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더 사랑하는 법 -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일상의 재발견
미란다 줄라이, 해럴 플레처 엮음, 김지은 옮김 / 앨리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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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나를 더 사랑하는 법 │ 미란다 줄라이, 해럴 플레처 │ 김지은(옮김) │ 앨리스(문학동네) │ 2009.12  



어떤 책으로 새해를 시작할까 책장을 둘러보다가 이책 앞에서 눈길이 멈췄다.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이라니, 제목부터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덕분에 바로 나의 새해 첫 책으로 낙찰됐다. 생각보다 제법 두툼하긴 했지만 사진이 많아 금방 읽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책장 넘기는 속도가 그리 숨가쁘지 않았지만 오히려 중간중간 생각하게 만드는 구석이 많아 더 좋았다. 물론 그것 때문에 '새해 첫 책'의 영광은 도서관에서 충동적으로 빌려왔던 도네이션북에게 넘겨야 했지만, 그래도 야금야금 음미하며 읽는 맛이 나쁘지 않았다.

2002년 두 명의 예술가 미란다 줄라이와 해럴 플레처는 '나를 더 사랑하는 법(Learning To Love You More)'이란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그곳을 통해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자신과 주변, 그리고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과제들을 제시했고, 그것을 직접 실행한 사람들은 사진과 글, 동영상 등을 통해 과제에 대한 결과물을 보냈다. 입소문을 타고 웹사이트 방문자는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고 과제에 대한 수행물들도 다양한 모습을 띠었다. 책으로 출간된 뒤에도 꾸준히 진행되던 프로젝트는 2009년 5월의 과제를 끝으로 지난 8년 간의 여행을 마감했단다.

이책 <나를 더 사랑하는 법>(앨리스, 2009)은 미란다 줄라이와 해럴 플레처가 개설한 웹사이트 '나를 더 사랑하는 법'에서 제시되었던 과제에 따른 결과물들 중 일부를 골라 실은 책이다. 차례가 적힌 바닥에는 이책이 출간되기까지 제시되었던 63개의 과제가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과제에는 형광펜이 칠해져 있고 또 어떤 과제는 그냥 밋밋하게 제목만 적혀 있다. 처음에는 차례를 보고 무척 의아했는데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차이를 금세 알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이책에는 모든 과제의 결과물이 아닌 극히 일부만이 실렸다. 그래서 결과물이 실린 과제에만 노란 형광펜을 칠해 구별해 두었다. 물론 과제 끝에는 본문 페이지가 붙어 있다.

응원의 게시물 만들기, 누군가의 주근깨나 점을 연결해 별자리 그리기, 다른 사람 머리 땋아주기, 나를 울렸던 영화의 한 장면 그려보기, 낯선 사람들에게 손을 잡게 한 뒤 그 모습을 사진에 담기, 중요한 날 입었던 옷을 사진으로 찍어보기, 과거의 자신에게 충고하기 등 이색적이고 독특한 과제에 따른 재미있는 수행물들이 실려 있다. 플래시를 터뜨린 채 침대 아래 사진 찍기에서는 먼지 쌓인 침대 밑의 다양한 모습에 웃음짓게 했고, 일상 생활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도자료처럼 써보기는 평범한 일상을 색다른 눈으로 들여다보게 했다. 부모님이 키스하는 모습 사진 찍기는 키스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써보기는 가장 가슴 짠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었다. 

위의 과제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꼭 해야 하는 숙제도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수많은 결과물들을 함께 내놓았다. 그들을 움직이게 한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아마도 그건 나를 사랑하는 법을 찾게 하고자 하는 이 프로젝트의 기본 취지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예전에 열광했던 영화나 책을 떠올리고, 키스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다른 사람의 점을 연결하거나 머리를 땋으며 잊고 지냈던 일상의 사소한 재미를 재발견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거나 힘들었던 과거의 일이나 상처에 대한 고백을 통해 타인은 물론 나 자신으로부터 위안을 받기도 한다.

'나를 더 사랑하는 법'에서 제시하는 과제들은 나를 사랑하는 법이 특별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의 작고 소소한 것에서 비롯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전해준다.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사람들은 일상 속에 숨어있는 무수한 행복들을 다시 찾아내면서 그로 인해 행복해 하고 감동한다. 그리고 그들의 위로는 이책을 통해 그대로 전해진다. 그렇기에 큼직한 사진들이 잔뜩 섞여있는 이책을 다 읽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책이 끝났는데 다른 한 권의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 이책은 두 권의 책으로 묶여 있다. 다른 한 권은 바로 이책을 옮긴 김지은 아나운서가 한국에서 진행한 과제와 수행물들을 엮은 <나를 더 사랑하는 법 : 한국판>이 그것이다. 총 15개의 과제로 진행되었고 600 여개의 수행물들이 올라왔단다. 이책 역시 그중 일부만을 실었는데, 15개 과제와 결과물이 모두 담겨 있다는 점과 매 과제마다 김지은 아나운서의 글이 빠지지 않고 함께 한다는 점이 한국판 만의 특징이라 하겠다.

