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날이 소중하다 - 한 뉴요커의 일기
대니 그레고리 지음, 서동수 옮김 / 세미콜론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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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와 관찰하다... 의 개념적 차이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실제 삶에 적용하기란 그리 녹록치 않다. 어째서, 하고 잠깐 운을 떼었다가 나는 이렇게 생뚱맞게 대답해 본다.
회색 도당 때문에.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뭔가를 찬찬히 공들여 바라보는 일에 시간을 쏟는 일을 두려워한다. 그 시간이 진실하게 나의 내면으로 스며들어 나의 일부분을 이룰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그 시간에 뭔가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착각 속에 늘 빠져 살기 때문이다.

물론, 늘 그 착각 속에 빠진 채 시간은 정작 무엇을 뜯어보고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쓰는 대신 주로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흘러다니는데 소모해 버리기 일쑤...

어떤 대상을 차분하게 깊은 시선으로 오랫동안 바라본다는 건, 눈 안의 대상으로부터 소리마저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집중해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기에, 그렇게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을 정도의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 나는 내가 그리는 대상을 눈으로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듯 했다. 내 시선은 모든 굽이와 도드라진 곳들에 정성스럽게 머물렀고 표면을 따라 그늘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렇게 바라볼 때,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고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신기하게도 이러한 경험은 언제고 되풀이 되었다...

사실 그림이야 먹고 난 바나나 껍질처럼 어디로 던져버려도 상관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 느리고, 애정이 담긴 바라봄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시도를 해 본 적이 있는지... 있다면, 내가 느꼈던 막막함을 당신도 느꼈을지. 그냥 스케치를 하는 것은 이것과는 다른 경지다. 절대로.


나는 이렇게 대상물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진 사람들, 정확히는 일의 경중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 사랑을 주어야 할 때 주저없이 자신을 지워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존경스럽고 더불어 부럽다. 말은 쉽고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니까.


이 책은 불행한 사고로 가정에 큰 위기를 맞은 저자가 어느날 문득 아내를 그려보면서 바로 이 '특별한 시선'이 주는 경이로운 체험을 하게 되고, 그로부터 '나는 나를 그렇게도 두렵게 했던 고정관념의 함정을 쉽게 넘어설 수 있'게 된 이야기와 그의 생활들을 그림과 더불어 묶은 것이다.

우리가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는 그리 큰 걱정거리가 아니라거나, 혹은 아직 닥치지도 않은 것이라는 통계결과보다도, 절절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 글과 그림은 얼마나 호소력이 있는지.

그는 매일의 소중함과 일상의 축복을 느끼기 위해 그림 그리는 일을 일종의 의식화하고 있다. 그 중요성을 깨닫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는만큼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이며, 그에게는 그것이 그림 그리기라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삶을 채워주는 것들에 대한 감사인 동시에 그 자신에게는 기억 보관함이 되는 셈이다.
가까이 있으나 그 소중함을 모르는 공기와 같은 것들과의 일체감을 갖는 방법, 친밀한 관계를 맺는 방법으로써 깊은 시선을 통해 얻는(여기서 그림 테크닉 그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림은 얼마나 효과적인가.

모든 것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심오하고 독특하며, 아름답다.

그리고, 이 책을 다 덮게 되면 못 견디게 그림이 그리고 싶어질 것이다.
그림을 배워본 적도 없고 그릴 줄도 모른다 하더라도.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펜촉이 종이 위를 구르는 동안, 그 대상물과 나 사이에 얽혀 있는 이야기들이 마치 뭉쳐 있던 실타래처럼 펜촉 옆에서 함께 굴러나오곤 한다.
그래서 엉성하나마 완성한 그림 옆에는 짤막짤막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내 생활 속 이야기들이 찐득찐득하게 달라붙어 있다. 책 속 그림 옆에 왜 또 그리 다른 '작은' 이야기들이 붙어있을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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