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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더 사랑하는 법 (해외편 + 한국편) -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일상의 재발견
미란다 줄라이, 해럴 플레처 엮음, 김지은 옮김 / 앨리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 나를 더 사랑하는 법 │ 미란다 줄라이, 해럴 플레처 │ 김지은(옮김) │ 앨리스(문학동네) │ 2009.12
어떤 책으로 새해를 시작할까 책장을 둘러보다가 이책 앞에서 눈길이 멈췄다.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이라니, 제목부터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덕분에 바로 나의 새해 첫 책으로 낙찰됐다. 생각보다 제법 두툼하긴 했지만 사진이 많아 금방 읽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책장 넘기는 속도가 그리 숨가쁘지 않았지만 오히려 중간중간 생각하게 만드는 구석이 많아 더 좋았다. 물론 그것 때문에 '새해 첫 책'의 영광은 도서관에서 충동적으로 빌려왔던 도네이션북에게 넘겨야 했지만, 그래도 야금야금 음미하며 읽는 맛이 나쁘지 않았다.
2002년 두 명의 예술가 미란다 줄라이와 해럴 플레처는 '나를 더 사랑하는 법(Learning To Love You More)'이란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그곳을 통해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자신과 주변, 그리고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과제들을 제시했고, 그것을 직접 실행한 사람들은 사진과 글, 동영상 등을 통해 과제에 대한 결과물을 보냈다. 입소문을 타고 웹사이트 방문자는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고 과제에 대한 수행물들도 다양한 모습을 띠었다. 책으로 출간된 뒤에도 꾸준히 진행되던 프로젝트는 2009년 5월의 과제를 끝으로 지난 8년 간의 여행을 마감했단다.
이책 <나를 더 사랑하는 법>(앨리스, 2009)은 미란다 줄라이와 해럴 플레처가 개설한 웹사이트 '나를 더 사랑하는 법'에서 제시되었던 과제에 따른 결과물들 중 일부를 골라 실은 책이다. 차례가 적힌 바닥에는 이책이 출간되기까지 제시되었던 63개의 과제가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과제에는 형광펜이 칠해져 있고 또 어떤 과제는 그냥 밋밋하게 제목만 적혀 있다. 처음에는 차례를 보고 무척 의아했는데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차이를 금세 알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이책에는 모든 과제의 결과물이 아닌 극히 일부만이 실렸다. 그래서 결과물이 실린 과제에만 노란 형광펜을 칠해 구별해 두었다. 물론 과제 끝에는 본문 페이지가 붙어 있다.
응원의 게시물 만들기, 누군가의 주근깨나 점을 연결해 별자리 그리기, 다른 사람 머리 땋아주기, 나를 울렸던 영화의 한 장면 그려보기, 낯선 사람들에게 손을 잡게 한 뒤 그 모습을 사진에 담기, 중요한 날 입었던 옷을 사진으로 찍어보기, 과거의 자신에게 충고하기 등 이색적이고 독특한 과제에 따른 재미있는 수행물들이 실려 있다. 플래시를 터뜨린 채 침대 아래 사진 찍기에서는 먼지 쌓인 침대 밑의 다양한 모습에 웃음짓게 했고, 일상 생활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도자료처럼 써보기는 평범한 일상을 색다른 눈으로 들여다보게 했다. 부모님이 키스하는 모습 사진 찍기는 키스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써보기는 가장 가슴 짠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었다.
위의 과제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꼭 해야 하는 숙제도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수많은 결과물들을 함께 내놓았다. 그들을 움직이게 한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아마도 그건 나를 사랑하는 법을 찾게 하고자 하는 이 프로젝트의 기본 취지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예전에 열광했던 영화나 책을 떠올리고, 키스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다른 사람의 점을 연결하거나 머리를 땋으며 잊고 지냈던 일상의 사소한 재미를 재발견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거나 힘들었던 과거의 일이나 상처에 대한 고백을 통해 타인은 물론 나 자신으로부터 위안을 받기도 한다.
'나를 더 사랑하는 법'에서 제시하는 과제들은 나를 사랑하는 법이 특별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의 작고 소소한 것에서 비롯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전해준다.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사람들은 일상 속에 숨어있는 무수한 행복들을 다시 찾아내면서 그로 인해 행복해 하고 감동한다. 그리고 그들의 위로는 이책을 통해 그대로 전해진다. 그렇기에 큼직한 사진들이 잔뜩 섞여있는 이책을 다 읽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책이 끝났는데 다른 한 권의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 이책은 두 권의 책으로 묶여 있다. 다른 한 권은 바로 이책을 옮긴 김지은 아나운서가 한국에서 진행한 과제와 수행물들을 엮은 <나를 더 사랑하는 법 : 한국판>이 그것이다. 총 15개의 과제로 진행되었고 600 여개의 수행물들이 올라왔단다. 이책 역시 그중 일부만을 실었는데, 15개 과제와 결과물이 모두 담겨 있다는 점과 매 과제마다 김지은 아나운서의 글이 빠지지 않고 함께 한다는 점이 한국판 만의 특징이라 하겠다.
한국판의 서문에 이책을 엮은 김지은 아나운서는 "이 책은 '읽는' 책이 아니라 '(실천)하는' 책이라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이야기한다. 그냥 읽고 넘기지 말고 책에 담긴 과제들을 실행함으로써 그 재미와 감동을 직접 경험해 보라는 당부인 것이다. 책이 제시한 과제를 따라가도 좋고, 또는 책과는 다른 나만의 과제를 내고 그것을 실천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일상의 재발견'이라는 이책의 부제처럼 올해는 자신만의 '나를 더 사랑하는 법'으로 심심했던 일상 속에서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겉으로는 한 권이지만 그 속엔 두 권이 나란히 묶여 있다. 쉽게 분책이 가능하도록 제본되어 있다.
다만 분책하지 않으려고 해도 책을 읽다보면 뒷편에 있는 '한국편'이 자연스레 '독립'을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