한국판의 서문에 이책을 엮은 김지은 아나운서는 "이 책은 '읽는' 책이 아니라 '(실천)하는' 책이라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이야기한다. 그냥 읽고 넘기지 말고 책에 담긴 과제들을 실행함으로써 그 재미와 감동을 직접 경험해 보라는 당부인 것이다. 책이 제시한 과제를 따라가도 좋고, 또는 책과는 다른 나만의 과제를 내고 그것을 실천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일상의 재발견'이라는 이책의 부제처럼 올해는 자신만의 '나를 더 사랑하는 법'으로 심심했던 일상 속에서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겉으로는 한 권이지만 그 속엔 두 권이 나란히 묶여 있다. 쉽게 분책이 가능하도록 제본되어 있다.
다만 분책하지 않으려고 해도 책을 읽다보면 뒷편에 있는 '한국편'이 자연스레 '독립'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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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네몽's 그림일기 2 + 사랑 중
김네몽 지음 / IWELL(아이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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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네몽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오두막』 관련 카툰을 통해서였다. 만화는 좋아하나 귀차니즘에 인터넷에서 일부러 만화를 찾아보는 편은 아니라서 김네몽이라는 이름은 조금 낯설었지만 얼굴만으로 표현된 그림과 파스텔톤의 색채, 그리고 따듯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만화들도 한 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게으름에 내내 미루고 있었는데 이번에 이렇게 단행본 책으로 만났다. 벌써 2권,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걸 보니 나만 몰랐을 뿐 꽤 오랜 기간을 연재한 모양이다.

김네몽의 이번 두 번째 책인 『김네몽's 그림일기2 + 사랑 中』에는 제목처럼 「김네몽's 그림일기」와 함께 「사랑 中」이 함께 담겨있다. 대략 4대 6 정도의 비중으로, 분량으로만 따지자면 「사랑 中」이 「김네몽's 그림일기」보다 더 많다. 하지만 메인 타이틀의 힘을 무시할 수 없기에 이책의 제목은 여전히 「김네몽's 그림일기」가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랑 中」의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수도. 그러나 책의 앞뒷면을 활용해 각각의 타이틀에 맞는 표지를 함께 마련해 두어 그 서운함을 덜었다. 더불어 독자에게는 한 권으로 두 권의 풍성한 기분을 선물한다.

손에 잡히는대로 펼치다 보니 둘 중 「사랑 中」을 먼저 읽게 됐다. 「사랑 中」은 제목 그대로 인류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을 다룬 카툰으로, 남녀가 연애하면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과 고민들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원래 공모전용으로 기획했으나 독자들의 좋은 반응에 힘입어 장편으로 리뉴얼해 연재중이라고. 연인들의 알콩달콩 또는 티격태격 하는 이야기가 매력적인 「사랑 中」은, 작가의 고백에 따르자면, 작가 김네몽과 이제는 그녀의 남편이 된 산상님과의 연애 경험이 99.8%인 논픽션 카툰이란다. 그런 까닭에 「사랑 中」에 등장하는 연애에 대한 고민과 해법 들은 특수하지만 동시에 보편적이다. 다만 옆구리 시린 솔로들이 읽기엔 염장샷이 너무 많다, 흐흐.

「사랑 中」이 다소 진지한 분위기를 풍긴다면 「김네몽's 그림일기」는 이등신인 김네몽 캐릭터처럼 유쾌하고 귀여운 생활툰이다. 아이크림을 눈두덩이에 바르는 실수를 저지르거나, 균을 배양하는 티벳 버섯에 열광하며, 특별한 걸 해먹으려고 고민만 하다가 결국 평범한 김치볶음밥을 해 먹고, 이삿짐들을 차근차근 정리하려다 결국 KO패 당하는 등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법한 에피소드들로 채워져 있다. 책 전체를 아우르는 굵직한 스토리를 갖고 있진 않지만, 일상 생활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소재들은 독자와 소통의 장을 넓혀준다. 그것이 생활툰의 매력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이삿짐을 싸는 장면에서 '계절별 재질이 다른 내복 슈트'라는 한 줄에 빵~ 터졌다. 그제서야 변치않는 김네몽의 분홍 줄무늬 의상(?)이 눈에 들어왔다나 뭐라나. 

