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유럽, 핀란드 - 따루와 연희의 사적이고 주관적인 핀란드 길라잡이
따루 살미넨, 이연희 지음 / 비아북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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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눈 덮인 자작나무숲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휘바휘바~를 외치며 춤추던 자일리톨껌 광고 정도가 핀란드에 대한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거기에 내 마음을 훔쳐간 귀염둥이 캐릭터 무민가족과 미수다의 따루, 그리고 핀란드를 배경으로 했던 일본영화 「카모메 식당」이 추가됐다. 그리고 핀란드 여행에세이 <가장 가까운 유럽, 핀란드>를 읽고 난 지금은 한국과 비슷한 고난의 역사를 거쳐왔고 조용하지만 술과 음악, 사우나를 좋아하며 아름다운 숲과 호수를 품고 있는 가보고 싶은 나라라는 호감이 더해졌다. 책을 덮은 뒤 그녀들이 누볐던 핀란드의 곳곳을 직접 밟아보고 싶어질 정도였다.

미수다는 즐겨 보지 않았지만 평소 한국 막걸리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드러내고 외국인으로서 한국사회에 대한 소신있는 발언을 아끼지 않던 따루에 대해 호감이 있었다. <가장 가까운 유럽, 핀란드>는 그런 따루와 그녀의 오랜 술친구인 이연희 님이 작당하여 떠난 핀란드 여행이야기라는 점만으로도 일단 충분히 흥미로웠다. 더불어 넘쳐나는 유럽여행기들 중에서 핀란드만 단독으로, 그것도 핀란드인과 한국인이 함께 한 여행이란 차별성도 색다른 재미를 던져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동안 적지 않은 여행에세이를 섭렵한 내게도 아직 미지의 영역이자 요즘 애정하고 있는 귀염둥이 무민의 나라이기에 핀란드가 더욱 궁금해졌다.






북유럽에 위치한 핀란드는 한반도의 1.5배 정도의 영토를 갖고 있으며 국토의 70%가 산림으로 이루어져 있는 숲과 호수의 나라다. 스웨덴, 러시아 같은 강대국들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한반도처럼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고난의 세월을 겪었으며,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할 정도로 우리나라 만큼 교육열이 높다. 산타와 무민의 나라, 디자인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외 국가경쟁력 1위, 교육경쟁력 1위, 국제학력평가 1위, 반부패지수 1위 등의 부러운 숫자를 달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고.

본격적인 핀란드 여행보따리를 풀기 전에 맛보기로 실어둔 핀란드의 정보글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핀란드도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하며 겨울이 기온은 낮지만 바다 덕분에 생각보다 그리 춥지 않다는 부분이었다. 핀란드라면 온세상을 덮어버리는 새하얀 눈의 나라 이미지를 떠올리던 나로서는 정말 의외의 정보였다. 이를 증명하듯 따루는 프롤로그에서 한국사람들이 핀란드가 엄청나게 춥고 물가도 비쌀 거라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춥지 않고 물가 또한 한국보다 저렴한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핀란드는 유럽 국가 중 비행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라고. <가장 가까운 유럽, 핀란드>라는 이책 제목에 대한 궁금증을 프롤로그를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따루와 이연희 작가는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세 번에 걸친 핀란드 여행을 통해 세 개의 계절을 경험하며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를 시작으로, 뚜르꾸, 땀뻬레, 코리아, 호수 지역, 올란드, 라플란드까지 총 7개의 핀란드의 대표적인 지역을 여행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핀란드 지도 그림이 그려진 책표지에는 이책에서 소개하는 7개의 지명들이 표기되어 있어 책표지만으로 그녀들의 행선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더불어 책표지 그림만 봐도 눈치챘겠지만, 산타마을이 있는 라플란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들은 따듯한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핀란드 여행의 시작점인 헬싱키는 아시다시피 핀란드의 수도다. 수도임에도 시내가 작아서 도보로 구경할 수 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사진만 봐도 흥미돋는 암석교회와 우리나라의 강화도를 떠올리게 한다는 수오멘린나 요새, 야외시장과 핀란드를 대표한다는 도자기 브랜드인 아라비아 공장 등에 가보고 싶어졌다. 헬싱키 이전의 옛수도이자 핀란드의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뚜르꾸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고성도 인상적이었지만 싸게 즐기는 아우라강의 유람선과 함께 무민 덕후라면 난딸리의 무민월드를 놓칠 수 없을 듯하다. 맥도날드를 밀어낼 정도로 핀란드인들의 사랑을 받는 국민버거라는 헤스버거도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핀란드 최고의 공업도시인 땀뻬레는 공업도시임에도 화석 연료 대신 수력발전을 이용해 대기오염 걱정이 없고 심지어 뛰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고. 대기오염이 없는 공업도시라니 우리나라에서는 참으로 상상이 안 되는 풍경이라 더 신기했다. 따루의 부모님이 사시는 코리아(Koria)는 Korea랑 철자는 다르지만 같은 발음으로 이름부터 친근감을 폴폴 풍기는 곳이었는데, 따루 부모님과 함께 한 여행의 시간들이 독자들의 입가에도 미소를 띄웠다.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야외에서 버섯을 채취하고 마을에서 벌이는 댄스파티에 참석하는 등 핀란드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한결 더 가깝게 경험한 이야기들이 펼쳐져 재밌었다.

