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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퀘스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4월
평점 :
흥미진진하면서도 진중했던 소설 《빅 피처》로 많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이후 꾸준히 마니아를 형성해 왔던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신작이 나왔다. 《빅 피처》 이후 연이어 읽었던 《더 잡》이나 《파이브 데이즈》처럼 이번에도 (당연히!) 눈을 떼지 못할 만큼 흡인력 있는 소설을 기대했는데, 예상외로 소설이 아니라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에세이였다. 책을 펼칠 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약간의 의심이 남아 있었지만 그의 글은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삶의 깊고 진지한 이야기를 던지는 와중에도 읽는 재미와 특유의 흡인력 있는 속도감은 여전했으니 말이다.
'대답을 기대할 수 없는 큰 질문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빅 퀘스천》의 원제는 《all the big question》이다. 대체 어떤 물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길래 이렇게나 거창한 제목을 붙였나 호기심이 일어나 평소 잘 안 보던 목차를 살펴보니, 흐음, 제목에 걸맞게 질문 하나하나가 녹록치 않은 깊이와 통찰을 요하는 것들이다. 행복과 불행, 인생의 덫, 비극, 종교, 용서, 삶의 균형 등 작가가 이책을 통해 던지는 일곱가지 질문들은 순탄치 않았던 기본적으로 그의 인생에서 시작되었지만 사실 근본적으로 우리 모두가 고민하는 삶의 물음이 아닐까 싶다.
1. 행복은 순간순간 나타나는 것일까?
2. 인생의 덫은 모두 우리 스스로 놓은 것일까?
3. 우리는 왜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야기를 재구성하는가?
4. 비극은 우리가 살아 있는 대가인가?
5. 영혼은 신의 손에 있을까, 길거리에 있을까?
6. 왜‘용서’만이 유일한 선택인가?
7. 중년에 스케이트를 배우는 것은‘균형’의 적절한 은유가 될 수 있을까?
책의 차례를 적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퀘스천》의 경우 목차 자체가 작가가 이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이며 기본 골격을 이루기에 일곱 가지 질문이자 목차를 그대로 옮겨봤다. 솔직히 차례만 봐서는 행복, 비극, 용서 등 너무 막연한 주제 같기도 하고 중년의 스케이트는 다소 뜬금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호기심과 의문들은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사라지고 작가가 털어놓는 그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던지는 인생에 대한 질문에 금세 빠져들게 된다.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는 《빅 퀘스천》에서 자신의 다소 불행했던 성장기와 불편한 부모님과의 관계, 순탄치 않았던 결혼생활과 그것을 정리하는 이혼 과정에서 겪은 심리적 고통 등 그가 인생에서 직면했던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털어놓는다. 자신과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덧보탠다. 그리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고민해간다.
작가가 겪는 괴로움의 대부분은 불행한 가정에서 시작된다. 서로 맞지 않은 탓에 불화가 끊이지 않았던 부모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성장기를 보낸 그는 대학 진학으로 부모에게서 벗어나더니 아예 고국인 미국을 떠나 영국에서 자리를 잡는다. 소설가가 되기 전엔 여행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글을 썼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해 귀여운 아이들을 낳았다. 그러나 행복했던 그의 결혼 역시 그들 부모처럼 틈이 생기며 삐걱대기 시작했고 비극의 나날들이 이어졌다. 더이상 회복불가능한 상태임을 알지만 가정을 깨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불안하게 유지됐던 결혼생활은 결국 종지부를 찍었고, 이혼은 그를 비극에서 건져내주는 계기가 되었다. 드디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체에 걸쳐 자신의 결혼과 이혼을 언급하며 이혼을 택한 것이 얼마나 옳은 결정이었는지를 끊임없이 언급한다. 더불어 자신과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지만 다른 선택을 한 지인들의 일화를 통해 돌파구 없는 결혼생활을 끌고 가면서 불행해지기보다 어렵고 힘들지만 이혼을 통해 잃어버렸던 자신의 삶과 행복을 되찾길 강조한다. 결혼생활이 힘든 커플 이야기를 할 때면 어김없이 이혼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어찌나 읊어대는지 가끔 그 의도가 의뭉스럽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면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의 '이혼'은 어찌보면 우리 인생에서 한때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불행을 끝낼 수 있는 '선택'의 또다른 비유가 아닐까 싶다.
불행한 결혼과 함께 작가를 괴롭히는 또다른 존재는 바로 그의 부모님이다. 억압적이고 고집불통인 아버지와 신경증적이고 이기적인 어머니는 끊이지 않는 불화로 어린시절 그에게 불안감을 심어주었고 자라서는 부모님과의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그 거리를 좁혀 다가가려는 손길을 뿌리치고 냉정한 말들로 아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겨 오랫동안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을 끊고 살았던 그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부모님의 연락으로 다시 만난다. 그렇지만 소설가로 성공한 아들에게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부모의 태도에 작가는 그동안 참았던 분노를 폭발하고 만다.
