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갇히다 - 책과 서점에 관한 SF 앤솔러지
김성일 외 지음 / 구픽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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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상상력 끝내준다. 


세상에 없는 신선한 방식으로 찬탄하는 말을 하고 싶어도, 표현력도 달리거니와 그저 모두가 오, 진짜? 정도로 수긍 공감할 수 있게 단순히 감상을 표현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으까... 라고 쓰는 순간, 아마도 하지현 선생님 책에서 본 것 같긴 한데 '헐' '열여덟*나' 로 모든 의사소통이 다 되던 젊은냥반들의 에피소드가 떠오르면서 손이 오그라붙었다. 아... 그나마 '상상력 끝내준다'를 붙여놔서 다행일지. 저는 그 랭귀지패밀리에 끼기엔 좀 연식이 그러한지라.


아무튼...


읽을 책을 고를 때의 내 모습을 머릿속에 재생해 보면 대강 이렇다. 대체로 일단 '읽어야 할 책들' 칸에 꽂아둔 책들을 주욱 눈으로 쓸어본다. 여기서 먼저 골라 읽는 게 맞는데, 이쪽 칸에서 뽑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럼 여긴 왜 사다 메워놓느냐.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그게 의문이네요. 아마도 비어보이면 좀 쓸쓸하니까...?


그 TBR(To Be Read)칸을 지나 90도로 꺾어지게 놓인 책꽂이로 옮겨오면 이미 안쪽에 꽂아둔 책들은 책등의 존재조차 보이지 않게 사라진 지 오래고 그 앞으로 도서관에서 빌려다 놓은 책들이 빽빽하게 몸을 누이고 있다. 아이고 보는 내가 다 불편하고 좀이 쑤시네. 미안. 도서관 책들은, 당연하게도 대출기한이 있으므로 먼저 손이 닿을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 인생, 뭐가 됐든 마감이 없으면 진도가 안 나가요. 휴...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 달인가 아니면 그 전인가, 신간 프리뷰 적을 때 '오 읽고 싶어!!' 하고 핀해 둔 것인데 마침 도서관의 신간서가에 꽂혀 있더라. 이상하게 내가 읽고는 싶지만 새 책은 그만 좀 사들여야하지 않겠어? 하고 결심하고 난 뒤로(물론 결심은 깨기 위해서 하는 거고)상당히 많은 수의 관심신간들이 우리 도서관에 들어왔다. 

어머 이거슨 웬 우연. 나의 지독한 공상과 기대의 헛발질이지만, 어쨌건 간에 굉장히 땡큐한 마음으로 잔뜩 빌려다는 놓습니다만, 어떤 것들은 허겁지겁 읽고 어떤 것들은 열 페이지 남짓 읽다가 도로 반납하고... 어째 식생활을 이런 식으로 했으면 소화불량에 위염 걸리기 딱 좋은데. 그런 불량한 독서생활을 지속 중이다. 이것도 무슨 큰 병이나 지독한 슬럼프라도 오지 않는 이상 쉽게 낫지 않을 중병 같아 보인다. 


이게 다 무슨 횡설수설인지, 또 각설을 한 번 더 하고 


<책에 갇히다>는 개중 끝까지 다 챙겨 읽었고 재미도 쏠쏠하니 챙겼다. 실속 있는 독서였다고나 할까. 앤솔로지는 늘 카달로그처럼 읽는다. 오해가 있을까봐 덧붙이자면 저는 카달로그를 그 옛날 영단어 공부하듯 집중 정독하면서 읽는 스따일입니다. *-_-* 

상품 카달로그가 그렇듯 어머 이건 사야해(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야겠다), 괜찮지만 내 스타일 아니네(이걸로 끝), ... 그리고 뭐 기타등등, 그런 것이다(잔인한 말은 무조건 생략해야한다). 


책과 서점 그리고 이야기에 대해 쓴 이야기들은, 픽션이건 논픽션이건 무조건 읽을 수밖에 없다. 이건 나한테만 있는 병은 아닌 것 같지만, 내가 좀 유난히 혹독하게 걸린 것은 맞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아이디어는 정말이지 발군이다. 특히 우리가 고전의 반열에 올린 작품들이 부족 탄생 설화가 되어있는 세계의 이야기, 종이책 대신 살아있는 책이 되어 인권이란 게 없는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인간책의 이야기, VR책의 주인공 실종사건 이야기. 이 단편들은 기막힌 아이디어의 승리였고 물개박수를 쳐줄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가 마음을 준 이야기는 <켠>이었다. 나는 헌책방 이야기도 좋아하고 우리가 흔히 별 자각없이 아무렇게나 쓰는 말들에 뽀얗게 쌓인 먼지를 닦아 반질반질하니 윤을 내고 원래의 색을 입혀주는 단어발굴가(누가 사전덕후 아니랄까봐)를 발견하면, 그냥 막 마음이 다 노글노글해진다. 


이런 책들은 번역돼서 지구상의 적고적은 우리 동족들도 많이 읽었으면 좋겠지만, 내가 제일 좋아했던 이야기에 이르러서 이건 안되겠구나, 자포자기의 심정이 된다. 이 미묘한 말과 뜻의 맛을 살리는 건, 이건 번역이 안 되겠지. 앨리스나 팬텀 톨부스가 우리말로 번역됐을때 니맛도 내맛도 아닌 밍숭맹숭한 텍스트가 되어버린 것과 똑같겠... 


뱀발_

갑자기 궁금해져서, 이 텍스트를 그대로 카피해다 파파고에 한 번 넣어보았다. 파파고의 영작 실력은 50점 주고 싶었... 

조승연 작가가 오래전에 어디 방송에서였나, '번역기 성능이 좋아진대도 우리가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뭐 이 비슷한 강의를 했었는데, 맞는 말이다. ㅋㅋㅋㅋ 오밤중에 포복절도했음. 특히 'nyangban'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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