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생이라는 건 한없이 지루하게 소일하다가 때때로 광인처럼 질주하기도 한다.

정신과 신체가 함께 달리고 있을 때는 대개 생산적이거나 소모적인 일로 그리 될 때가 많으나 둘이 따로, 특히나 마음 쪽이 폭주할 때는 대개 자기파괴적인 이유가 동반되는 경우가 흔하다. 웃지 못할 것은 그 모든 상황을 전지적 시점으로 읽고 있으면서도 멈춤 버튼을 누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는 알량한 자존심이 필사적으로 상황종료를 막는다. 그것은 이성을 놓친 감정을 동력삼아 움직이는 까닭에 일사불란하게 마음에 불을 지르는 원인제공자 또는 상황이 눈 앞에서 멀어지면 힘을 잃지만 유사한 배경이 차려지면 불씨 하나를 잡아 가열차게 불을 지른다. 네 면상이 내 눈앞에서 사라지면 이게 이렇게까지 이럴 일이었나, 갸우뚱하다가 다시 시야에 등장하면 암, 그럴 일이고말고, 오늘 네가 나한테 해준 것 남부럽지 않게 너한테도 있을 인간적 존엄성이라는 걸 끄집어내어 짓밟아 뭉개주마, 두고봐라. 이렇게 된다. 하, 쓰고 보니 참으로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어제 누군가가 사람이 스트레스의 최고치에 달했을 때 그의 인간적인 밑바닥이 다 드러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는데, 틀린 말 하나 없다. 그 말을 한 이는 이제 겨우 만 열두 살 난 아이다.

 

2.

변명하자면, 결국 항상 말뿐이다.

너무 악에 받친 나머지 어제는 수첩에 야 이 나쁜 새끼야, 라고 휘갈기고 자버렸다.

 

3.

어제 오전에 스토너를 다 읽었다. 그 이야기가 아주 오래 전 내게 큰 감흥을 주었던 어떤 이야기와 아주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이유로, 저런 이유로 저마다에게 삶은 조금씩의 상실과 고통을 안겨주게 마련이고 누구나 그것을 버티면서 무엇인가를 지켜내는 것이라고. 그러므로 함부로 남의 삶을 동정하거나 연민해서는 안 된다고.

요 이삼일간, 뭐가 됐든 끼적거리고 싶은 욕구가 엄청나게 밀고 올라왔다. 지독한 멀미로 구토가 나는데 꾹 눌러 참는 기분으로 버티다가 결론적으로는 별 것도 아닌 글자들을 토해내고 말았다. 다시 읽어보니 그냥 구시렁이네.

어느 쓰기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인간은 불행하거나 외롭거나 슬프거나, 여하간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 쓰고자 하는 의욕이 가장 충만해진다고. 정말 그러네. 만사 즐겁고 행복한데 쓸 게 뭐 있겠어. ... 그렇지만 쓰는 게 좋겠죠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어느 정도로 사람을 고양시켜주는지 이런 순간 가장 확실하게 느낀다. 단순히 야 이 나쁜 블라블라... 하는 것보다, 천천히 엉킨 실을 풀어내듯 속에서 꼬여있는 말들을 풀어내면서 마음이 유순해지는 것을 본다. 참, 별 것도 아닌 것을 대단하게 꼭꼭도 묶어 놓았구나.

 

4.

저녁엔 싱크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제임스 설터의 책을 넘겼다. 갖은 찬사가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마 너-무 피곤하고 지쳐 있어서 그랬겠지만, 칠십 몇 페이지에서 몇 번이고 얼굴에 같은 페이지를 복사해 버렸다(아이한테 배운 표현인데, 너무 그럴싸해서 한참을 웃었다). 복사만 하고 입력은 하지 못했는지 아침에 다시 넘겨보니 50 페이지부터는 이거슨 호울 뉴 월드...

아, 이 책을 계속해서 읽어야 할까? 훌륭한 책이겠지만, 어쩐지 안 좋은 타이밍에 만난 것 같은 느낌적 느낌.

 

더구나 어제 받은 택배엔 미야베 미유키의 신작이 들어있다. 제목만 봐도 순식간에 낚일 것만 같은... 오늘 오후엔 과연 무엇을 읽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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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전혀 안 간다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빨리 6주가 흘러갔다. 그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는데 유일하게 예외가 책 읽는 것이더라. 하다못해 종이에 뭔가를 끼적대기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의욕은 생기지 않았다.

