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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홍은택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은 여행이 일상화가 되었기 때문에 여행기를 읽는다는 것, 그것도 미국여행기를 사서 읽는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것도 중년 남자의 자전거 여행기라니! 요즘같은 불경기에 팔자 좋게 처자식 놔두고 두 달이나 자전거 여행을, 그것도 보통 사람은 비자발급조차 받기 힘들어서 가보기조차 힘들다는 미국을 횡단하고 여행기까지 쓰다니, 팔자 좋수! 이런 흉악한 마음이 절로 든다.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솔직히 색안경을 끼고 읽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읽고 나서는?
일독 후, 저널리스트이자 번역가다운 자기가 겪은 이야기들을 맛깔스럽게 풀어내는 저자의 글솜씨에 감탄했다. 설사 이 책을 읽지 않더라고 서평이나 리뷰만 보더라도 몇 가지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내 자신을 발견했다.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이렇더라. 내가 지난 곳은 이런 곳이다. 등등 거기에 하드보일드의 탐정들처럼 자신의 과거와 사회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슷떳는 독백 양념까지.
이 책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특별히 내용이나 형식이 독특하다고 할 것은 없다. 그러나 지은이의 필력은 그 상투성을 뛰어넘고 있다. 아니 적어도 체험의 진정성을 부여하고 있다.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가야하는 힘든 여정. 그렇기 때문에 전심전력을 다해 자전거를 몰아가야했던 지은이의 생생한 느낌이 글 속에 살아 숨쉰다. 만약 자전거가 아닌 차를 이용한 여행기라면, 상투성을 극복하는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지은이가 힘들면, 글이 힘들고, 읽는 나도 힘들며. 지은이가 보람을 느끼면, 글도 빛나고, 나도 기뻤다. 게다가 신문에 즉각즉각 연재되었기 때문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느낌이라기 보다는 순간순간의 상황에 충실한 툭툭튀는 여행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여행기에서 보여지는 미국의 쇠락한 중앙부는 낙엽이 떨어지는 듯한 애잔함을 느끼게 했다. 이 여행기가 좋은 두 번째 이유는 남들이 가지 않는 곳들만 골라간 듯한 쇠락한 마을들을 지나다닌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마을의 소개에는 '한때는 X로 최대 Y명까지 살았던 마을이지만, 지금은 Z명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이는 특정시대, 정확히 말해 신생 미국이 성장하던 시절에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지만, 지금은 원동력을 잃고 노쇠해가는 옛 미국의 정취가 느껴진다. 그 속에서 지은이는 단순한 관찰에 머무르지 않고, 내면적 성찰의 자락을 보여주고 있다. 갈수록 극심해져가는 자본주의의 폐해나 자유와 기회의 나라 미국의 어두운 부분은 미국 내에서도 볼 수 있는 '일반적'이라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샘통같기도 하다. 마치 자수성가한 할아버지를 방문하는 느낌이랄까? 지은이는 과거의 흔적을 통해 현재를 몸으로, 마음으로 성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이라는 것은 참 신기한 것 같다. 어디에서 누구를 만났건, 대부분의 그 누구는 참으로 친절하고 선해 보였다. 소소한 경험으로 비추어 봐도, 여행에서 만난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지은이가 어느 정도는 취재의 목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선하고 친절하다. 많은 분들이 말씀하신 엘리슨이 가장 인상적이긴 하지만, 한명한명이 시냇가의 모래알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여행기라는 것이 어디를 갔다 혹은 누구를 만났다를 리뷰에 구체적으로 늘어놓는다면, 굳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어지기에 자세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이, 이 책을 읽기 전의 내가 그랬지만, 내용만 보고도 어떤 선입견들이 생길 것이다. 사실 읽고 나서 그 선입견은 그대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은이의 힘들지만 더 보람된 자전거 행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몸과 마음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담근 대양의 차가운 바닷물처럼 쏴~하고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대를 정리하고 30대의 문턱에 들어선 나 역시. 가장 아쉬운 것은 해외여행을 많이 가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회할 수록 기회는 점점 줄어들어간다. 당신이 지금 이 책을 읽고 여행을 하던, 혹은 대리만족을 느끼며 책을 덮고 일상에 충실하던 그것은 당신의 자유지만, 한번쯤은 멋지게 떠나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난 결국 참지 못하고 제주도에 갔다.
추신) 한겨례에서 나온 책 치고는 제목이 불만스럽다. 아메리카라니. 차라리 <미국 자전거 여행>이나 횡단로의 이름을 살려서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 횡단기>였으면 낳았을 것 같다.
추신2) 수많은 사람들의 초상권 문제는 없는지 궁금하다. 다 허락을 받고 찍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