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매슈 설리번 지음, 유소영 옮김 / 나무옆의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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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점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자정이 넘어서야 동료직원과 함께 가게 문 닫을 준비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소라면 들리지 않았을, 책 여러 권이 낱장이 펄럭거리면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차례로 들린다. 한 권, 또 한 권, 그리고 또 한 권. 이쯤 되면 신경이 거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서점의 단골손님은 계속 책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2층 서가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피곤한 주인공은 서점 문을 닫아야 하니 그만 나갈 시간이라고, 단골손님을 찾아 다니다 그가 목을 매단 현장을 발견하고 만다. 

그가 다소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긴 하나, 내성적이고 남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류의 사람이기에 호의적으로 대해왔던 주인공은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목을 맨, 이미 즉사한 그의 바지 주머니에서 주인공이 필사적으로 남들에게 감추는 어린 시절의 한 때를 찍은 사진이 발견된다. 모르는 사람이 없는 끔찍한 사건에 휘말렸던, 주인공이 절대로 남들에게 알리고 싶어하지 않던 그 시절이 찍힌 사진이. 


주인공은 빨리 이 사건을 잊어버리고 싶다. 죽은 이에게서 자기가 묻고 싶어했던 과거를 드러내는 사진이 나온 것도 기분이 언짢은데, 그가 살던 아파트의 관리인이 나타나 주인공을 찾는다. 죽은 이가 주인공에게 남긴 유산이라고 해야할지, 아무튼 책더미를 처분할 권한은 이제 그녀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되어버린다. 주인을 잃고 남아있는 책들을 넘겨보다가, 주인공은 아무렇게나 무작위적으로 부분부분 잘라낸 페이지를 발견한다. 악취미적으로 책을 훼손했다고 보기에는, 그 구멍들은 너무나 뭔가를 명백히 암시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손을 떼어버리고 싶은 마음 반, 죽은 이가 남긴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 반으로 주인공은 이 페이지 속의 구멍으로 발을 디딘다. 




보통, 번역 소설을 읽고 나면 원제가 품은 그 느낌을, 아련함과 따뜻함과 때로는 묵직함과 애틋함과 그 모든 정감까지 가져오는 게 정말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구나 생각을 하는데, 몹시 드물게 번역한 제목이 훨씬 더 이야기의 핵심을 찌른다던가 인상을 응축했다던가 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이 딱 그렇다. 

번역가께 기립박수를... 원제보다 백만 배쯤 더 좋다.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면 제목이 너무 애잔하다. 


답답하고 외로운 곳에 소외된 채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 가엾고, 그가 죽음을 택하지 않을 수 없게 몰아간 인물도 선택지를 가질 수조차 없는 인생 외길에 몰려 있었던 피해자였음이 안타깝고... 뭐 그렇다. 가련한 사람들이 참 많이 나온다. 처연하고, 애틋하고, 처량맞고, 쓸쓸하고, 외롭고, 소외되고... 대략 연상가능한 범주의 슬픈 인물들의 삶을 풀어놓은 팔레트 같은 소설이다. 그래서 속상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그냥 이 이야기를 안아주고 싶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들 각자의 삶은. 


작가 처음 쓴 장편소설이라는데 대단하다 정말.



너무 어린 독자에게는 권하지 못하겠다. 어둡고 무겁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이어서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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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어떻게 변화시켰을지.소개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숫자는 단지 우리의 인지능력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경험을 형성해 왔다.> 경험의 형성만이 아니라, 경험과 인식의 폭을 넓힌 것이 분명한데 궁금한 지점은 여기다. 그래서 앞으로도 숫자가 이 폭을 아래위로 밀어올리는데 한 몫을 할 것인가? 일단 yes, 라고 추측하고 책을 보자.



수학, 정말이지 애증이 끓는 그 이름 수학... ㅋㅋㅋ 



나는 그냥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이야기라서 쓴 것 뿐이고, 딱히 거기에 어떤 이름표를 붙일 생각을 할 필요를 못 느껴서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내가 일종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면... 정말 ?????? 뭐야, 왜요, 이게 다 무슨 말씀이세요??? 어리둥절하고, 당혹스럽고, 화도 좀 나고, 정말 갖은 종류의 감정의 풍랑에 휩쓸릴 것 같다. 그게 바로 마거릿 애트우도가 겪었던 일인데, 그런데 그 고민과 성찰의 시간을 통과해 만든 결론을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만들다니, 역시 대단한 사람. 



아이디어 연금술사들은 어디에나 있다. 이런 책 너무 좋다. 정말 좋다. 아무도 들어가보지 못한 문을 찾아 손잡이를 돌려 열어주는 사람들이 고맙다. 

