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보다 더
테일러 젠킨스 레이드 지음, 차윤진 옮김 / 나무의철학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와우. 이 책을 사 놓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일 년만에 읽었는데, 안 읽고 묻었으면 아까웠겠네, 싶었다. 


시작이 너무 웹소설 풍이어서, 이거 뭘까... 계속 읽을까 말까 고민이 슬슬 되는데 여주인공의 남편이 4페이지만에 교통사고로 급사해 버린다. 그럼 이 소설 전개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심지어 여주와 남주는 띨렁 6개월을 교제하고, 결혼한 지는 9일인가 10일밖에 안 되었다. 그냥 가볍게 드라마처럼 흘러간다면 이것은 죽은 남편과 몹시 닮은 남자가 어느 순간 나타나서 여주인공은 내가 이러지 말아야지 내지는 설마 그럴리가 없는데, 하며 새로운 남주 후보에게 빠져드는... 그런 싸구려 전개가 될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 그렇게 김이 새지는 아니하고, 다만 양가 부모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결혼을 번갯불에 콩볶아먹는 프로세스로 해치운 덕분에 만날 일이 없었던 시어머니를 남편의 시신을 가운데 두고 마주하는 공포와 경악의 크로스같은 상황에 놓이고 만다. 

당연히 시어머니가 되는 수잔은 여주인공 엘시와 마찬가지로, 갈래는 조금 다르지만 만만찮은 경악스럽고 황당무계한 슬픔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 남편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으며, 죽은 아들 말고는 다른 자식이 없었으니까.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던 아들 벤이 교통사고로 즉사했다는 소식도 기가 막힌데 그 아들이 자기 몰래 결혼을 했단다. 생판 처음 보는 여자가 당신이 믿거나 말거나 우리는 부부이며, 내가 그의 직계 가족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판국에 수잔은 어떻게 이성을 챙겨야 하는 걸까. 

발만 조금 잘못 디뎌도 막장드라마가 될 소지가 다분한 이 이야기감은, 놀랍게도 비탄과 상실을 극복하는 유대의 서사가 된다. 더불어 가족의 죽음을 겪은 이들이 (아마도) 공통적으로 겪는 전형적인 고통과 치유의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는 것도 이 소설의 좋은 점 중 하나겠다. 자신을 비난하고 종종 학대하기까지 하는 이유까지도. 남이나 다름없었던 사람과 가족으로서 고통을 나누며 상처를 보듬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상실에서 애도로 넘어가는 기간에 당사자의 마음에서 불어닥치는 후폭풍이 있겠거니 짐작하는 것과 실제 일어나는 감정사의 규모의 간극에 숨을 삼킬 수밖에. 
다만 개인적으로 짧은 시간에 인생을 통째로 갖다바치고 싶어지는 절절한 사랑을 하느냐마느냐 이런 이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편이어서 그게 좀 마이너스. 

덧. 제일 좋았던 캐릭터는 미스터 조지 캘러핸. 부지런하고, 솔직하고, 위트있고, 친절하고, 그리고 필요할 때는 자기 감정에 충실히 빠져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매일매일 도서관에 출근하듯 방문하는 것으로 매일 삶의 닻을 삼고 있다는 점이...

"부모님 말은 신경 쓰지 말아요. 부모님은 당신들 바람대로 행동하실 거고 그건 엘시에게 필요한 것과는 아주 다르니까. 그래서 말인데, 거기에 맞추려고 노력하지 말아요. 내가 무슨 전문가라도 돼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스티븐이 죽었을 때 사람들이 내게 해주려는 것과 내가 그들에게 원하는 바가 아주 다르다고 깨달았어요. 사람들은 우리 입장이 되는 게 너무 두려워서 언어능력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냥 흘려들어요." -242쪽 

"그런데 나를 들여보내줄까?"
그가 말한다. 그렇게 우스운 이야기도 아닌데 우리는 둘 다 웃는다. 사소하게라도 미소지을 만한 일을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강해도, 아무리 독특하고 터프해도, 세상은 반드시 우리를 무너뜨릴 방법을 찾는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 버티기다. -3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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