18만개의 섬과 19만개의 호수를 갖고 있다는 핀란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호수 지역! 핀란드에서 특히 호수가 많은 곳을 예르비 수오미라고 하는데, 이 꼭지에서는 아름다운 핀란드의 자연에 대한 예찬이 이어진다. 호수와 숲은 나의 상상력도 자극해서 핀란드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더욱 부추겼다. 특히 핀란드 유일의 동방정교회 수도원인 발라모 수도원에서 숙박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끌렸다. 670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핀란드의 제주도라 칭할 수 있는 올란도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자전거 여행을 한 그들을 따라 가는 길 만나는 자연과 함께 게스트하우스 예찬 또한 군침이 돌게 했다. 마지막은 산타 마을이 있는 라플란드로, 핀란드가 눈의 나라임을 이곳에서야 제대로 실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추운 건 너무 싫지만 그래도 그녀들이 가본 산타마을에는 꼭 한번 가보고 싶어진다.






헬싱키의 노동절 바뿌 축제로 풀어낸 핀란드 여행보따리는 곳곳을 종횡무진하며 핀란드의 아름다운 자연과 핀란드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를 전한다. 말이 필요없는 풍광 못지 않게 내 눈길을 사로잡는 건 우리와 다른, 그래서 닮고 싶은 핀란드 사회에 대한 것들이었다. 바뿌 축제 기간 지지하는 당의 행진을 하는 이들을 보며 자유롭게 의사 표현하는 핀란드의 사회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고, 핀란드의 맥주는 우리나라처럼 특정 업체의 독점구조 없이 여러 양조장이 공존한다는 사실에 귀가 반짝였다. 한때 따루가 알바를 했던 가게 방문에서는 단 하루를 일해도 노동계약서를 작성하고 지자체에 신고하는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는 덕분에 핀란드에서는 요즘 우리 사회의 최대 이슈 중 하나인 갑질 논란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쯤엔 부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뽀리에서 따루 할머니를 뵙기 위해 찾은 복지시설에 대한 부분에서는 핀란드의 노인복지를 가늠해볼 수도 있었다. 특별한 자격이나 조건 없이 누구나 원하면 복지가 잘 되어 있는 양로원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고 63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연금을 준다는 핀란드의 복지에 대해 읽다보니 노인 빈곤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우리 사회랑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어 씁쓸해졌다. 코리아(Koria)의 초등학교 선생님인 따루 엄마를 방문한 꼭지에서는 한동안 큰 붐이었던 핀란드 교육이 언급된다. 바로 옆의 친구가 경쟁자로 내모는 극한의 경쟁구조인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 경쟁을 금지하고 낙오자 없는 교육을 지향하는 핀란드의 교육 이야기는 마냥 꿈처럼 들렸다. 우리 교육은 언제쯤 이런 핀란드식 교육을 할 수 있을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 해도 참 묘연하게만 느껴져 마음이 착찹해진다.