『김네몽's 그림일기2 + 사랑 中』에 담긴 이야기들은 발랄하고 상큼하고 유쾌하다. 그리고 항상 따듯한 시선을, 마음을, 메시지를 잊지 않는다. 한 마디로 착한 카툰이다. 선한 것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작가는 그런 착한 메시지들을 자신의 그림에 담아 유쾌한 이야기로 완성해 낸다. 매사 착한 메시지를 전하다보니 이야기가 다소 교훈적으로 비춰질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식상하거나 지루하지는 않다. 단순하고 귀여운 그림체와 재치있는 유머가 그런 것들을 상쇄시켜 주기 때문이다. 더불어 생활툰답게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재미를 다시 보게 해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랑 중, 연애 중이던 작가 김네몽이 마지막 에피소드처럼 남자친구 산상님과 결혼식을 올렸다. 연인에서 부부가 된 그들의 변화만큼 「김네몽's 그림일기」에서도 자취와 연애에 대한 이야기 대신 새내기 부부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들이 대거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인생의 새로운 장을 시작한 새댁 김네몽의 이야기는 작가의 개인홈피인 김네몽닷컴에서 미리 맛볼 수 있다고 하니 언제 한 번 들러봐야겠다. 어쩌면 못말리는 귀차니즘에 3권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지도 모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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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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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아한 거짓말 │ 김려령 │ 창비 │ 2009.11 


작년에 김려령의 『완득이』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악조건으로 점철된 상황에서도 쿨한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자신의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완득이는 작가 김려령이란 이름 세 자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녀의 신작을 주저없이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려령의 신작 『우아한 거짓말』은 '내일을 계획하던 천지가, 오늘 죽었다'라는 단 한 줄의 문장이 알려주듯 유쾌ㆍ상쾌ㆍ통쾌한 웃음과 눈물을 함께 선사했던 『완득이』와는 꽤나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였다. 낯설었지만 여전히 가슴을 울렸다.

열 네살 소녀 천지가 죽었다. 평소의 모습과 달리 전세값 때문에 고민하는 엄마에게 몇 달이나 뒤에 있는 생일선물을 앞당겨 최신형 mp3를 당장 사달라고 조르던, 엄마가 출근하고 언니 만지가 학교로 먼저 출발한 그날 아침에 천지는 길게 뜨게질한 빨간실에 목을 의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언니 만지의 시험이 끝나면 책상을 리폼해 주겠다고 약속하던 천지였다. 조용하고 말이 적지만 애어른처럼 속이 깊었던 아이, 그런 천지가 왜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 엄마도 만지도 이해할 수가 없다.

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던 만지는 천지가 남긴 흔적을 좇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제자를 잃은 천지의 담임 선생님도 어떻게든 사건을 조용히 무마하려는 학교 측과 별도로 나름의 조사를 시작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천지의 단짝을 자칭하던 화연, 만지의 친구 동생이자 천지의 동창 미라, 천지의 체육복을 빌린 수경, 이사온 집의 옆집 남자인 오대오, 보신각을 운영하는 화연의 부모, 그리고 천지의 가족인 만지와 엄마를 거치면서 천지의 죽음의 이유라는 퍼즐을 하나씩 맞춰간다. 

오랜 세월 동안 교묘하고도 끈질기게 천지를 이용하고 괴롭히며 아이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키려던 화연의 행동은 누가 봐도 천지를 죽음으로 내몬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화연의 괴롭힘을 방해하는 조력자처럼 보였으나 실은 무심한 방관자에 불과했던 미라, 뜻밖에 우울한 천지의 내면을 눈치챘지만 더이상 도움을 주지 못한 오대오, 그리고 살아가느라 또는 자신의 일에 바빠 천지가 보내던 무언의 신호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엄마와 만지 또한 천지의 죽음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우아한 거짓말』은 왕따와 자살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완득이』에서 보여준 가볍지만 진지한 촌철살인의 문장과 인물들의 쿨한 태도 또한 그대로 가져왔다. 조용하고 속이 깊은 천지에 비해 모든 것에 무심한 듯 건성건성인 만지의 행동과 말투는 여자 완득이를 떠올리게 한다. 만지의 엄마 또한 남편에 이은 딸의 죽음을 맞을 때나 자신에게 들러붙는 양아치 곽만호와 그의 자식들을 대면할 때, 그리고 자신의 딸을 죽음으로 내몬 아이의 부모를 찾아갔을 때도 신파적인 모습 대신 쿨한 담담함을 보인다. 비록 후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눈물짓긴 하지만 말이다.

작가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았던 열네 살의 소녀 천지가 왜 죽음을 택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밝혀감과 동시에 엄마와 만지, 화연과 미라를 통해 남겨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들도 함께 보여준다. 천지를 죽음으로 내몬 가장 큰 이유는 화연의 괴롭힘이지만, 그런 천지를 방관한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적잖은 책임이 있다. 그렇기에 갑작스런 죽음 이후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과 아픔을 나누지 못한 죄책감,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증오심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천지를 내몰았던 화연을 보듬어 안는 만지를 통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에 대한 이야기 또한 빼놓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임을, 우리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김려령의 『우아한 거짓말』을 읽는 동안 올초에 만났던 졔이 아세르의 『루머의 루머의 루머』가 여러 번 겹쳐졌다. 구체적인 사건과 진행 방향이 다르긴 하지만, 누군가의 악의적인 소문과 왕따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죽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남겼으며, 끝없이 보내는 무언의 SOS 신호를 눈치채지 못해 뒤늦게 후회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런 아픈 경험 후에 다음의 예비 희생자를 보듬으며 일말의 희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두 소설은 많이 닮아있다. 또한 둘 다 무심코 내뱉는 말이 때론 누군가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진심어린 따듯한 말 한 마디가 때론 누군가에겐 얼마나 큰 위로가 될 수 있는지를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아직 많은 작품을 접해보진 못했지만 작가 김려령은 자신의 말처럼 성장소설(또는 청소년 소설)에서 빛을 발하는 작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고민을 그들의 언어로 풀어내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또한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되 마냥 무겁거나 진지하지만은 않게 해주는 가벼움의 미학이나 인물들에 대한 따듯한 시선 또한 그녀의 장점이다. 덕분에 자살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 『우아한 거짓말』은 남의 이야기 같은 우리들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것이 김려령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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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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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는 잘 해요 │ 이기호 │ 현대문학 │ 2009.11 


