습니다. 물론 힘들고, 위험하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괴로워하거나 좌절하기보다는 그날의 작은 행복에 더 많이 기뻐했던 것 같습니다. (중략)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우리가 가진 거라곤 내 몸뚱이만 한 배낭 하나뿐인데 왜 이리 행복할까? 행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구나!`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무언가를 넘치게 소유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요. 이제는 모든 것을 가지려 집착하지 않고 그저 저희에게 필요한 만큼만 가지려 합니다. (386쪽)
여행의 감동은 봐야 할 것의 크기에 비례하진 않는다. 크고 대단한 것을 보지 않았다고 해서 그 여행이 결코 헛된 건 아니라는 사실! 먼 곳만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어 내리면 내 발아래의 반짝이는 은화 한 닢이 보인다. 몽트뢰의 조그마한 카페에서 되찾은 여유로운 일주일은 여행 중에 발견한 뜻밖의 행운이자 크나큰 행복이었다. (224쪽)
여행을 하면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건과 사람들이 있다. 잔뜩 기대에 부풀엇다고 해서 그에 부응하는 좋은 일만 생기는 것도 아니오, 항상 주위를 살핀다고 해서 나쁜 일을 모조리 피해갈 수 있는 것만도 아니더라. 여행이란 그야말로 `우연`과 `타이밍`이 만들어 내는 예측 불가능한 반전의 시나리오. 우연히 들른 한 평범한 마을에서 때마침 옆을 지나가던 꽃미남들에 이끌려 아름다운 한 쌍의 커플을 만난 것처럼. (299쪽)
여행의 추억이란 건 객관적인 기록보다는 그 이전 혹은 이후에 무엇을 했는지, 누구와 함께였는지, 당시의 기분이 어땠는지 등 지극히 주관적이고도 개인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눈은 호강했지만 결론적으로 손에는 쥘 수 없었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월드에서의 허무함 vs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마주보며 마음껏 웃고 즐기며 남긴 사진 한 장의 만족감.` 어쩌면 내가 경험한 것들 중 가장 보잘 것 없고 소소했던 거꾸로 집 체험이 내게는 그 어느 때보다 인상적이었던 체험으로 기억된 것처럼 말이다.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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