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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생각과의 대화 - 내 영혼에 조용한 기쁨을 선사해준
이하준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연초가 되면 늘 그랬듯 피어나는 여러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중 단연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내 삶을 잘 살아낼 수 있을까이다. 나이 한 살이 더해지면서 그만큼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늘 그렇듯 새해에는 새로운 마음을 담아 조금 더 알차게 살아보고 싶다는 욕심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쉽게 답을 찾고 실천할 수 없는 고민인 만큼 매년 큰 진전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또 포기할 수는 없는지라 올해도 내 삶을 조금은 튼실하게 채워줄 수 있는 인문서 몇 권을 골랐다. 그중 한 권이 이책 이하준 교수의 <오래된 생각과의 대화>였다. 우리 삶에 관한 테마로 써내려간 고전읽기라는 점에서 마음이 동했다.
고백하건데 나는 고전과 친하지 않다. 고전문학과도 거리를 두고 있으니 고전철학은 말이 필요없을 정도다. 평소 관심은 있지만 마음과 달리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분야 중의 최고봉이 바로 철학인데, 삶의 통찰력을 얻고 싶은 마음에 손을 뻗었다가도 어느새 제자리 맴돌기를 반복하며 난독증을 느끼게 만드는 텍스트들의 심오함에 절망하며 금세 손을 들어버리곤 한다. 심오한 고전 철학을 가까이 하기엔 나의 이해력과 통찰력이 아직은 너무 부족한 탓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어려운 그 텍스트들이 원망스럽기도 한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그래서 어려운 텍스트를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책을 찾았고 이책을 만났다. <오래된 생각과의 대화>는 책제목처럼 저자는 '오래된 생각'인 고전 찰학들과 편안하게 대화하듯 쉽고 친절한 글쓰기로 이야기를 풀어내어 나처럼 철학적 지식이 일천한 독자들도 어렵지 않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또한 비교적 대중적이고 친근한 매체인 영화를 예시로 들어 설명한 덕분에 한결 이해가 수월했던 것도 이책의 장점이다. 이책은 쇼펜하우어의 고독부터 하이데거의 죽음까지 우리 삶의 중요한 가치에 대한 여러 철학자들의 이야기들을 두루 만나볼 수 있는데, 전반적으로 쉽게 잘 읽히는 편이지만 그 내용이 마냥 쉽지만은 않아서 어떤 부분은 천천히 곱씹으면서 읽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은 앞으로 되돌려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으며 책장을 넘겨나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그 덕분에 각각의 지점에서 나의 상황과 생각들을 투영하는 책읽기를 할 수 있었다.
이하준 교수의 고전읽기인 <오래된 생각과의 대화>는 우리 삶을 이루는 중요한 주제인 '나(자아)', '사랑', '관계', '삶'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읽었고 읽는 동안 곳곳에 가장 많은 포스트잇을 붙인 꼭지가 바로 '나'였다. 최근 반복된 가벼운 책읽기와는 다른 자세로 텍스트를 따라가느라 적잖은 적응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요즘 '내'가 나의 가장 큰 고민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읽고 다시 또 읽고를 반복하길 여러 번 했는데, 쇼펜하우어의 고독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습관이 가장 강렬했고, 니체와 데카르트는 난제였다.
- 쇼펜하우어는 권고한다. 사교의 번거로움이나 낭비를 피하고 당신의 고독을 즐기라고. 그리고 어쩌면 더 중요한 한 마디, 사람들을위한 불필요한 희생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당신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고. 정말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고자 한다면 당신의 고독을 사랑하라고 말이다. 권위와 타자에 대한 적절한 무관심은 관대함의 원천이 될 수 있고 그것이 당신의 고독 속에서 나온다고 말이다. 고흐를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당신의 별을 보고 당신의 길을 걸으며 당신의 노래를 부르는 것, 그것이 고독을 즐기는 것이다. 그럴 때 당신은 누구 앞에서도 담대하고 어떤 경우에도 담담하게 대응할 수 있다. 고독을 즐기는 당신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진주를 품은 조개처럼. (29-30쪽)
현대인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의 관계 속에 놓여 있다. 의미없는 관계들에 염증을 느끼기도 하지만 막상 혼자가 되었을 때 느끼는 외로움에 쉽게 그 끈을 놓지 못하기도 한다. 흔히 고독과 외로움을 같은 것이라 착각하기도 하는데, 관계에서 기인하는 외로움과 달리 고독은 오롯이 자신에 대해 느끼는 실존적 정서로,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자신과 만나고 대화하는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사람만이 정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독립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무수한 관계 속에서 지쳐 막상 가장 중요한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이 바로 나의 모습이기도 하여 이책을 여는 쇼펜하우어의 고독은 더 깊게 다가왔고 책에 대한 어려움 대신 흥미가 한층 커졌다.