팔에 2킬로짜리 돌덩이(??)를 매달고서, 이러고 도서관을 어떻게 가? 이런 그럴싸한 핑계를 갖다붙이고 열심히 책을 사고 배달시키고 또 사고 택배받고... 이 짓을 한참을 하고 나니, 깁스를 풀고 나서 남은 것은 사상 최고이자 최악의 금액을 달고 나타난 이용대금 명세서다. 진짜 기절할 뻔 했다. 이건 뭐니. 난 너하고 친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 1도 없는데, 너는 왜 느닷없이 나한테 달려들어 떨어지질 않는 건데.

 

이럴 바에야 차라리 넷플릭스를 열심히 공부(?)할 걸 그랬나...

 

다 까먹어버리기 전에 뭘 어떤 기분으로 읽었는지 간단한 정리라도 해 두고 싶은데, 대부분 그랬듯 마음만 앞선다.

한 줌 남아있는 양심상 사재기한 목록은 빼고 읽은 목록만 남기기.

 

     
       
       
       
       
       
       
       

 

 

차마 여기에 자백 못 한 나머지는 천천히 읽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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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녀석 맛있겠다 - 별하나 그림책 4 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 1
미야니시 타츠야 글 그림, 백승인 옮김 / 달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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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략 13여년간 쭈욱 사랑받고 계신 바로 그 분. 어르신의 풍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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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한 쪽을 쓸 수 없는 것은 처음 겪는 종류의 불편이다. 자랑일 수 없지만 다리 골절은 몇 번을 겪었는데, 힘들기는 했어도 그게 자존감을 건드리는 수위까지 올라가진 않았다. 이번 사고로 손목과 더불어 앞니까지 깨져버린 순간 나를 둥글게 감싸안고 있던 어떤 무형의 보호고리가 함께 깨져나간 것을 하루 늦게 깨달았다. 입안 상처와 붓기가 모두 가시고 난 뒤라야 심미적 후처치가 가능하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몸으로 아득함이 느껴졌다.

향후 2주간은 누구도 만나지 못하겠고 바깥나들이를 해서도 안되겠구나, 생각했다. 흡사 지금의 내 몰골은 아마도 강백호에게 시원하게 깨진 정대만의 꼬락서니랄까... 라면 비양심적인 극적 미화인거지만 암튼. 혐오표현이나 차별적인 비유를 하지 않으려면 이런 방법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깁스 감은 팔로는 어디건 돌아다닐 수 있지만 1/3 나간 치아를 남들 앞에 드러내고 다니긴 용기가 풀 충전되지 않고선 쉽지 않은지라...

 

하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나는 당장 어제부터 잘만 돌아다녔고 말도 잘만 했다. 도대체 하루 만에 마음이 어떻게 그렇게 역주행을 한 건지 더듬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어제 아침에 상황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를 보살피고 정돈했다는 걸 기억해냈다. 간헐적인 출혈이 지속됐지만 가능한 한 열심히 칫솔질을 했고, 한 손밖에 쓸 수 없어서 사방팔방에 비누거품이 다 튀었지만 얼굴을 깨끗이 닦았다.

무려 20분이 걸리는 바람에 허리가 꺾이는 기분이었지만 머리를 감고 말렸다. 평범한 일과에 지나지 않았던 일상 습관이 처졌던 하루의 기분을 세워주었고 누가 날 보고 웃든 말든 그게 나라는 인간의 본질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을 뼛속 시리게 깨우쳐줬다.

머리로만 알던 것을 마음에 받아들여 몸에 씌우는 느낌이라고 하면 비슷할지. 잘 모르겠다. 그 감각을 되감았다 풀어보기를 되풀이하다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 대한 어떤 연구가 기억났다. (연구였던가?) 극한 환경 속에서, 그나마 지급된 멀건 커피물이나마 아껴서 씻고 스스로를 정갈히 하려 했던 사람들이 살아남은 비율이 높았다던 그것.

상황의 극한성이나 비참함의 정도에서 견주어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절대. 다만 내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내가 나를 사람답게 지키고자, 보살피고자하는 마음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보탠다는 뻔한 사족을 덧붙이고 싶었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내게 데려다 줄 수 있는 그 동력은 아주 사소한 생활의 습관 어딘가에서 나온다. 내일은 아마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다. 오늘의 내가 어제로부터 받아온 것에 뭔가를 더하여 전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3일에 걸쳐 나눠서 입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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