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vs 영화 

원작- 피아노 치는 여자 (엘프리데 옐리네크) 

영화- 피아니스트 (미하엘 하네케) 

 

            

 소시민은 변태를 비웃는다

 

 -저기 영화 포스터를 보시라. 뒤로 길게 뺀 이자벨 위페르의 깡마른, 약간 휜 왼쪽 다리. 검은 옷과 완벽하게 다듬어진 머리칼. 흑백 패턴의 화장실 바닥. 같은 각도로 열린(즉, 같은 패턴의) 흰색 문과 흰 벽. 사람의 피부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흑백으로, 일정한 패턴으로 정렬되어 있는 섬짓함. 심지어 등을 돌린 남자조차 마그리트의 그림 속 누군가처럼 보인다. 자칫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로 오해할 수도 있는 이 강박적인 한 장면이 이 영화와 원작을 '이미' 잘 설명해준다. 저 포스터는 불길하다. 편집증을 불러 일으키는 정신적인 압력이 팽팽하다. 절대 구겨지지 않을 것같은 포스터. 

  그렇다. 원작소설이건 영화건 (보통 쓰이는 의미에서) 정상이 아니다. 여주인공 에리카는 강박증의 화신이면서 동시에 성욕의 화신이다. 그녀의 강박증은 세상 모든 것에 영향을 끼쳐서 대인관계에조차 '시스템'을 설정한다. 당연히 정서적 유대 같은 불안정한 패턴에는 관심이 없고, 덩달아 섹스에도 그다지 흥미가 동하지 않는다. 흥미가 없다기보다는, 섹스에는 뭔가 너저분한 부수적인 것들이 너덜거린다. 의식적으로 그 장애물을 돌파한 뒤에는 섹스는 이미 섹스가 아니다. 매번 혐오를 정면 돌파해야 하는 성행위는 그저 고통일 뿐이다. 그녀는 섹스의 화신이면서 동시에 섹스는 그녀가 이룰 수 없는 행위다. 그러면 어떡하는 게 좋을까? 에리카는 성욕을 해소할 수 있는 다른 행위들을 개발한다. 이 '색다른 성욕 해소 액션'은 소설에서건 영화에서건 부지기수로 등장한다. 휘황찬란하다.

  왜 그렇게 되었나? 틈틈이 단서들이 주어진다. 에리카는 어머니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 어릴 적부터 정서적으로 압력을 계속 받고 살았다. 아, 그래서 불우한 유년 시절이 이 여자를 삐뚤게 만들었구나. 라고 생각하지 마시라. 이 소설/영화는 그렇게 만만치 않다. 에리카의 변태적 행위는 충동적이지 않고 완전히 계산되어 있다. 아무것도 그녀를 상처입히지 못한다. 그녀는 완전히 안전한 세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섹스를 즐기며, 그 방식도 오감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이다. 이성의 완전한 조절 아래 감각의 최대치를 개방해내기.

  이성의 완전한 조절 아래 감각의 최대치를 개방해내기. 이것은 또한 세상 모든 피아니스트들에게 요구되는 조건이다. 피아노는 글렌 굴드의 말에 따르면 가장 통제하기 힘든 악기다. 피아노는 피아니스트가 10을 입력한다고 10을 출력해주는 악기가 아니다. 거기에는 메카니즘과 그 이상의 '무엇'이 있으며, 그 황금 열쇠를 찾는 여정이 바로 피아니스트의 삶이다. 에리카는 거의 열쇠를 찾을 뻔했던, 지금은 영감을 상실한 피아노 교수다. 그러나 그녀는 피아니스트의 황금 열쇠를 자기 안에서, 피아니스트가 되기 전부터, 피아니스트를 포기한 뒤에도 찾고 있다. 무너져버린 과거들과 강박적인 현실 속에서 '그 무엇을 탐구하기'. 따라서 얼핏 불쾌해 보이는 그녀의 행위들은 결코 단순한 변태 엽색 행각이 아니다. 에리카는 욕망 앞에 무너지는 법이 없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그 격정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관찰하고 실험한다.

  독자/관객들이 불쾌한 것은 에리카의 변태적 행동에 '왜'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필 왜 그런 행동을 할까'에 대한 답은 없다. 에리카도 소설가도 감독도 입을 다문다. 아니,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설명은 원래 불가능하다. 왜 스비야토슬라프 리히터의 어떤 베토벤 소나타 30번 2악장은 그렇게 느릴까? 어째서 그 순간 그런 선택을 했을까? 즉흥적인가? 즉흥적이라면, 그는 원래 즉흥적인 사람인가? 아니다. 피아니스트 리히터와 1963년 11월 28일 라이프찌히 실황공연의 리히터는 같은 사람이지만 그 둘은 또한 다르다. 그날의 베토벤은 왜 느렸는가? 그날은 그렇게 되었어야 했던 것이다. 에리카 역시 피아니스트다. 어떤 날은 휴지에 묻은 정액 냄새를 맡고, 어떤 날은 핍쇼를 보고(그러나 모든 감각을 이용할 것), 어떤 날은 드라이브인 씨어터에서 다른 커플을 엿보며 오줌을 눈다. 절대로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통제하면서. 섹스를 음악으로 표현한 경우는 많았지만, 에리카는 그 '음악가'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렇다. 대개의 경우가 그렇듯이 에리카(와 엘프리데 옐리네크)는 그들을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너머의 존재다. 탐구자들.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한쪽 어깨에 올려놓고 자위행위를 하는 사람들. 피아니스트.

