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지 말걸 그랬어 그림책 마을 4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유문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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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인생은, 해봐서 후회하는 것보다 안해봐서 후회하는 게 더 많대. 네 말마따나 ‘~했을 뿐이지, 남과 다를 게 하나도‘ 없으니까. 시도만으로도 멋진 인생! (과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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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라고! 생각하는 숲 9
사노 요코 글 그림,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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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고양이 님. 본성은 어쩔 수 없는거야. 이 제목, 보면 볼수록 암 진단을 받자마자 재규어를 바로 구입했다던 요코 아줌마(라고 부르고 싶어지는)의 패기가 그대로 살아있는 제목과 내용이다.
덧. 자매품, ‘그럼, 오늘은 오랜만에 돼지고기를 먹어볼까?‘ by 우리집 막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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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왕 바바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3
장 드 브루노프 지음, 김미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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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연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작가가 1937년에 돌아가신 분이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이해가 될 것 같은 느낌도 슬금슬금. 6학년 아이의 말을 빌자면 그 개연성 없음이 이 작품의 매력인 듯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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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쓴 독서록을 타이핑해 올리면서 혼자 붙잡은 물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던져왔던 궁금증이니만큼 많은 생각들이 있고 제가끔의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는 현답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쓴다는 건 뭘까.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달라지고, 자라기를 기대하면서 이제 갓 열 살이 넘은 아이들에게 읽은 것들에 대한 글쓰기를 시키는 걸까?

 

큰 아이와 둘째 아이가 쓴 글은(글은 글이니까) 놀라울 정도로 결이 다르다. 둘째 아이가 쓴 글을 보면 책 전체의 내용을 아우르거나 풀어나간다든가 하는 식의 종합하는 성향이 전혀 없다. 그렇다고 각개격파인 것도 아닌데, 책을 읽다가 뭔가 본인이 꽂힌 '순간'이나, 어떤 사건에 대한 특정한 캐릭터의 리액션이라든가, 이런 몹시도 사소한 디테일에 완전히 자신을 쏟아부어 감정과잉의 상태로 그게 그래서 이랬거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고 서두를 열어서, 나라면... 하고 엄청나게 몰입한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그게 너무 아이다워서 웃음이 나... 그렇게 본인 감정을 쏟아부어서 쓸 수 있다는 것도 좀 부럽고, 여하간 그래서 이 책의 전반적인 흐름이 뭔지는 한 개도 모르겠지만, 뭐가 이렇게 얘를 미치게 만들었나가 궁금해서 그 책을 들춰보게 하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인가, 몇 줄 안 쓰는데도 얘는 쓰는 걸 너무 힘들어 한다. 감정적으로 탈진할 것 같다는 짐작만 한다. 기껏해야 만 10세가 담아놓고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가 커 봤자 얼마나 클까. 그걸 한껏 들고 있다가 와르르 쏟아붓고 헉헉헉, 힘들어하는거지...

 

반대로 고학년 초딩이는 되게 (본인이 가져갈 수 있는 최대한도로) 쿨해질 수 있는 포지션에서 쓴다. 책 읽기를 아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늘 '거리를 두고' 읽는다. 그러니까 써 오는 글도 남 얘기하듯 걔가 오늘 이러저러해서 요랬더랬지... 하는 느낌이 엄청 강하다. 사춘기를 목전에 두고 있어서 그런가 자신을 겹겹이 포장해서 잘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게, 원래의 성격에 더해져서 더 단단하고 방어적인 문장만 쓰는 느낌... 그걸 내가 억지로 들어내려고 해서도 안 되고 좀 치워줄래? 요구해서도 안 된다는 건 알지만, 가끔은 좀 더 날 것의 감정을 보여 써도 괜찮아, 라고 말해주고 싶기도 하다.

사실, 그건 나도 잘 안 되는 건데.

