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여행을 재봉틀에 비유한다면, 산책은 섬세한 손바느질이다. 그것도 기억의 바탕화면에 꼼꼼하고 단단하게 여행의 기억을 못박는 되박음질이다. -41쪽

 

그래도 남들의 이해를 돕고 공감을 끌어내는 것은 구체적인 스토리텔링과 비유에서 나온다. 실컷 추상에 관한 이야기를 써 놓고 이 무슨 손바닥 뒤집는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지만... ㅎㅎㅎ

뱀발.

그런데 의외로 손바느질보다 미싱질(?)이 튼튼하고... 단단하답니다. 왜냐하면 재봉틀은 위아래 양면에서 박음질이 먹히는 구조거든요. 으하하하하하(이따위 태클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의 보폭 - 구체적인 삶을 강요받는 사람들을 위한 추상적으로 사는 법
모리 히로시 지음, 박재현 옮김 / 마인드빌딩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 전 논문을 쓸 때였습니다. 도무지 늘어날 것 같아 뵈지 않는 요지의 논문을 있는 힘껏 잡아당겨서 늘려놨는데, 그걸 또 한 페이지 가량으로 줄여야 하는 시지프스적 노동에 어처구니없어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 요약문 앞에는 왠지 있어보이는 타이틀이 붙게 돼 있습니다. Abstract. 그 때 abstract이 팔 벌려 안아들이는 의미의 친족들이 이렇게나 계보가 복잡했구나, 처음 알았습니다.

 

모리 히로시라는 작가는 『작가의 수지』라는 책으로 처음 만났어요. 그 적나라한 제목에 홀리지 않을 수가 없었거든요. 이 사람이 글로 꽤나 수지를 맞았던 인물이라는 걸 알고는 더더욱. 소설은, 안타깝게도 그다지 취향이 아니었습니다만.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함부로 추천하기 힘든 책이라는 점입니다. 간결하고 구체적(bold again)인 글을 선호하는 독자에게는 절대 비추예요. 시종일관 축축한 새벽안개길을 헤매는 기분이니까요. 안개가 보통 그렇듯 어쩌다 반짝 선명한 길잡이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순식간에 시야가 다시 부예져서 말이죠. 이 애매함을 꿋꿋하게 버텨나갈 수 있는 읽기 근지구력을 갖춘, 그리고 새로운 발상법을 배우고 싶은 의욕충만한 분꼐 한정하여 권해도 될까 말까조차 망설여지고요. 추상성과 추상화 능력의 중요성을 웅변하는 책답게 문장도 지극히 추상 일변도입니다(쓰면서도 슬슬 ㅊㅅ에 멀미가...). 가끔은 어쩌라고! 주먹을 내리치고 싶을 정도?

여기에서 무엇을 추상해서 나만의 행동강령으로 구체화할 것인지를 전적으로 독자 몫으로 떠넘기는 불친절한 책이지만, 사고의 혁신을 도모하는... 아, 거창해진다.

여하간, 뭔가 식상함을 털고 새로운 통찰을 얻고 싶다면 그 정도의 수고와 노력쯤은 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은근히 독려하는 책이기도 한 것이죠.

제 경우에는,

 

'왠지 이런 게 좋다'는 기분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으면 자신도 '어떤 좋은' 것을 만들고 싶어진다. 따라서 창작을 하려는 욕구의 밑바닥에는 대상을 추상적으로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중략) 그래도 무엇인가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만으로 생각의 보폭은 넓어져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구체적으로 앞으로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건 아직 존재하지 않기에 처음에는 추상적이다. 추상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행위를 우리는 '창조한다'고 말한다. -134쪽

 

이 대목이 흡사 동앗줄 같았거든요. 늘 '난 뭘 좀 하고 싶은데' 말만 주워섬기고, 그러면서 딱히 뭘 구체적으로 열심히 하지는 않는. 그런데 그 무쓸모의 집합체나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있던 무형의 물컹거리는 무엇이 의미가 있다고 누가 말해주는데 그게 얼마나 고맙겠어요. 진실인지 아닌지 따지는 건 잠깐 미뤄두더라도.

 

저자는 '생각의 정원'이라는 아이디어가 자신이 이 책을 쓰면서 걷어올린 가장 가치있는 발상이라고까지 단언하더군요. 저는 인용했던 부분이 개인적 가치를 느낀 단락이었고요. 그게 책을 읽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누군가를 문장을 통해 만나, 지금껏 어두웠던 머릿속 혹은 마음속 어딘가에 반짝, 불이 밝혀질 때의 그 경이로움 때문에 말이예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마스는 어디에 있을까?
미카엘라 치리프 지음, 라이레 살라베리아 그림, 엄혜숙 옮김 / 모래알(키다리)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우리 네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서 시간을 같이 보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는 제각기 자기가 가야 할 곳으로 가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띄고 자기 책임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도 일종의 사랑이란다.

주위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한없이 기쁘게 해주는 일이니까.

 

사랑하는 아빠가

 

부모님의 서재에 있었던 이 책을, 결혼해서 집을 떠나면서 몰래 내 짐속에 넣어 가지고 왔었다. 1987년이라니, 이게 도대체 몇 년 전이야... 삼십 년이 더 된 책이구나.

물론 아버지가 이 책을 절대 안 읽으셨을 거라는 걸 내 손가락 열 개를 다 걸고 장담할 수 있다. ㅎㅎㅎ 우리 아버지는 그런 분이니까. 한때는 가족보다 바깥에서 친구들 만나 왁자하게 술자리를 즐기는 걸 인생의 주요한 즐거움으로 삼으시는 걸 이해할 수 없어했지만 지금 나이가 되고 보니 뭐 그런 사람도 있는 거고 아닌 사람도 있는 거고, 다만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더할나위없이 책임감있게 완수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라는 기분이다.

 

우리집 서재에서는 굉장히 연배가 있으신 어르신 책임에도, 단지 좀 색이 바랬다 뿐이지 흡사 새책과 같은 굿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는 이 책을 보고 있자니 참... 마음이 묘오... 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로 다른 고통으로 연대한다. 인간에게 남은 선함이 있다면 이것이다. 완전히 다른 사례들에 무관심한 채로 그들을 뭉뚱그리거나,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나의 행복이 타인의 고통 위에 세워지지 않았는지 성찰하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나에게 주어진 고통이 없다고 할지라도 타인이 고통받지 않을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인간의 선함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스템을 세우는 것. 공감이 결여된 사람마저 따라야 할 규범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럴 때 차리라 인간이란 이런 걸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이야기하고 싶고, 그런 것을, 조금 믿어보고 싶다. -55쪽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힘은 바깥쪽보다는 가장 안쪽의 연약한 곳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었다. 믿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