책 소개에 이런 내용이 있는데,

<감정이 사라진 의료 환경에 의문을 제기한다. 

(...) 이러한 연구 끝에 이들은 의료인에게는 문학적 글쓰기, 즉 이야기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결론내린다.>

근데 이 대목 읽으면 우리는 딱 생각나는 이름이 있지 않은가요... +_+ 




계절감이 너무 딱 맞는 느낌이랄까. 여름, 장마는 코 앞, 우산을 접지 못하는 남자가 등장하는 연애소설.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고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원칙, 이것이 망 중립성이라고 한다. 이게 쉬운 문제도 아니고 일반적으로 관심을 갖기도 어려운 문제니까 이런 책이 나왔겠지 싶다. 뭐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할까 싶은데, 모르고 당하고 속은 게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가.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도 알 건 알아야 한다.



꽃말을 활용해서 쓴 소설은 예전에도 본 적이 있는데, 이게 은근히 재미있는 소재인듯. 그거는 그거고 여성 5대의 이야기라니 스케일의 박력이 장난이 아니네요.



띠지가 강렬하다. 뭐... 알음알음 다들 비슷하게 알고 있는 이야기였어도 한때 그곳에 몸담았던 사람의 이야기는 신뢰성과 파급력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일종의 고발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우리하고 무슨 상관일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비합리적인 노동 환경이 곧 나의 비윤리적인 노동 환경과 같은 맥에서 뻗어나왔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 분 레시피도 좋은데 책도 진짜 전략적으로 내셨지 싶... 여름에 과일재료 잔뜩 들어간 디저트라니 좋잖아요...



인스타그램의 비즈니스 모델과 성공 전략에 관한 책이기는 한데... 당연히 그 내용을 포함했겠지만 이 앱이 왜 사람들한테 그렇게 쉽게, 널리 먹혔는지(!), 아직도 잘 나가는지, 그런 내용이 잘 다루어져 있는지도 함께 다뤘다면 금상첨화겠다. 



그러니까 지구를 넘어서 우주적으로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게 인간이라 이건가요... 멸종이 되어도 할 말이 없는 거 아닌가 생각이 막막... 



이미 터진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 자체가 발생하지 않게 미리 막자, 좋은 생각이다. 되게 뻔한 얘기인데 뻔하고 실속 없는 말을 하는 저자는 아니라 분명 뭔가 있겠지 싶은. 



14살과 17살 여자아이 둘이 미국 땅에서 여행을 떠난다고... 

분위기상 아이들은 당연히 집에 돌아오겠지, 돌아오겠지만, 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안한 시작인지, 물론 훌륭한 이야기가 있을 거고 아이들도 훌쩍 자란 채 자기 나름의 성장사를 보여주겠지만, 딱 그 연령대의 아이들 엄마로서 나는 관심은 가도 이 책 못 읽을 것 같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속 세계와 현실의 낙차는 정말로 어마어마어마하지 않을까 무섭다고요.



전작도 다 못 읽었지만, 요즘 감정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는 터라, 비슷한 류의 책을 모아서 읽는 전략을 나도 나름 흉내내고 있는 중이라 일단 이 책도 챙겨본다. 목차를 보면 일단 확 끌리거든요... 



김신지 작가 책을 보고 나서였겠지 싶은데, 언젠가부터 다이어리에 '오늘의 단어'를 나도 적기 시작했더랬다. 처음에는 한 낱말이었는데, 지금은 그 낱말에 감정을 붙여서 쓴다. 예를 들면 쭈뼛한 재미라든가. 똑같은 주제로 노트를 쓰면 남들은 뭐 썼나 들여다 보고 싶어지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원제는 모르겠지만 이 제목은 정말 우리나라에서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어감 아닌가... 설정하고 너무 어울리는 제목인듯. 

그 설정이 무엇인가 하면, 주인공이 자기도 모르게 섭취한 독버섯에 중독되어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게요, 어쩌다 독버섯을 드셔가지고는, 이 모든 사달의 서막같은 그 독버섯을 드셔가지고는...



탐닉하기 전에 일단 그 시간을 좀 가졌으면 좋겠습니다만, 아무튼 네, 어떻게 혼자만의 시간을 잘 쓸지 알려주신다면 감사히 들을게요.