  소설과 영화 둘 다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소설은 냉정하게 절제된 서술로 휘황찬란한 행위들과 강박증 사이를 오가며, 영화는 이자벨 위페르의 신경질적인 한 톤 높은 목소리와 강박적인 미장센으로 고도의 압박 작전을 펼친다. 굳이 점수를 주자면 영화에 보너스를 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으니까. 메인 테마나 다름없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3중주 D.929의 2악장, 그리고 '영원히 반복될 것같은' 슈베르트 소나타 D.959의 잔향은 관객들이 에리카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 그렇다.

  그녀는 슈베르트를 좋아한다. 
 

  

-외국소설MD 최원호  


p.s: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소설들이 꾸준히 국내에 출간되는 이유는 알 수 없다. 상을 많이 타서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꾸준히 변태적인 그녀의 소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앞으로도 이해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이미 독자 자신이 그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불쾌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 소시민을 위한 소설이 있고, 안 소시민을 위한 소설도 있는 것이다. 최소한도로 이 작품을 폄하해서 '세기말 현대 사회의 광증'이라고 하더라도, 이만큼 강렬한 광증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은가? 세기말 현대라는 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계니까. 

p.s2: 물론 영화 역시 막장이라고 욕을 많이 먹었다. 그렇다 치자. 그러나 art는 예술이면서 동시에 장인의 경지에 오른 기술을 뜻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장인의 경지에 오른 최고급의 막장극이다. 이보다 더 '아트 무비'에 부합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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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1-04-0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가 막장이라고 욕을 많이 먹었어요? 우와, 상상도 못한 일이네요. 세상은 역시 나와는 다른 이들로 넘쳐나요.

외국소설/예술MD 2011-04-08 18:42   좋아요 0 | URL
저는 타르코프스키나 앙겔로풀로스 같은 사람들 말고 미하엘 하네케야말로 소위 '아트' 취향을 가늠하는 리트머스라고 생각해요. 경계 지점에 있다고 할까..

다락방 2011-04-08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영화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잘 안나요. 전 전혀 줄거리를 알지 못한채로 봤다가 여자가 점점 이상해지는구나, 라고 생각했던 그때 당시의 기분만이 남아있네요.
저 이 영화 원작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되서 4월1일에 사두었거든요. 그리고 저쪽에 치워뒀었는데, 지금 읽는 책 다 읽으면 이 책 읽어야겠어요.

치니 2011-04-08 12:16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 제가 저런 댓글을 단 이유는, 저는 책을 읽었는데 영화를 보고나서 여주인공을 연기한 이자벨 위페르가 정말 위대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아 - 다락방 님, 빨리 읽어봐요, 소감이 완전 궁금해요!

외국소설/예술MD 2011-04-08 18:43   좋아요 0 | URL
다 읽으신 뒤의 느낌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는 제가 예측할 수 없겠으나, 일단 흥미로울 것임에는 틀림없을 거라 봅니다. 재미있다와는 다른 뜻이지만요. ㅎ

비로그인 2011-04-10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마지막 부분(이자벨 위뻬르가 자신의 가슴을 칼로 찌르고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에서 정말 감동...
저도 그 장면에서 나오는 슈베르트의 피아노3중주 D.929 2악장 첫부분, 너무 좋아서 요즘도 즐겨듣는답니다.
자해와 마조히즘, 완벽성에 대한 추구 등의 심리를 너무나 잘 파헤친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기덕도 미카엘 하네케를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감독으로 꼽기도 했죠..

외국소설/예술MD 2011-04-11 18:42   좋아요 0 | URL
이 글 본문에서는 일부러 중후반 내용을 말하지 않았었죠. 그 변화 과정을 독자/관객들이 함께하는 게 의미있는 게임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ㅎ 사실 뭐 스포일러는 아니지만요.

저도 그 엔딩을 말하고 싶었어요. 선셋 대로의 한 장면처럼 우아하고 강렬하고, 그러고보면 욕망을 말하는 멋진 영화들은 그렇게 본능적인 품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저 위대한 여배우들께 경배를.

그러고보니 슈베르트 d.929는 해피엔드에도 나왔었죠. 그 영화도 욕망에 대한 영화, 라고 봐야겠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