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인지 역경을 이겨내면서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이벤트입니다.


 

적립금 드리는 이벤트는 여기. 3월이 끝날 때까지.

 

 

 

 

 

유럽의 교육

 

 



 

 

MD의 감상평: 2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한 폴란드 빨치산을 다룬 로맹 가리의 데뷔작. 스페인 내전을 다룬 앙드레 말로의 걸작 <희망>처럼, 이 소설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감각/감정의 과잉 상태는 노련하게 편집되어 문장 위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전쟁이 일으킨 사건들 자체는 해석되지 않고 병렬됨으로써 드라마가 되지 못하고 비극의 배경에 머문다. <희망>이 그 텅 빈 무대를 놓아둔 채 공백을 주시하도록 했다면, 로맹 가리는 그 배경 앞에서 다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죽음 앞에서 좌절하거나 파괴당한 전쟁 베테랑들 대신에 '어쨌든' 미래를 떠안아야 할 아이들의 삶 속에 심어져 있는 파괴 불가능한 낭만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로맹 가리는 확신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망설임이 울림이 되어 바람을 일으킨다. 소설이 소설 바깥에 있는 '우리의 세계'를 주시할 때마다 이쪽에서 그곳을 향해 불어가는, 우리의 뒤통수를 간지럽히는 쓸쓸하고 맑은 바람이다. 이것을 서정이라고 불러도 될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엄혹한 현실에서 발을 빼지 않음으로써 도리어 서정을 일으키는 마법, 로맹 가리는 처음부터 이런 마법을 부리는 작가였다.

 

이런 분들께 추천: 헤밍웨이의 장편 전쟁 소설들이 좀 재수없었다 /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괜찮을까요? / 슬프긴 한데 신파는 아닌 소설 찾습니다

 

이런 분들은 주의: 저는 밀덕입니다만 / 역사적 고찰을 원하시는 분은 말로나 오웰로 가셔요

 

 

 

 


 

요리사가 너무 많다

 

 




 

MD의 감상평: 원래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 안 하려고 했는데 '그건 너같은 놈들에게나 너무 유명한 작품이지'라는 내면의 고발을 듣고 선택한 작품. 살인이 벌어져도 축제는 계속된다는 식의 희한한 즐거움이 넘실대는 괴걸작이다. 아마도 역대 미스터리 소설에 등장한 탐정들 중에 체중이 가장 무거울 것같은 남자 네로 울프(180cm, 140kg)와 그의 조수 아치 굿윈의 만담 플레이는 반백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웃기다. 게다가 이번에 먹성 좋은 탐정이 초대받은 '선택받은 미식가들을 위해 5년에 한 번 열리는 특급 요리 축제'는 네로 울프에게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일이라, 사람이 죽어가고 음울한 음모의 기운이 느껴지는 와중에도 즐거움을 막을 수가 없다. 범인은 잡으면 될 거 아닌가? 음모는 음모고 좋은 건 좋은 거 아닌가?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와 개그를 잊지 않는 이 만담 탐정 콤비가 수호하는 것은 가장 소박한 의미의 정의다. 누구도 타인의 행복을 방해하지 말라. 특히 맛보기 힘든 산해진미가 나오려고 하는 순간에는.

 

이런 분들께 추천: 미스터리 소설들은 너무 트릭에만 집중하는 거 같아요 / 미스터리 소설들은 너무 복잡한 거 같아요 / 미스터리 소설들은 너무 심각한 거 같아요 / '너같은 놈'

 

이런 분들은 주의: 미스터리 소설은 말이죠 동시대를 표현할 페이소스를 (네 다음분)

 

 

 

 

 

 


부영사

 

 



 