《빅 퀘스천》에서 던지는 행복과 인생의 덫, 기억의 조작, 비극 등은 대부분 불행했던 그의 결혼생활과 그것을 끝낸 선택인 이혼, 소통의 창구를 찾기 힘든 부모와의 관계와 관련이 있다. 때론 참을 수 없이 힘들고 견딜 수 없이 분노가 치밀지만 인생의 덫은 스스로가 놓은 것이라는 깨달음을 통해 비극에서 벗어나 행복을 찾아가는 작가의 삶의 태도와 관점은 이런 복잡다단한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용서해야 한다는 그의 깨달음은 나 역시 그것을 경험했기에 더욱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의미있는 선택일 게다.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야 작가의 허심탄회한 고백이 무척이나 흥미진진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그것도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비교적 담담하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작가의 용기가 조금은 놀라웠다. 작가 역시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이야기를 거론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겠지만, 책을 읽다보면 삶의 암울했던 단면들을 끄집어내어 정면으로 마주하는 이런 글쓰기가 어떤 면에서는 그에게 또다른 치유의 과정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소라의 노래 '바람이 분다'에는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이 부분이 가장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데, 《빅 퀘스천》의 세번째 질문인 '우리는 왜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야기를 재구성하는가?'를 읽으면서 이 구절이 다시 생각났다. 불행한 결혼은 두 사람이 사이에 일어나지만 각자 다른 기억을 남긴다. 그리고 각자 자기 입장에서 유리하게 이야기는 재구성되고 상대에 대한 분노는 커진다. 작가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이런 왜곡의 과정을 솔직히 인정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써나갔다. '인생의 덫'에서 벗어나 '비극'을 극복할 치유법을 찾은 것이다.
책을 고를 때 제목 못지 않게 표지그림에도 관심이 많은데, 《빅 퀘스천》의 경우 제목과 표지그림이 선뜻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어정쩡한 자세로 스케이트를 타는 남자의 그림이 인생의 큰 질문들과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목차의 일곱번째 질문을 봤을 때도 조금은 생뚱맞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질문에 대한 더글라스 케네디의 글을 읽으면서 드디어 의아했던 표지그림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눈치챌 수 있었다. 스케이트 타기는 말하자면 또다른 인생 과정의 은유였던 거다.
삶에 산적한 온갖 문제속에서 작가는 '굳어지지 말 것, 무릎을 굽히고 균형을 잡을 것,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써 볼 것'을 당부한다. 살다보면 생각지 못했던 온갖 일들이 펼쳐질 것이다. 작가처럼 불우한 성장기를 보내 부모와 불화가 있을 수도 있고,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로 인해 불행할 수도 있고, 아이가 간질과 자폐 진단을 받아 부모를 비탄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유연함을 잃지 않고 삶의 균형을 지키며 어떻게든 나아간다면 우리 인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미워했던 부모를 용서하거나, 이혼을 결심함으로써 불행을 끝내고 새로운 삶을 찾거나, 희생과 노력으로 아들의 장애를 딛고 훌륭히 키워낸 작가처럼 말이다.
가볍지 않은 삶의 질문을 다루는 에세이이지만 《빅 퀘스천》은 그리 어렵지 않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다른 소설 못지 않게 속도감 있게 술술 잘 읽힌다. 자신의 삶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와 비록 이름과 직업은 바꾸었지만 그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지인들의 일화들도 재미를 더한다. 그럼에도 제목의 묵직함에 걸맞는 진지하고 깊이 있는 성찰을 담은 내용은 독자들로 하여금 작가와 함께 '빅퀘스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보게 만든다. 잘 읽히지만 마냥 가볍지 않은 것이 이책의 장점이다. 더불어 이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인생의 여러 문제들에 부딪쳐 힘들 때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하다면 이책 《빅 퀘스천》을 추천하고 싶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만만찮은 삶의 어려움을 먼저 경험한 인생 선배로서 들려주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꼭 큰 문제에 부딪친 것은 아니지만 보다 당당한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은 이에게도 이책을 권한다. 작가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면에서 참고하거나 고민해볼 부분이 많은 것은 분명하니 말이다. :)
`계속 달리지 않으면 내가 달리 뭘 할 수 있을까?` (중략) `인생에는 힘든 길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에 우리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게 아닐까?` 특별한 일, 즐거운 일, 평범한 일 속에서 우리는 목전에 임박한 비극과 부조리한 운명을 헤치고 넘어서야 한다. 우리는 돌고 또 돌고 또 돌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지럽고 어렵고 어마어마한 신비를 껴안기 위해 우리는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 나는 멋진 자세는 아닐지언정 비교적 무난하게 스케이트 링크를 돌고 있었다. 동그란 원은 최종 목적지도, 미래도, 종착지도 없었다. 하지만 몇 달 만에 처음이므로 나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얼음 위를 미끄러지며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알고 싶어도 내 앞에 펼쳐질 미래를 알 수는 없지 않은가?` (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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