'이기호'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그의 단편소설집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를 통해서였으나 가장 먼저 읽은 책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재치있게 잡아낸 한 뼘 에세이 『독고다이』였다. 통통 튀는 제목처럼 『독고다이(獨 Go Die)』에서 펼쳐지는 그의 재기발랄함에 반한 나는 그의 전작인 단숨에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는 물론 『최순덕 성령충만기』까지 세트로 장만했다.

그러나 웃기게도 정작 내가 처음 읽은 이기호 작가의 소설책은, 그책들이 아니라, 포털사이트 Daum에 연재했던 소설인 『사과는 잘해요』가 됐다. 모든 게 내 게으름 탓임을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이책을 덮으며 그의 단편소설들을 먼저 읽어봤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의 첫 장편소설 『사과는 잘 해요』는 에세이집 『독고다이』를 읽으며 기대했던 것과는 한결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시봉과 '나'는 시설에서 처음 만났다. 시설에서 그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약을 먹었고, 양말이나 비누를 포장해 시설원생이 다같이 찍은 사진을 덧붙였다. 그리고 이유도 모른 채 매일 매를 맞았다. 매를 맞기 전에 그들은 자신이 지은 죄를 고백해야 했고, 어떤 죄를 고백하느냐에 따라 매의 정도가 달라졌다. 그러나 죄를 고백하지 않는 날에는 더욱 많이 맞았다. 그래서 그들은 매일매일 새로운 죄를 찾거나 생각해내느라 바빴다. 그리고 그뒤엔 반드시 고백했던 죄를 지었다. 사과했던 죄를 짓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시설원생의 수가 늘어나자 복지사들은 이번에는 그들에게 시설원생들의 죄를 대신 고백하는 반장의 임무를 맡겼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죄를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죄가 없다던 사람들도 계속되는 구타와 집요한 질문에 결국 자신의 죄를 하나둘 고백하기 시작했다. 사과할 죄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들이 대신 찾아주기도 했다. 그렇게 나와 시봉은 복지사들에게 시설원생들의 죄를 대신 사과했고, 그들의 발길질을 받으며 반장으로서의 우쭐함을 느꼈다. 

그렇게 약과 폭력에 길들여진 채 살던 중 시설에 새로 도착한 구렛나루 아저씨로 인해 일대 파란이 일어난다. 시설의 관계자는 잡혀갔고, 시설은 폐쇄됐으며, 시설원생들은 시설에서 나왔다. 약도 폭력도 없는 세상으로 나왔지만 나와 시봉은 오히려 어지러움을 느낀다. 시봉의 동생 집에 얹혀살면서 그들이 밥값을 하고자 생각해 낸 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사과해 주는, 일명 사과대행업이다. 죄를 고백하고 사과하는 것은 시설에서부터 쭉 해왔던 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뢰인이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의 죄를 대신 사과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죄를 찾아야 했다. 끊임없이 죄를 찾고 죄를 알려주고 그 죄를 고백하며 사과하기를 집요하게 종용하는 나와 시봉의 행동은 악의는 없었지만 평온하던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에게 사과를 위한 다른 죄를 만드는가 하면 반드시 사과하겠다는 일념에 예상외의 방법으로 사과를 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사과가 계속될수록 일은 꼬여가고 사람들은 점점 불행해진다.


『사과는 잘해요』는 이기호의 다른 책들처럼 쉽게 술술 읽힌다. 그러나 그 내용은 그리 가볍지 않다. 정신연령이 멈춰버린 나, 진만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들은 신문의 사회면에서 접하던 우리 사회의 그늘진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시설에서 나와 시봉의 일상이었던 알약과 폭력은 그들의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폭력 전 그들을 괴롭혔던 '죄'와 '사과'의 문제는 시설을 나온 뒤에도 그들을 지배한다. 그리고 사과 대행을 위해 끊임없이 사람들의 죄를 찾고 묻고 사과를 종용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사회적 폭력의 피해자에서 어느새 가해자가 된다.

