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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 물건을 버린 후 찾아온 12가지 놀라운 인생의 변화
사사키 후미오 지음, 김윤경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얼마 전 이사를 했다. 날을 정하고 이삿짐을 싸기 시작하면서 새삼 놀랐던 건 곳곳에 숨어있던 다양한 물건들의 존재였다. 처음 독립할 때 비교적 단출했던 이삿짐과 달리 그곳에 살았던 세월의 흐름만큼 온갖 다양한 물건들이 흔적처럼 남아있었다. 혼자 살림이라 나름대로는 가급적 짐을 늘리지 않으려 최소한의 가구와 살림살이만 갖추고 살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걸 이번에 이삿짐을 싸면서 알게 됐다. 더불어 말로만 듣던 이삿짐의 가장 큰 적이 책장에 빼곡하게 쌓여있는 책들이라는 얘기를 온몸으로 느끼기도 했다. 이삿짐을 싸면서 적지 않은 물건들을 버리고 왔음에도 짐을 풀면서 뭔가 애매한 물건들이 자꾸자꾸 나왔다. 예뻐서, 선물받아서, 언젠가 쓸 것 같아서, 버리기 아까워서 등등 온갖 이름표를 단 물건들이 새집에서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한 채 상자에 담겨 아직도 방황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달 부모님집 내방도 이사를 했다. 미처 갖고 오지 못했던, 방의 삼면을 가득 채웠던 책장들과 책들을 비어있던 작은방으로 옮기고 예전 내방을 부모님의 공간으로 새로 꾸몄다. 그러면서 독립하면서 미처 갖고 나오지 못했던, 그방에서 살았던 십여년의 세월 동안 켜켜이 쌓였던 내 시간들의 흔적 같은 물건들을 타의적으로 정리를 해야 했다. 이번에도 만만치가 않았다. 하지만 이삿짐을 싸며 물건에 대한 소유욕을 어느 정도 덜어내는 연습을 한 터라 이번에는 비교적 쉬웠다. 물건에 대한 집착과 불필요한 소유욕을 버리니 정리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이번에도 적지 않은 양의 물건들을 버렸고,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줄 물건들은 따로 담아두었다.
내게는 비교적 큰일이었던 두 번의 짐정리를 겪고 나니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물건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필요해서 샀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필요없는 물건들이 많았고, 그것만 가지면 큰 행복을 느낄 것 같던 물건들은 어느새 한쪽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좁은 집이 점점 더 좁아졌고, 열심히 정리를 해도 금세 어지럽혀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물건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을 버리니 불필요한 물건들이 많아졌고 그것들을 버릴 용기가 났다. 십여 년을 모았던 미니 영화포스터를 버렸고(물론 아끼는 일부는 남겨뒀지만;;), 오래된 수험서를 버렸고, 매년 모아뒀던 다이어리 달력을 버렸다. 책을 살 때마다 악착같이 받아서 모아두었던 각종 사은품들도 나눔 바구니에 들어갔다. 물건을 비우니 복잡하던 집에 공간이 생겼고 내 마음에도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소극적으로 소소한 비움을 시작하던 쯤 우연히 들어갔던 블로그에서 미니멀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고 나눔으로써 삶에 필요한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인다며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나 역시 이사를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던 중이라 흥미로웠는데, 때마침 연말연시를 맞아 각종 매체에서 미니멀리스트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이책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소개글을 접하게 됐다. '단순하게 살기'라는 제목의 단어와 표지에 걸린 심플하기 그지없는 방안의 사진이 눈길을 사로잡았고 책을 펼치게 됐다.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으로만 사는 미니멀리즘과 그것을 실천하는 미니멀리스트의 이야기를 담은 이책은 책제목이 그대로 책내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온갖 물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발 딛을 틈조차 없던 집에 살던 저자는 방을 가득 채우던 물건들을 버리고 비움의 삶을 택하면서 변화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건들을 버리니 삶이 바뀌었다니! 처음에는 그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지만,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물건들을 사들이고 집착하고 소유하던 삶에서 벗어나 '물건'이 아닌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의 취지에 깊이 공감은 하지만 솔직히 글쓴이처럼 살 자신은 없다. 책장에 꽂힌 아끼는 책들을 모두 버릴 자신도 없고 몇 벌의 단출한 옷만 남기고 나머지 옷들을 처분할 용기도 없다. 하지만 필요없는 물건들을 사들이고 그것들을 소유하기 위해 정력을 쏟는 뻘짓을 더이상은 그만해야겠다고, 내 서랍장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버리기 아깝거나' '언젠가 쓸지도 모를' 물건들을 어서 비워내야겠다는 생각만큼은 확실하게 들었다. 그리고 비움을 실천해본 사람들은 안다. 무언가를 버렸을 때의 그 해방감을. 그것들을 보며 가졌던 이런저런 죄책감이나 부담으로부터 한결 가벼워지는, 그 비움만큼 마음이 넓어지는 그런 느낌을 말이다.
이사한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짐정리가 끝나지 않았다. 단순하게 살고 싶은 마음과 그럼에도 완전히 버릴 수 없는 물욕의 충돌로 방황하고 있는 짐들이 아직 곳곳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차마 버리지 못했던 그것들을 이책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덕분에 비교적 홀가분하게 이별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처럼 모든 것을 정리하고 정말 단순하게 살기는 힘들겠지만 앞으로 물건을 늘이기보다 있는 물건들을 정리해가며 삶에서 '나'의 지분을 키워나가야겠다. 다소 뻔하고 자주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삶을 가볍게 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만나볼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