'나에 관하여'에서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외로움 사이에서는 쇼펜하우어의 고독을, 인생의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니체의 초인을, 생각없는 책읽기에 대한 반성을 고민할 때 데카르트의 사유를, 요즘 시대에 더욱 생각해보게 되는 자유에 관해서는 밀의 자유를, 요즘 나의 큰 고민 중의 하나에 대한 대답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습관을, 그리고 에피쿠로스의 쾌락과 몽테뉴의 자아까지 여러 철학자들을 소환하며 '나'를 들여다보고 고민할 거리들을 던져준다.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방치해두었던 나라는 존재에 대해 천천히 생각을 곱씹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기에 이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부분이기도 했다.
'사랑에 관하여' 꼭지는 '나에 관하여' 보다는 한결 읽기가 수월했다. 생각하며 읽기에 대한 약간의 단련이 되기도 했지만, 사랑은 늘 흥미롭고 관심있는 주제 중 하나여서 그렇지 않나 싶다. 그중 개인적으로 벡의 장거리 사랑에 대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오랜 장거리 연애와 결혼 후 얼마 동안은 주말부부를 하다 살림을 합친 지인을 보며 했던 생각들을 책에서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만연한 다양한 형태의 장거리 사랑의 원인에 대한 부분에서는 씁쓸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더불어 아도르노의 사랑의 죽음 편도 재밌었는데, 주체 대 주체로서의 사랑의 관계를 정립하고 양성의 평등적 질서로 성적 차이를 인정하는 남성 사회의 극복으로 현재 결혼 제도의 남녀의 종속적 의존관계를 극복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격한 공감과 함께 책장을 넘기기도 했다. 아도르노의 사랑의 죽음 편도 격한 공감으로 책장을 넘긴 파트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넘격한 공감과 함께 책장을 넘겼다.
- 아도르노가 말하는 진정한 사랑의회복을 위해서는 사랑의 독특한 능력을 되살려야 한다. 사랑의 독특한 능력이란 차이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아도르노에게는 '차이를 지각하는 능력'이 '사랑의 조건'이며, 동시에 '유사하지 않은 것에서 유사성을 지각'하는 것이 '사랑의 능력'이다. 이와 같은 차이와 유사성을 발견하려는 것은 사랑의 동일성이 아닌 '사랑의 비동일성'을 확보하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아도르노에게 진정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은 사랑의 대상을 동일화의 논리 속에 강제하지 않고, 사랑하는 대상의 차이를 인정하고, 주체로서 지각하며, 그 주체와 구성적 관계를 맺는 것에 달려 있다. (164쪽)
인간(人間)이라는 한자에서도 보듯이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그 테두리에 속해 있는 동안 여러 관계들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여서 살아오는 내내 사람들과의 관계는 내게 큰 숙제다. 그렇기에 '관계'라는 테마는 '나' 못지 않게 각별했는데, '나'들이 모여 이루는 게 '관계'인 만큼 앞서 읽었던 '나에 대하여'에서 짚었던 부분들과 연결되는 지점들이 많아서 좀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친구와의 우정,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또다른 감정인 질투, 관계 형성의 중요한 감정인 공감, 거짓을 판별하는 정확한 앎을 바탕으로 진실에 대해 다루는 부분도 재미있었고,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한층 가깝게 다가온 이방인에 대한 내용도 되새겨볼만 했지만, 그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가장 사로잡은 건 바로 '타인과의 거리두기'를 다룬 리스먼의 거리의 파토스 편이었다.
타인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저자는 영화 <아메리칸 뷰티>를 예로 들며 등장인물들의 타인지향적인 삶과 그로인한 불안과 외로움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것이 남얘기로 느껴지는 건 남의 시선이나 평가를 유난히 의식하고 튀는 걸 싫어하는 한국문화 속 우리 삶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리스먼은 '인간은 제각기 다른 존재로서 창조되었다. 그런데 서로 똑같아지기 위해서 사회적 자유와 개인적인 자율성을 상실하고 있'기에 불안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며, 그 대안으로 자율지향성 인간을 말한다. 자율지향적 인간이란 사회에 대한 적응력과 순응력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인간으로, '거리 두기'를 통해 비판적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타인과의 거리 두기'를 통해 삶의 지향점을 밖에서 내적인 지점으로 가져오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다. 이는 책의 시작을 열었던 고독 편과도 연결되는데, 이는 관계 역시 그 중심에는 나 자신이 있음을 말해준다. 타인과의 관계에 힘들고 그로 인해 불안하고 외로웠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리스먼 편을 조금 더 음미하며 읽어보길 추천한다.