『사과는 잘해요』에서 '사과'는 지은 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닌, 앞으로 지을 죄를 미리 선언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사과를 하는 순간, 그들이 시설의 복지사에게 했던 것처럼, 그 죄는 지어야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정육점 주인과 뿔테 남자를 그렇게 만들었고, 진만 자신 또한 그렇게 했다. 작가는 진만과 시봉은 물론 시설의 원장과 복지사, 시연과 뿔테 안경 남자, 정육점 주인과 과일가게 주인, 사과대행 의뢰인과 김밥집 여자라는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우리들의 죄에 대해, 죄의 의미에 대해 반문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죄를 지으며 살고 있는지, 그 죄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샴쌍둥이처럼 모든 걸 함께 하던 나와 시봉 사이에 균열이 감지되면서 이야기는 끝을 향한다. 그리고 생각지 못했던 깜짝 반전도 등장한다.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한 상태라 조금 놀랐고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에 조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나와 시봉의 이야기는 끝까지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그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실 자체가 아이러니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가볍게 읽히는 글과 달리 책을 덮을 때 마음은 묵직하고 공허해진다.


책 뒷면에 수록된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되었던 『사과는 잘해요』는 단행본으로 출간되면서 골격만 그대로 가져왔을 뿐 완전히 새로 씌여졌다고 한다. 소설 분량도 반으로 줄었단다. 인터넷 연재글은 읽어보질 않아 이 책과 얼마만큼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미 발표된 글을 완전히 새로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재작업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는 박범신 작가의 그 '한마디'가 뭔지 참으로 궁금할 뿐이다. 마지막장을 덮으며 작가에게 이 소설의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카프카의 『심판』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부디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세상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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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 - 7차 개정판
폴라 비가운 지음, 최지현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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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마라! (7차 개정판) │ 폴라 비가운 │ 중앙북스 │ 2008.06  


오랜 세월 뾰루지를 구비한 저질피부와 함께 하다보니 피부 건강에 대해 관심이 많다. 화장품 또한 색조보다는 피부와 보다 직접적 관련이 있는 기초 화장품에 민감한 편이다. 물론 게으름 덕분에 그 정보들을 제대로 활용하진 못하고 있긴 하지만. 그러다 얼마전 천연 화장품 DIY 과정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눈에 보이는 피부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피부 속의 구조나 시스템, 구성성분을 알게 됐고, 그와 함께 피부에 작용하는 화장품 성분에 대해 주목하게 됐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화장품 비평가 폴라 비가운의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를 만나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말라니? 직설적이고도 발칙한 제목 덕분에 이책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번역하면서 출판사에서 변형한 제목인가 했더니 원서 제목도 'Don't go to the cosmetics counter without me'다. 너무나도 자신만만한 제목에 슬쩍 웃음이 새어나올 뻔 했는데, 막상 실제로 책을 보니 제목에서 뿜어나오는 자신감이 괜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1200쪽을 훌쩍 넘기는 두툼한 두께가 주는 묵직함이 그랬고, 그중 1000쪽을 넘는 지면이 현재 판매중인 71개 브랜드의 기초와 색조 화장품에 대한 리뷰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 또한 그러했다.

 


내가 만난 책은 가장 최근에 출간된 7차 개정판(2008년 6월)이다. 아무래도 해마다 수많은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화장품 업계를 다루다 보니 그에 대해 리뷰한 이책 또한 여러 번 업데이트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7차 개정판이 다른 개정판들보다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화장품의 숨겨진 비밀을 폭로한 뒤 그동안 여러 비판에 시달리던 저자 폴라 비가운이 2004년 6차 개정판 이후 더이상의 개정판은 없을 거라던 스스로의 약속을 깨고 4년 만에 출간한 책이기 때문이다. 

역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번 7차 개정판은 기존책의 단순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기 보다는 거의 대부분이 새롭게 씌여진 책이란다. 이번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인정하고 새로운 지식을 과감히 수용함은 물론 한결 엄격해진 평가 기준으로 제품을 리뷰하고 있다고. 또한 지면의 부족으로 우리나라에 정식 수입되던 일부 제품 리뷰만 발췌했던 6차 개정판과 달리 이번 7차 개정판에서는 정식 수입 여부와 상관없이 71개의 인기 브랜드의 리뷰가 모두 번역되었고, 더불어 6차 개정판에서는 통째로 생략되었던 '폴라스 픽'과 '화장품 성분사전'까지 그대로 수록되어 원서와 같은 내용의 완벽한 모습으로 독자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은 크게 7개의 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아름다운 지식 : 꼭 알아야 할 화장품의 진실'에서는 화장품 비평가가 된 저자의 이야기와 거대 화장품 회사의 화려한 마케팅과 그뒤에 감춰진 진실, 비싼 명품 화장품들의 허와 실에 대해 논한다. 2장 '건강한 피부 : 꼭 지켜야 할 피부 법칙'에서는 그동안 잘못 알고 있던 화장품의 상식을 뒤엎고, 피부와 화장품 종류에 따른 기본적인 지식은 물론 피부타입별 건강관리법을 실어놓았다.