치매 전문가가 치매에 걸렸다는, 이 아이러니한 실제상황 앞에서 그는 무엇을 했을까. 자기가 치매에 걸린 것을 알고 그 사실을 널리 공개하고, 이전에 치매 전문가로서 할 수 있었던 말과 이제는 치매 환자로서 할 수 있게 된 말들을 모두 털어서 한 권의 책에 쏟아부었을 그의 노력을 상상해 볼 때 숭고함이란 무엇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미래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서,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스스로에게 갭이어를 선물했던 아이들에 대해서. 그게 왜 필요한지, 무슨 도움이 되는지를 힘껏 알려주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두면 아이들에게도 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유일하게 호러 미스터리를 읽어도 버틸 수 있는 계절이니까요!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를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더랬다. 신간이 나왔는데...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잖아요? 아이디어, 문체, 호흡, 재미, 이런 것들이 글쎄 뭐랄까, 머리털 나고 책 한 권 안 읽어본 사람이더라도 끌려들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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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Kim Jiyoung, Born 1982
Author: Cho Nam-Joo
Type: Fiction
Published: 2018
Pages: 162
TW: Misogyny, Sexual Assault, Sexual Harassment, Post Natal Depression

“This was a time when the government had implemented birth control policies called “family planning” to keep population growth under control. Abortion due to medical problems had been legal for ten years at that point, and checking the sex of the fetus and aborting females was common practice, as if “daughter” was a medical problem.” 


This book is quite short, but for such a quick read, it’s extremely thought-provoking. Set in South Korea, it tells the story of Kim Jiyoung from her birth, childhood through her adolescence, and adulthood, we follow her as she grows up and watch slowly as the misogyny seeps into every aspect of her life, career, and family.

Sometimes a book can run this risk of being too matter-of-fact when discussing themes such as those that crop up in this one. Nam-Joo manages to eloquently cover topics such as misogyny, sexual harassment, workplace harassment, the patriarchy, and post-natal depression, and I still get the feeling that a lot of it could be missed if the reader wasn’t paying attention. That’s not to say she doesn’t make it clear, (because by hell she does) but what I mean is that Kim Jiyoung is plucked straight from real life, so much so, that unfortunately we’re so used to this inequality and so conditioned to believe that women have to perform certain roles, it was as if this book was simply just an account of one real woman’s ordinary life.

If the content itself isn’t enough to make you frustrated at the world we live in, it becomes even more infuriating because the author substantiates her writing frequently with statistics and facts from actual studies. Woven seamlessly into the narrative of Kim Jiyoung’s life, these numbers only reiterate the point Nam-Joo is making and the point she’s trying to prove – the patriarchy needs to end.

The ending of this book is quite something – I’m not going to spoil it, but it perfectly sums up the outlandish gall of men to toss women aside like they do as if women aren’t a part of their lives, of society, and of the very world they so desperately want to thrive in. Trust me when I say this book is worth the read!

+ 며칠전 조남주 작가의 신작을 언급하면서 이 책 이야기를 잠깐 했던 게 생각나서 퍼담아놓... 

+ 파파고 성능이 좋아졌네요. 붙여넣으면 꽤 그럴싸한 번역을 제공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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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없다의 방구석 영화관 - 영화를, 고상함 따위 1도 없이 세상을, 적당히 삐딱하게 바라보는
거의없다(백재욱) 지음 / 왼쪽주머니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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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을 흥미롭게 읽고 나면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가 궁금한 건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다. 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지만, 호불호가 강하게 갈릴 것 같다고 짐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중간 가는 별점보다 극과 극인 별점이 많았다. 


이 책의 최고 장점은 엄청난 가독성이겠다. 정말 줄줄 읽힌다. 끊어지지 않는 국수가락처럼. 그런데 메시지보다 메시지를 실어나르는 도구의 매끈함과 완성도에도 엄격한 사람이라면 굉장히 싫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의 거친 어투(와 종종 튀어나오는 상소리는 덤...)가, 왜 그렇게 썼는지 맥락은 충분히 이해하겠는데 조금 순화해서 썼어도 좋지 않을까 싶긴 했다. 

왜냐면 이건 책이니까. 책과 유튜브는 매체적인 성격이 다르지 않은가. 

유튜브만이 아니라, 저자가 익명의 대중과 만나는 기회가 대체로 말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톤을 통일하려고 이렇게 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그래도 책을 이루는 글이라는 도구의 특성을 조금 존중해 주었으면 훨씬 더 호의적인 독자를 많이 만났겠다 싶다. 

이렇게 쓰는 이유는 그 정도로 공감이 가는 대목이 많았고 대체적으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이 좀 더 좋은 평을 받아 많이 읽혔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생겨서다. 역시, 그동안 오죽 속이 터졌으면 이렇게 썼나 싶기도 한데 책이라는 걸 읽는 사람들의 전반적인 정서를 조금만 더 고려했으면... 아, 아쉽다. 