내 마음이 이렇더라, 그리고 내 생각은 이렇다, 라고 남이 봐도 상관없어라고 생각하면서 펼치는 게 수줍고 무서운 사람도 있는 법이잖아. 라고 쓰고보니 이 아이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어떻게든 말은 한다쳐도 그 다음은 수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 우연히 독서모임에 나간지 이 년 가까이 되면서 그런 방어적인 태도가 많이 고쳐졌다. 걱정하던 것과는 달리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이나 품었던 생각들에 마음을 열고 들어주었고 어떤 때는 공감도 해주었다. 어느 때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받아들여주었는데 그 경험이 흡사 가득 찬 곳간의 빗장을 들어올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지점에 이르기까지 시간은 더 걸릴수도 있겠지만, 어떤 글이든 일단 쓰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쓰는 일로 엄마와 의견을 나누고, 대화할 수 있는 또다른 소통채널 하나를 튼 것을 아이가 좋아해 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보람이 있다.

 

아무나 쓸 수 있는 글, 누가 베껴써도 원래 쓴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글, 그런 것이라도 내처 쓰고 쓰고 또 쓰면서 조금씩 내 글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 시작을 조금 더 빨리 앞당기면, 시행착오의 기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좀 있었다. 어릴 때 글쓰기가 너무너무 싫어서 몸살을 앓았던 기억이 난다. 책 읽는 것은 좋았지만 읽은 것을 가지고 뭘 느꼈는지, 뭘 생각했는지 써오라고 하는 게 진저리가 났다. 아무 생각 안 하고, 무감각하게 읽은 나이의 어린애에게 뭘 그렇게 요구하는지 짜증이 겹겹으로 쌓였다가 터지곤 했다. 그때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면서 어떻게 쓰든 아이들에게 이만큼이나 쓴 게 대단하다고 칭찬한다. 어쨌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무엇이든 하면서 걷고 있는 길에 표식을 놓는 편이 유익한 건 확실하니까.

 

아이는 엄마, 오늘 내가 쓴 거 올려줬어? 하고 묻고, 자기 방(이라고 부른다)에 글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는 사실에 굉장히 뿌듯해하며 웃었다. 자기를 숨기고 쓰는 글이든, 내가 낸데... 하고 쓰는 글이든, 쓰는 사람이 즐겁게 쓴 글이 모여서 뭔가를 이룰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개인적으로) 근거는 아직 못 찾은 믿음으로 오늘도 아이들의 글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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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에게 딸이 있다고 가정하여 쓴 소설이다. 주인공은 안나, 트레이시, 벤, 마크라는 오스트레일리아 아이들이다. 어느 날 안나는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준다. 

 

 히틀러에게는 하이디라는 딸이 있다. 하이디는 얼굴에 크고 빨간 반점이 있었고, 한 쪽 다리가 짧아 절었다. 히틀러는 딸이 전투를 보지 못하게 하려고 시골집에서 살게 하였다. 학교도 보내지 않고 가정교사를 두어 집에서 공부하게 했다.

히틀러가 딸을 시골집으로 보낸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이 가장 우월하다고 주장하며 환자, 장애인 등 몸이 불편한 사람이 게르만 족의 대를 잇눈다는 것에 대해 몹시 못마땅해 하였다. 그래서 장애인, 환자, 집시를 모두 죽였는데 다리를 절고 얼굴에 반점이 있는 자신의 딸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다.

안나의 이야기가 다 긑난 후, 눈치가 빠른 마크는 하이디의 손녀가 안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살면서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을 이야기를 가짜처럼 꾸며내 이야기하는 안나를 보고 마크는 미안하다고 한다. 그런 마크를 보고 안나는 어깨를 으쓱한다.

 

 독재자의 딸,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먹고 싶은 것 먹고, 놀고 싶으면 놀고, 아랫사람도 많이 거느리며 행복하게 살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커서, 자기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알게 된다면, 그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

물론 딸, 아들이 부모님께 독재를 멈추라고 요구해도 독재자는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하라고 그만하실 분들이면 처음부터 독재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도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작은 노력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들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가치있고 중요한 일이다.

 

2018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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