예를 들어 아이크림의 경우, 민감한 눈가의 주름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이크림을 꾸준히 발라주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에겐 상식처럼 굳어있다. 하지만 저자는 아이크림과 로션의 성분은 똑같으며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크림은 소량에 고가라는 점이라고 말한다. 얼마전 서점에 갔다가 잠깐 들춰본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이란 책에서도 아이크림에 대한 비슷한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얼마전에 배웠던 천연화장품 DIY 과정에서도 사실 로션과 크림의 성분은 같으며, 다른 점이라고는 크림은 로션에 비해 더 많은 기름과 그것을 유화시키기 위한 더 많은 유화제가 들어가는 것 뿐이라는 사실에 꽤 놀랐었다.

또한 우리가 화장품을 살 때 가장 많은 비용을 들이는 노화 방지의 경우에는 솔직히 화장품만으로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미리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 해답은 자외선 차단에 있다. 천연화장품 DIY 과정에서도 배웠었는데, 피부 노화의 가장 기본은 자외선 차단에서 시작된다. 자외선만 잘 차단해 주어도 자외선 손상에 따른 피부 노화를 훨씬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외선 차단은 피부 관리에 있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항목이다. 이미 생긴 주름을 화장품으로 다림질할 수는 없지만 꼼꼼한 자외선 차단으로 미래의 주름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말은 즉, 고가의 노화 방지 크림의 효과는 그다지 믿을 게 못 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주름 개선 화장품에 각광받고 있는 콜라겐의 경우 입자가 커서 피부 표면에 바른다고 할지라도 진피로의 흡수가 쉽지 않다.

 


화장품에 대해 알고있던 우리의 상식 아닌 상식은 물론, 아이크림을 비롯해 우리가 쓰는 수많은 화장품은 화장품 회사의 마케팅에 넘어가 필요 이상의 것을 구입한 것이 대부분이란 이야기다. 사실 피부를 위해 꼭 써야 할 화장품의 종류는 몇 가지면 충분하다. 화장품 경찰관을 자처하는 폴라 비가운의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의 책소개 페이지에?리가 그동안 화장품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더불어 고가의 명품 화장품이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앞으로 똑똑하게 화장품을 살 것을 권유한다.

보다 똑똑하게 화장품을 사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폴라 비가운은 4장의 제품 리뷰에 앞서 3장 '제품 리뷰 가이드 : 평가의 기준과 원칙'에서는 각 제품들을 어떤 원칙과 기준을 바탕으로 평가했는지, 그리고 화장품을 평가하는 데 있어 화장품의 성분이 왜 중요한지, 주의사항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미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다양한 화장품들의 종류마다 그에 대한 기준과 평가 원칙을 상세히 적어둔 덕분에 제품 평가 기준만 그 내용이 상당하다. 더불어 제품에 대한 리뷰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하되 그 결과가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님을 미리 밝혀두었다. 개인의 피부 상태에 따라 그 효과도 조금씩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책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한 4장 '화장품 제품리뷰 : 71개 브랜드 기초+메이크업 제품 리뷰'에서는 소제목 그대로 71개의 인기 화장품 브랜드의 제품들을 상세히 리뷰해 두었다. 브랜드마다 하나의 꼭지를 이루고 있는데, 가장 먼저 그 브랜드의 전반적인 장점과 단점을 기술해 놓았다. 제품 리뷰는 기초 제품은 해당 브랜드의 라인별 제품들을 모아두었고, 색조 제품은 각 기능별로 분류해 그에 해당되는 제품들을 한 번에 볼 수 있게 정리해 놓았다. 

또한 제품의 등급은 한눈에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제품 왼쪽에 아이콘으로 표시했다. 제품 등급 아이콘은 크게 3가지로 웃는 얼굴, 무표정한 얼굴, 화난 얼굴로 구분된다. 웃는 얼굴(very good!:추천)은 뛰어난 효과와 훌륭한 성분구성으로 한 번쯤 구입을 고려해봐도 좋은 것들로 합리적인 가격이 빛나는 제품들이다. 무표정한 얼굴(average:보통)은 그다지 나쁘지는 않으나 특별히 인상적이지 않거나 평범한 품질에 터무니없는 비싼 가격을 붙여놓은 제품들에게 주어졌고, 화난 얼굴(don't buy:비추)은 달리 말이 필요없이 모든 면에서 최악인 제품을 뜻한다.

 


그리고 웃는 얼굴 앞에 체크 표시를 더해 최고의 단계임을 나타내는 폴라스 픽(excellent!:강추)이 있다. 베스트 중의 베스트 제품을 뜻하는 이 등급은 기대 이상의 품질과 해당 품목의 기준을 능가할 뿐만 아니라 자극도 거의 없는 최고의 제품들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뒷장에 나오는 '폴라스 픽(Palua's Pick)'에서는 이 등급에 해당하는 제품들만 '베스트 제품' 리스트에 포함해 독자들을 위한 보다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화장품 추천 리스트를 완성시켰다.