MD의 감상평: <부영사>에서 직접적으로 감각되는 것들은 거의 없다. 온통 징후들 뿐이다. 예감이나 풍문이나 기억의 형태로 존재하는, 실재였던 것들의 유령들이 이 소설을 지배한다. 뒤라스는 스토리의 중심이나 등장인물들의 명확한 정체 또는 사연을 드러내지 않는다. 따라서 소설 속에서 시간이 흘러가고 배경이 달라져도 인물들은 그 흐릿하고 희미한 후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히 어떤 비극적인 사건들이 <부영사>를 맴돌고 있지만 아무도 진실에는 다가설 수 없다. 그러나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현실이 징후로 치환되면서 명확한 판단이 불가능해지고, 그것을 대신할 힘으로 욕망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욕망은 판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곳이 꿈이건 현실이건 지옥이건 '나는 원한다'는 주장만큼은 진실로 간주될 것이다. 그러나 욕망 역시 발화되고 나면 안개로 치환되어 버린다. 따라서 이 세계에는 단서의 파편들과 조합 불가능한 징후들로 이루어진 웅성거림만이 남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게임은 끝났다. 누보로망이 근대문학의 반명제로 작용하면서 변증법적인 '그 다음'을 예감하게 했다면, 뒤라스는 탐구하기의 불가능성을 성실히 스케치함으로써 미래가 없는 멸망의 리얼리즘을 고안해냈다. '앙티로망'을.

 

이런 분들께 추천: 영화 <인디아 송>을 감명깊게 보았다 /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을 본 경험을 후회하지 않는다 / 여행을 가면 조용한 곳에서 홀로 아무 말 없이 있기를 더 좋아한다

 

이런 분들은 주의: <모데라토 칸타빌레>가 연애소설이라고 하던데 재밌나요? / 하여튼 평론가연하는 놈들이 빠는 책이며 영화들은 다 이모양이지 (네)

 

 

 

 

 

 


아이언 하우스

 

 



 


MD의 감상평: 결국 <라스트 차일드>가 존 하트의 최고작으로 남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이언 하우스>는 그 예상을 비웃는 뛰어난 스릴러다. 전작들과의 공통점으로는 여러 종류의 애정과 그에 따르는 좌절과 배신(어떻게 사랑이 변..한다)이 드리우는 암울함을 들 수 있다. 인물들을 둘러싼 사회 구조가 아니라 그들 각자의 파편화되고 맹목적인 애정에 집중하는 존 하트의 방식은 등장인물들에게 강렬한 정서적 동기를 부여한다. 스릴러이기 이전에 격렬한 드라마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언 하우스>는 기존의 작품들과 달리 그 감정적인 힘을 동기 뿐만 아니라 동력으로도 사용한다. 등장인물들의 관계 변화가 즉각적으로 사건의 방향을 비틀고, 소설의 전개는 그에 맞추어 격렬하고 빠르게 이루어진다. 존 하트는 빠른 템포의 액션 스릴러와 사색하고 침잠하는 종류의 스릴러를 자신의 강점을 이용해 조합해냈다. 이 사람 진짜 스릴러의 연금술사인가봐..

 

이런 분들께 추천: 에피소드 연결형 말고 한큐에 이어지는 미드 스타일의 잘 읽히는 스릴러 추천해 주세요 / 싸이코 안 나오는 클래식한 스릴러가 보고 싶어요

 

이런 분들은 주의: 쿨한 게 좋다 / 싸이코패스 애호가 / 반전 쩌나요? / 가족 이야기는 내 가족만으로도 벅차서 마음이 아파 못 읽겠어요

 

 

 

 

 

4월에도 뵐 수 있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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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새 2013-03-07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아아아아-
드디어 3월호가 나왔군뇨. 돈은 안내지만 정기구독자가 되었습니다.(응?)
어둡게 시작하는 3월. 스릴러와 스릴러와 미스터리 정도이려나요. 정적인 배경속에 고동치는 내부세계를 녹여낸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군뇨. 제 가슴도 뜁니다. 덩달아 제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를 칩니다. 아 왓 어 롸임....
로맹로맹 형님은 언제나 옳..겠죠?
사실은 몇 주전 유빅을 읽고 다른 책을 아직 손에 못 잡고 있습니다. 'PKD라는 암흑물질의 실제 질량을 측정하는 날에는' 저는 이제 죽고 없겠죠 :p