- 객관식이 없는 나라, 오로지 주관식으로만 시험을 보는 학생들, 핀란드에서는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교육하는 것을 그 핵심으로 삼는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학생 위주로 교육이 움직이는 우리나라와 달리 핀란드는 학습 능력이 떨어지고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에게 집중하는 구조다. (중략) 물론 핀란드에서도 가정환경, 부모의 능력에 따라 출발점이 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우리와 상이하다. 핀란드 학교는 경쟁을 금지한다. 성적표는 있지만 등수는 표기하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수준에 맞게 설정한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가 기록된다. 즉, 경쟁 대상은 내 옆의 친구가 아니라 나 자신이기 때문에 친구와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는 것이다. (194-195쪽)






또한 인상적이었던 게 개방적인 핀란드의 도서관 문화였다. 대학도서관임에도 어린이와 노인 외부인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각잡고 앉아 책을 읽어야 하는 우리네 도서관 열람실과 달리 푹신한 의자에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는 사람들, 그네를 타고 노는 아이들, 헤드셋을 쓰고 음악을 감상하는 할아버지에 대한 묘사는 저자 만큼이나 내게도 충격적이었다. 핀란드 국민들이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는 건 이런 열린 공간을 지향하기 때문이 아닐런지. 요즘 우리나라에도 이런 오픈마인드적인 어린이 도서관들이 많이 생기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자유롭게 책과 친해질 수 있는 핀란드의 도서관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도 있었는데, 우리가 흔히 쓰는 '사우나'라는 말이 핀란드어라는 것! 핀란드 사람들에게 사우나는 일상 그 자체인데, 집집마다 사우나가 있고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는 공용 사우나를 지어야 한다는 의무규정이 있을 정도라니 사우나에 대한 핀란드 사람들의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핀란드인에게 토요일은 보통 사우나를 하는 날이고 명절이나 중요한 날에도 빠지지 않는 것이 사우나란다. 바뿌 축제 캠핑장에 통나무집 이동 사우나가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호수가 많은 핀란드에는 호수 옆에 사우나가 설치되어 있어 핀란드인들은 호수 수영과 사우나를 번갈아 하며 즐긴다니 사우나의 나라라고 해도 좋을 듯했다.








따루와 이연희 작가가 공동집필한 <가장 가까운 유럽, 핀란드>에서 여행기의 본문은 이연희 작가가, 각 지역의 말미에 첨부되어 있는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 같은 여행정보와 핀란드 요점정리 부분은 핀란드인인 따루가 각각 담당해서 꾸려놓았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핀란드를 바라보는 이연희 작가의 여행기는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유쾌하게 이어져 목넘김이 좋은 맥주처럼 글이 술술 읽힌다. 맥주 애호가인 이연희 작가의 취향이 글에도 반영된 건지도 모르겠다.

핀란드 각 지역의 여행정보는 따루가 핀란드인의 정보력을 바탕으로 상세하고 친절하게 조목조목 잘 정리해 놓았다. 이것만 있으면 핀란드에 떨어져서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디테일하다. 덕분에 앞으로 핀란드 여행갈 때는 <가장 가까운 유럽, 핀란드>는 필수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따루와 무민으로 인해 친근해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먼 북유럽의 나라 핀란드. 산타마을, 자일리톨껌 정도로만 알던 핀란드에서 이렇게나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따뜻한 사람들이 있으며 그 사이에 만들어지는 풍성한 이야기거리들을 두 여인네가 떠난 핀란드 여행기를 담은 책 <가장 가까운 유럽, 핀란드> 덕분에 알게 된 시간이었다. 물리적 거리는 여전히 멀지만 심리적 거리는 한결 더 가까워졌다고나 할까.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다보니 어느새 책의 마지막장에 다다랐고 책을 덮자 그동안 글과 사진으로 만난 핀란드를 언젠가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불끈 솟아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짐을 싸서 떠나고 싶지만 어디 현실이 그리 녹록한가. 언제 떠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일정이지만 그래도 언젠간 꼭 한 번 가보리라, 무민도 만나고 올란도의 자전거 여행도 하며 고풍스런 게스트하우스에도 묵고, 라플란드의 썰매도 타보리라 마음 속으로나마 계획을 세워본다.

핀란드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 또는 핀란드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따루와 이연희 작가의 핀란드 여행기 <가장 가까운 유럽, 핀란드>를 만나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아마 책을 덮을 쯤 당신도 핀란드에 반해 당장 짐을 싸고 싶어질 듯하다. 나처럼 말이다. :)








+ 오탈자 
p.99 10번째 줄 : 벤치에 않아 →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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