더불어 같은 등급이라도 제품의 가격 정도에 따라 '$$$' 표시와 함께 '비싼(but overpriced)'이라는 수식어로 따로 알아볼 수 있게 구분하고, 옆에는 가격을 달러로 표시해 두었다. 비슷한 등급의 제품이라도 가격은 천차만별이고, 제품의 가치가 가격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기에 가격 대비 비교가 필요하다. 결정적으로 어느 품목이든 간에 비싼 제품을 능가하는 품질의 싼 제품들은 꼭 있기 때문이다. 가격에 대비해 제품의 가치를 따져볼 수 있도록 한 세심한 분류가 마음에 든다.

 


말이 71개 브랜드지 각 브랜드에서 나오는 수많은 라인별 기능별 제품들을 모조리 리뷰하다 보니 책에 실린 제품 리뷰의 분량은 실로 엄청나다. 앞서 말했듯 1300쪽 조금 안 되는 책에서 제품 리뷰만 1000쪽을 넘길 정도로 책의 8할 이상을 제품별 상세 리뷰에 할애하고 있다. 화장품 리뷰 사전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리뷰가 방대해지고 책이 두꺼워지면서 정작 원하는 정보를 빨리 제대로 찾지 못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리뷰한 브랜드 이름을 알파벳 순서로 나열하고, 책면에 A에서 Z까지 알파벳 섹션별로 따로 표시를 해둠으로써 독자들이 원하는 브랜드의 리뷰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배려해 두었다.

 


5장 '폴라스 픽 : 품목별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는 4장의 제품 리뷰 중 모든 면에서 기준을 뛰어넘는 최고의 제품들, '폴라스 픽(excellent!) 등급을 받은 제품들만 따로 모았다. 저자 폴라 비가운은 화장품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피부에 좋은 제품인지, 어떠한 성분이 들어있는지를 꼼꼼하게 따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런 깐깐한 기준을 통과한 제품들을 5장 폴라스 픽에서 추천해 놓았다. 인상적인 것은 베스트 제품 추천 목록을 피부타입별은 물론 가격별로 분류해 놓았다는 점이다. 품질 못지 않게 가격을 무시할 수 없는 제품이, 그리고 효능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 잘 붙는 제품이 바로 화장품이기 때문이다.

다만 번역상 아쉬운 점은 '폴라스 픽'을 그대로 번역해야 했냐는 점이다. 폴라스 픽,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그것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눈치챌 수가 없었다. 뒷장에 이르러서야 Palua's Pick을 그대로 옮겼다는 걸 알고 얼마나 허탈하던지. 차라리 원어를 그대로 표기하거나 아니면 폴라의 선택, 정도로 옮겼어도 괜찮지 않을까. 원서에 충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소한 독자들에게 그것이 뜻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나 싶다. 워낙 외래어가 남발되는 곳이 화장품 업계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6장 '동물 실험 : 고민하는 자들을 위한 화장품'에서는 꾸준히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동물 실험에 대한 견해와 동물 실험을 하거나 하지 않는, 또는 견해를 밝히지 않은 화장품 브랜드들을 각각 정리해 놓았다. 폴라 비가운은 동물 실험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고수하고, 자신이 런칭한 화장품 브랜드인 폴라 초이스의 경우 어느 단계에서도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음을 자랑스럽게 밝히지만, 현실적으로 윤리적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화장품의 여러 기능을 알기 위해서는 동물 실험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7장 '화장품 성분사전 : 좋은 화장품을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은 예전 5장의 '폴라스 픽'과 함께 6차 개정판에서는 빠졌던 부분으로 이번 7차 개정판에서 처음 만나는 반가운 꼭지다. 또한 저자가 앞선 제품 리뷰에서 그 평가 기준으로 여러 번 강조했던 화장품 성분들에 대해 자세히 거론된 부분이기도 하다. 솔직히 화학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보기에 화장품 성분표시에 적혀 있는 표기들은 그 이름부터 낯설어 긴 화학식 이름의 뜻은 물론 효능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이유로 화장품 성분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도 이제껏 마땅히 비교해 볼 수가 없었는데, 7장의 화장품 성분사전 덕분에 한결 수월해질 것 같다.