- 중요한 것은 자율 지향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리 두기'가 가장 중요합니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로부터 거리 두기는 자기 성찰과 자기비판 및 타자 비판도 가능하게 합니다. 발전적 의미에서 말이죠. 자율 지향형 인간이 되는 것은 니체가 말하는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의지'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거리의 파토스(Pathos der Distanz)'가 필요한 것이죠. 밖의 세계, 타자와 거리를 두려는 시도와 노력이 있어야만 사람은 자신을 보기 시작합니다. 창조적 파괴라는 망치와 더불어 당신 자신과 타자를 미소 짓게 만드는 꽃을 든 사람, 그러면서 거리의 파토스를 만들어내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190-191쪽)
마지막 테마는 '삶에 관하여'로, 루소의 숙명, 프롬의 실존, 프로이트의 딜레마, 몽테뉴의 단순함, 키케로의 늙음, 하이데거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느 것 하나도 빼놓을 수 없는 우리 삶의 여러 요소들을 다루고 있는데, 저자의 친절한 고전읽기를 통해 옛 철학자들의 오래된 생각들을 즐겁게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설파하는 것들이 현실의 지점들과 맞물리며 단지 예전의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지금의 우리들을 다시 되돌아보고 다시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나 자신의 삶'은 그것만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 그래도 우리는 집단지성의 힘과 우리 자신들을 믿고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해방 이후 경험한 한국식의 천박한 소유적 실존 양식을 확대재생산 한느 것을 막기 위해, 그리고 프롬이 말하는 '개개인에게 생존 근거를 마련하는 것', '합당한 노동 조건', 시장의 빅브라더만을 위한 '자유 시장 경제의 포기'를 위해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이러한 결단만이 새로운 당신, 새로운 당신의 가족, 새로운 당신의 한국 사회의 가능성을 열 수 있다. 소유와 탐욕의 "싸움으로 아우성치는 이곳에서 숨을 쉬기 위한 변화의 결단이 필요하다. 형식적 합리성의 테두리 안에 질 좋은 삶의 내용을 담아내고, 소유적 삶을 강요하는 사회를 바꾸기 위한 결단을 지금, 여기서 해야 하는 것이다. (254쪽)
이하준 교수의 <오래된 생각과의 대화>는 고전읽기를 통해 깊이있는 생각과 통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저자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과 이해하기 쉬운 친절한 설명을 통해 고전철학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걷어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이 이책을 읽은 가장 큰 보람이 아닐까 싶다. 고전은 누군가의 해석이 덧보태진 주석이 아닌 원전을 읽어야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물론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나처럼 고전철학 난독증 증세를 보이는 독자라면 무턱대고 어려운 고전읽기에 매달리기보다 이책 같은 친절한 해설서를 통해 고전과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이책에 언급된 철학자들의 저서를 직접 찾아 읽을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고전철학을 다룬다는 점에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이책에 진심 마음이 확 끌리게 된 건 책의 서문 덕분이었다. 한동안 서점가를 휩쓸었던 고전읽기의 열풍 속에 인문고전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고전 읽기는 '생각 따라하기'가 아니라 '오래된 생각과 나의 생각 사이의 대화'라고, 그리고 고전이라는 권위에 눌릴 필요 없이 읽고 싶을 때 읽고 던져버리고 싶을 때 던져버리면 그만이라는 저자의 말은 고전에 대한 압박감과 부담을 한결 덜어낸 채 이책을 펼칠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저자는 서문에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어렵지 않고 흥미롭게 인문고전의 숲으로 가는 가이드 역할을 충실히 해준다. 친절한 고전 해설자인 저자를 따라 오래된 생각과의 쫄깃한 대화를 위해 <오래된 생각과의 대화>를 다시 처음부터 다시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
- 사람들은 인문 고전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우를 범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 고전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오늘날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한 시대를 살았던 한 인간의 고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이유로 모든 고전은 나름의 한계가 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우리의 삶 속에서 재해석하고 맥락화해야 한다. (중략) 영혼을 만나는 것이 고전 읽기이고 인문학적 태도이자 삶이다. (중략) 고전은 사색하고 숙고하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며 존재를 고양시킨다. 나는 고전이 우리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고 말하고 싶다. 고전은 나의 선입견, 나의 편견, 나 자신의 관념 체계를 벗어나는 자유정신의 힘을 우리에게 준다.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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