아무튼, 그런 측면에서 별 하나는 뺐습니다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메시지와 저자의 가치관 같은 걸 보면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멘탈 약하신 분들... 플러스 누가 날 가르치려드는 듯한 말투에 경기를 일으키시는 분들... 글에서까지 상소리 보고 싶지 않은 분들은 굳이 읽지 마시고요. 


그런데 정작 그 피해를 본 사람들 중 대다수는 자기가 왜 그런 꼴을 당했는지 모른다. 맥락을 모르기 때문이다. 맥락을 모르니까 애먼 사람을 잡고 욕한다. 진짜 원인은 따로 있는데.

맥락이 이렇게나 중요한 거고, 앞뒤 사정 모르고 욕질만 해대면 이렇게 순식간에 멍청이가 되는 거다. 그런 멍청이들을 계몽하려고 <빅쇼트>같은 영화가 나온것이고. 재미까지 있으니 금상첨화인 것이고.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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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다 죽는다
애덤 실베라 지음, 이신 옮김 / 문학수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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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너무 먼 이야기이거나 코앞에 닥친 이야기이거나, 둘 중 하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말이 이만큼 잘 어울리는 상황도 없을 거다. 밤 깊은 시간에 느닷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반가울 수가 없는데 그것도 심지어 일반적인 전화벨 소리가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죽음을 예고하는 조직의 전용 벨소리라면 누군들 그 전화를 받고 싶을 것이며, 소스라치지 않고 배길 재간이 있겠는지. 도대체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의 죽음을 미리 알 수가 있으며, 그걸 본인에게 전달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가 하는 문제는 이 책에서 다루지 않는다. 이 세계는 그냥 그것이 당연하고 논리적으로 수용되어 있는 곳이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 설정을 납득할 수 없다면 이 이야기를 읽을 수가 없다. 


여하간,

전 여자친구의 현 남자친구를 죽일 듯이 패주고 있던 한 10대 소년과, 집 안에서 두문불출하다시피 살고 있는 또 다른 소년이 이 사신의 방문예고와 같은 전화를 받는다. 이건 그들이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므로, 그리고 어디까지나 이 조직은 사람들에게 미리 죽음을 알려주어 제대로 된 이별의식을 치르고 곧 망자가 될 사람들이, 그의 소중한 사람들과 마지막 순간을 최후까지 잘 갈무리하라는 심히 교과서적으로 건전한 목적에 봉사하고 있으므로 전화를 끊어버리거나 분노를 터뜨리는 것은 본인에게 득이 될 게 없다. 


그리고 때로는 주위에 아무도 없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외롭고 두려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는 까닭에, 누군가는 이런 앱도 개발한다. 그 앱의 이름은 LAST FRIEND로, 데커-죽음을 예고하는 데스캐스터들에게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프로필을 올려 그의 마지막 하루를 보다 충실하고 아름답게 채워 줄 친구를 찾게끔 도와주는 도구다. 

물론 인간이라는 종이 사는 세계는 현실이나 소설 속이나 다를 게 없어서 여전히 또라이 총량의 법칙이 기능하는고로 이 앱을 통해 비뚤어진 욕망을 해소하려는 인간들도 적잖이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인공으로서 누리는 특혜가 있기 때문에 결국 청소년 1 루퍼스와 청소년 2 마테오는 앱을 통해 서로를 만나고 각자의 마지막 하루를 온전히 함께 주고받는다. 하루를 1년처럼 산다는 말도 있지만(있었을 거야) 이 소설야말로 그것이 진실임을, 하루를 그토록 길고 풍성하게 살 수 있음을 그들의 눈물나게 치열한 시간들을 통해 증명한다. 


죽어서도 원통하지 않도록, 죽음을 목전에 두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와 고마움을 전하는 시간을 갖도록 죽음을 미리 예고받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이도저도 다 필요없으니 죽음이 내일 당장 찾아온다는 예보 따위는 사절하고 싶으신가요. 


"너 없이 난 어떡하니?"

이 무거운 질문이 바로,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던 이유였다. 내가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있다. 나 없이 네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도 모른다. 날 어떻게 애도할지도 알려 줄 수 없다. 내 기일을 잊어도 자책하지 말라고, 내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며칠이나 몇 주 혹은 몇 달을 보냈다는 사실을 깨달아도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고 설득할 수도 없다.

난 그저 네가 살길 바랄 뿐이다. 

-398~3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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