 


이책의 저자 폴라 비가운은 오랜 기간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다가 백화점 화장품 매장의 직원으로 취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화장품 매장에서는 제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이 판매를 해야 했고 고객의 피부 상태보다는 제품 판매에 치중하라고 질책을 들어야 했단다. 그무렵 토니 스태빌의 『미국의 위대한 스킨게임』이란 책을 읽었고, 그책을 통해 화장품의 마케팅의 위력과 화장품 산업을 둘러싼 숨겨진 진실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그리고 그일을 계기로 폴라 비가운은 화장품 경찰관을 자처하는 화장품 업계의 소비자 운동가이자 화장품 비평가가 되었고, 여러 매체에 출연하고 칼럼을 쓰고 책을 펴냈다. 그리고 이책에 대한 내용은 물론 신제품에 대한 리뷰가 빠르게 올라오는 화장품에 대한 다양한 내용들이 있는 웹사이트 '뷰티피디아닷컴'을 개설해 운영중이며, 직접 자신의 이름을 딴 화장품 회사인 '폴라 초이스(Palau Choice)'를 창립해 독자적인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보다 많은 화장품을 보다 비싼 가격으로 팔기 위해 화장품 회사는 감성적인 카피와 아름다운 톱스타를 내세운 광고로 소비자를 현혹한다. 그리고 거기에 낚인 소비자들은 소위 명품 화장품이라는 이유로 기꺼이 지갑을 연다. 폴라 비가운은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를 통해 인기 브랜드들이 내놓는 화장품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게 아니다. 책의 앞부분에 밝혔듯이 그녀 또한 소비자의 입장에서 제대로 된 제품을 제값에 사기를 강조한다. 과대 광고에 속아 그저그런 제품을 사는 데 많은 돈을 소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야기다. 나 또한 화장품에 대한 그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고해서 이책의 모든 내용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지금도 시중에는 수많은 화장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각종 기능을 첨가한 기능성 화장품들이 점점 더 세분화되어 그 종류가 두 손으로 꼽아도 모자랄 지경이다. 가격 또한 천차만별이다. 천연화장품 DIY를 배우면서 사용감이나 촉감 같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감성적인 부분을 좋도록 하려면 좋지 않은 성분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놀라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화장품을 선택할 때 단순히 광고나 사용감 만으로 결정하면 안 되며, 그 화장품을 구성하는 성분들을 살펴햐 한다는 폴라 비가운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해야 하고 무엇보다 내 피부에 직접 바르는 화장품을 고를 때 그것을 파는 데 혈안이 된 화장품 회사의 마케팅 정보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이제라도 많은 소비자들이 깨달아야 한다. 

 


이책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는 현재 판매중인 제품에 대한 방대한 리뷰를 담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나름의 의미를 가진 책이다. 다만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면, 외국 저자가 쓴 책이다 보니 이책에 리뷰된 제품들은 모두 소위 명품 화장품이라 불리는 브랜드를 포함한 다양한 해외 브랜드라는 점이다. 너무나도 당여한 이 사실은 반대로, 나처럼 해외 브랜드 화장품에 별다른 관심이 없거나 그것을 즐겨쓰지 않는 소비자에게는, 아쉽게도, 이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제품 리뷰가 큰 쓸모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누군가가 제 2의 폴라 비가운이 되어 우리나라 화장품을 리뷰한 책을 내놓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에, 아쉽지만 소비자인 독자가 잘 골라서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의 여러 유명 화장품 브랜드들이 정식 수입되고 판매되고 있고 그외 다양한 브랜드들이 입점되고 있으며, 그것들을 즐겨 쓰는 사람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는 만큼 그런 소비자들에게는 방대한 이책의 제품 리뷰가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가끔 화장품 관련 카페 같은 곳을 가보면 해외 브랜드에 목 메는 사람들을 예상외로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그런 이들에게, 특히 해외 명품 화장품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올인하는 이들에게 꼭 폴라 비가운과 함께 화장품을 사러 갈 것을 권하고 싶다. 그분들에게 이책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는 맞춤형 추천도서라 할 수 있다. 제 나라에서는 평범한 화장품들이 물 건너 수출되면서 고가의 명품 화장품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요즘, 특히 다른 나??우 폴라 비가운이 들려주는 제품 리뷰와 정보를 바탕으로 똑똑한 쇼핑을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폴라 비가운의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는 화장품 성분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과 대하는 태도를 바꾸어 주었다는 점과 성분에 대해 보다 폭넓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책이었다. 이책 덕분에 앞으로 화장품을 구입할 때 아름다운 모델과 화려한 용기, 사용감 등에 의존하기 보다는 화장품이 내세우는 효능과 그것이 포함하고 있는 성분을 비교할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됐다. 이책의 내용은 너무 방대해서 한꺼번에 읽을 수도,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기본적인 내용은 읽어보되 제품 리뷰나 성분분석표는 궁금하거나 필요할 때 찾아보는 걸로도 충분하다.

모든 소비자가 이책의 저자 폴라 비가운처럼 화장품 경찰관이 될 수는 없지만 그녀가 알려주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화장품에 대한 진실들을 알아간다면, 최소한 거대 화장품 기업의 화려한 상술에 농락당하는 실수는 조금씩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것은 얇아지는 내 지갑을 위해서, 무엇보다 건강한 내 피부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임을 기억하자. 소비자가 똑똑해지고 깐깐해지면 제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들도 변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폴라 비가운의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는 좋은 제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 훌륭한 안내자 역할을 해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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