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안네의 일기』는 가방에서 꺼냈다. 잠들기 전에『안네의 일기』를 읽는 것이 오랜습관이었다. 어느 부분을 얼마만큼 읽을지 정해놓은 것ㅇ느 아니다. 그날 우연히 펼친 부분 한두 페이지, 혹은 하루 분량의 일기를 소리내어 읽었다.

어쩌다가 이런 습관이 생겼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안네의 일기』는 어머니의 유품이다. 어머니는 내가 열여덟 살 때 돌아가셨다.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세상에는 잠들기 전에 성서를 읽는 사람이 꽤 많다. 그런 사람들의 심리와 비슷할 거라고, 호텔의 침대 옆 서랍에서 성서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물론 어머니는 신이 아니다. 다만 의식이 육체를 떠나기 직전 먼 곳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와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그 회로가 닮았다는 것이다. -18쪽


조금씩 형태는 달라져도 본질적으로 같은 효과를 위해 만들어진 일상의 리추얼이란 것이, 의외로 머리를 기울이고 기억을 쏟아보면 한두개쯤 바닥에 데구르르 굴러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문단이었다. 


노파를 상징하는 물건이 달력인 것처럼 주인공을 상징하는 물건은『안네의 일기』일 것이다. 그의 삶에서 반복적으로 닻을 내렸다 감아올렸다하며 구둣점을 찍어주는 상징물이니까.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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