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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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아한 거짓말 │ 김려령 │ 창비 │ 2009.11 


작년에 김려령의 『완득이』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악조건으로 점철된 상황에서도 쿨한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자신의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완득이는 작가 김려령이란 이름 세 자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녀의 신작을 주저없이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려령의 신작 『우아한 거짓말』은 '내일을 계획하던 천지가, 오늘 죽었다'라는 단 한 줄의 문장이 알려주듯 유쾌ㆍ상쾌ㆍ통쾌한 웃음과 눈물을 함께 선사했던 『완득이』와는 꽤나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였다. 낯설었지만 여전히 가슴을 울렸다.

열 네살 소녀 천지가 죽었다. 평소의 모습과 달리 전세값 때문에 고민하는 엄마에게 몇 달이나 뒤에 있는 생일선물을 앞당겨 최신형 mp3를 당장 사달라고 조르던, 엄마가 출근하고 언니 만지가 학교로 먼저 출발한 그날 아침에 천지는 길게 뜨게질한 빨간실에 목을 의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언니 만지의 시험이 끝나면 책상을 리폼해 주겠다고 약속하던 천지였다. 조용하고 말이 적지만 애어른처럼 속이 깊었던 아이, 그런 천지가 왜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 엄마도 만지도 이해할 수가 없다.

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던 만지는 천지가 남긴 흔적을 좇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제자를 잃은 천지의 담임 선생님도 어떻게든 사건을 조용히 무마하려는 학교 측과 별도로 나름의 조사를 시작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천지의 단짝을 자칭하던 화연, 만지의 친구 동생이자 천지의 동창 미라, 천지의 체육복을 빌린 수경, 이사온 집의 옆집 남자인 오대오, 보신각을 운영하는 화연의 부모, 그리고 천지의 가족인 만지와 엄마를 거치면서 천지의 죽음의 이유라는 퍼즐을 하나씩 맞춰간다. 

오랜 세월 동안 교묘하고도 끈질기게 천지를 이용하고 괴롭히며 아이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키려던 화연의 행동은 누가 봐도 천지를 죽음으로 내몬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화연의 괴롭힘을 방해하는 조력자처럼 보였으나 실은 무심한 방관자에 불과했던 미라, 뜻밖에 우울한 천지의 내면을 눈치챘지만 더이상 도움을 주지 못한 오대오, 그리고 살아가느라 또는 자신의 일에 바빠 천지가 보내던 무언의 신호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엄마와 만지 또한 천지의 죽음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우아한 거짓말』은 왕따와 자살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완득이』에서 보여준 가볍지만 진지한 촌철살인의 문장과 인물들의 쿨한 태도 또한 그대로 가져왔다. 조용하고 속이 깊은 천지에 비해 모든 것에 무심한 듯 건성건성인 만지의 행동과 말투는 여자 완득이를 떠올리게 한다. 만지의 엄마 또한 남편에 이은 딸의 죽음을 맞을 때나 자신에게 들러붙는 양아치 곽만호와 그의 자식들을 대면할 때, 그리고 자신의 딸을 죽음으로 내몬 아이의 부모를 찾아갔을 때도 신파적인 모습 대신 쿨한 담담함을 보인다. 비록 후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눈물짓긴 하지만 말이다.

작가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았던 열네 살의 소녀 천지가 왜 죽음을 택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밝혀감과 동시에 엄마와 만지, 화연과 미라를 통해 남겨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들도 함께 보여준다. 천지를 죽음으로 내몬 가장 큰 이유는 화연의 괴롭힘이지만, 그런 천지를 방관한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적잖은 책임이 있다. 그렇기에 갑작스런 죽음 이후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과 아픔을 나누지 못한 죄책감,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증오심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천지를 내몰았던 화연을 보듬어 안는 만지를 통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에 대한 이야기 또한 빼놓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임을, 우리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김려령의 『우아한 거짓말』을 읽는 동안 올초에 만났던 졔이 아세르의 『루머의 루머의 루머』가 여러 번 겹쳐졌다. 구체적인 사건과 진행 방향이 다르긴 하지만, 누군가의 악의적인 소문과 왕따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죽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남겼으며, 끝없이 보내는 무언의 SOS 신호를 눈치채지 못해 뒤늦게 후회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런 아픈 경험 후에 다음의 예비 희생자를 보듬으며 일말의 희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두 소설은 많이 닮아있다. 또한 둘 다 무심코 내뱉는 말이 때론 누군가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진심어린 따듯한 말 한 마디가 때론 누군가에겐 얼마나 큰 위로가 될 수 있는지를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아직 많은 작품을 접해보진 못했지만 작가 김려령은 자신의 말처럼 성장소설(또는 청소년 소설)에서 빛을 발하는 작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고민을 그들의 언어로 풀어내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또한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되 마냥 무겁거나 진지하지만은 않게 해주는 가벼움의 미학이나 인물들에 대한 따듯한 시선 또한 그녀의 장점이다. 덕분에 자살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 『우아한 거짓말』은 남의 이야기 같은 우리들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것이 김려령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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