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을 그리다 폴앤니나 산문
기믕서 외 지음 / 폴앤니나 / 202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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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하지만 기꺼이 자비로 구입할 의사가 있었음 역시 밝힙니다...)



서점을 소재로 삼은 글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서점은 공공성 있는 공간이지만 개인에게 특별한 장소로 곧잘 탈바꿈하는 곳인 까닭이다. 이-푸 투안이 <공간과 장소>에서 “공간은 장소보다 추상적입니다. 처음에는 별 특징이 없던 공간은 우리가 그곳을 더 잘 알게 되고 그곳에 가치를 부여하면서 장소가 됩니다.”라고 말한 바도 있지 않은가.



공간이 사적인 경험을 만나 한 사람의 마음에 어떤 심상을 형성하게 되면 그곳은 다른 곳과 쉽게 바꿀 수 없는 개인적인 장소가 된다. 비록 그 공간의 법적 소유주는 아닐지언정. 

그러므로 같은 공간이라 하더라도 그곳은 여러 개의 장소로 동시에 존재할 수 있으며, 동일한 공간에 대해 수많은 사람이 반복해서 썼어도 그 모두가 별개의 이야기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생각을 안은 채로 책을 보면, 이미 예사롭지 않은 표지가 조금 더 달리 읽힌다.



그림 속의 이 서점을 그렸을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우리는 이곳에 단 한 번도 걸음 한 적 없어도 쉽게 상상하고 마치 문 앞에 선 기분으로 상상할 수 있다. 그림으로 만나는 공간(독자에게는 아직 아무런 접점이 없으므로)을 들여다보는 것이 어째서 아주 내밀한 사적 영역에 초대받는 듯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지, 그 이유를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총 스무 명의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들 각각이 갈피처럼 접어둔 서점을 그림을 곁들인 글과 함께 소개한다.


운이 좋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서점 중의 한 곳은 나도 종종 걸음하는 곳이기도 했다. 내게 각인돼 있는 그 서점의 모습과 그림으로 드러난 서점의 모습을 비교하며 감탄하고 공감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실제의 서점과 그림을 절로 대조하며 그린이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 서점이 어떤 곳인지를 알게 되니 남은 서점들의 진짜 모습이 절로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서점은 단순히 책만 파는 곳이 아니어서 자연히 서점 주인이 책을 대하는 방식이나 취향은 물론이고 그 공간을 찾는 이에게 서점이 어떻게 느껴지기를 바라는지 역시 은연중에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조금 짓궂은 바람일지도 모르겠으나 이 책에 실린 서점의 주인들께서 책을 읽은 순간의 표정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크게 감정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 담담한 얼굴로 옅은 미소를 보이는 데서 그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눈꼬리를 콕콕 찍어낼지도 모르겠다. 팔레트 위에 짜 둔 물감에 물을 툭 떨어뜨렸을 때처럼 맑고 투명한 색부터 원래의 색감 그대로 아롱다롱 한 반응이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누구든 기쁘지 않을 수는 없겠다.




서점이란 대체로 크게 이익을 내기 힘겨운 공간이고 정말이지 좋아서 하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려운 일인데 누군가에게 이렇게 다정하게 품을 내어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 감동하지 않을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게 또, 책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도 좋아서 어렵사리 공간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과, 그 고마움을 아낌없이 표현한 사람들이 엮은 작은 손잡기를 보고 있노라면 이 연약한 연대가 더 커지고 튼튼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절로 품게 된다.


내가 본 것은 단지 책과 가구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의 결, 종이 냄새가 불러오는 기억들, 그리고 서점이라는 공간이 품고 있는 조용한 흐름이었다. - P16

사장님은 그 방명록을 보며 오래오래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는데, 나에게는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어떤 공간이 오래 남는다는 건 결국, 그 안에 담긴 마음이 오래 살아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 P34

이따금 그런 생각이 든다. 자기만의 공간을 가꾸는 사람은 어쩌면 어느 이야기에 등장하는 부지런한 구둣방 요정 같다고.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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