죽기 전에 사야할 책들은 어서어서 소개해주셔요. 이번 달에도 구매~
일단은 유럽의 교육만..사는 절제된 매서가가 되겠습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13-03-08 13:04   좋아요 0 | URL
아 정기구독자라니 이제 쉴 수가.. 네 좋습니다. ㅎ
이번달은 지난번에 비해 무거운 작품들이 많네요.난해하다면 난해하기도 하고요. 유독 후보작들이 많기도 했는데요, 다음번에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분량을 늘일 생각은 없습니다. 절대.. ㅎ;

유빅이요. 좋지요. 세계고전문학으로 추앙받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로맹 가리의 데뷔작은 뭐.. 대단하죠. 저런 엉망진창의 상황에서 서정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하게 느껴져요. 물론 비극 자체를 건조하게 전개하는 위대한 작품들도 많지만, 그와는 다른 독보적인 세계니까요. 보셔도 좋을 겁니다. 네.

아기새 2013-03-26 23:58   좋아요 0 | URL
알라딘 모바일 페이지에 접속하면 저에게 추천해주는 대부분의 책들이 다 MD님께서 올리신 책들이더군요 OMG.. 그렇게 잊으려고 노력하건만, 내 취향을 학습시키는 놀라운 알라딘 같으니라구.
첨단 마케팅 엔진을 유럽식으로 달아버려 저를 헤어나올 수 없는 소비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는군요 으하하

아 그리고 정기구독자인 저는 돈을 내긴 냅니다. 알라딘에 책 값을 내지요. MD님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만..(응?)

외국소설/예술MD 2013-03-27 15:45   좋아요 0 | URL
그건.. 글쎄요 우연의 일치일까요 하하 -_- 추천시스템에 관여하진 않지만 어쩐지 기분은 좋네요;

그러고보니 곧 4월이네요. 4월치를 올려야겠죠. 그렇습니다. 저는 또 하게 될 겁니다.
매출 향상에 이바지해 주시는 고객님들을 실망시킬 수 없기 때문에 하하

리플 달아주실 때마다 감사 드려요. 일하면서 제일 보람있는 순간이거든요. ㅎㅎ

빠삐용 2013-03-07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리사가 너무 많다 저번달에 이미 사버린 저는 웁니다. ㅠㅠ

외국소설/예술MD 2013-03-08 13:16   좋아요 0 | URL
이것은 매번 이벤트를 올릴 때마다 쌓이는 제 업보입니다. 저는 천국에 가지 못할 거예요..

굿바이 2013-03-07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월에도 꼭 뵈요~!

외국소설/예술MD 2013-03-08 13:19   좋아요 0 | URL
정말요..? 간만에 이렇게 댓글 남겨 주시니 저는 좀.. 감격했습니다.. 네 열심히 ㅠㅜ

참깨 2013-03-08 0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이번달은 로맹가리....떄문에 망했나요.-__ 읽기 싫으니까 어쩔수 없...

외국소설/예술MD 2013-03-08 13:20   좋아요 0 | URL
이미 주요 신간을 혁파한 분에게 이 페이지는 그저 짧은 리뷰 모음일 뿐 ㅎㅎ 음 뭐 제가 잘못한 거는 없으니까 유감 표명에 그치도록 하겠습니다. ㅎ

북극곰 2013-03-08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기구독자요~!^^

외국소설/예술MD 2013-03-08 14:0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ㅠㅜ 보고 싶어서 보고, 보고 나서 재미있었으면 되었죠. 저는 성공했어요. 좋아요.

GoldenSlumber 2013-03-14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작 소개되는 책보다 워너님의 소개글이 더 기다려지는 요상한 상황입니다.ㅋㅋ <유럽의 교육>은 10년 전에 읽었는데 개정판으로 보면 느낌이 색다를 것 같네요.

외국소설/예술MD 2013-03-15 14:17   좋아요 0 | URL
네 <유럽의 교육>은 편집을 새로 하면서 번역에 약-간의 수정이 있었다고 해요. 큰 변화는 없습니다.
정말로 기다려지다니 좋네요.. 이 맛에 이 일 하나 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