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가 자연스러워지는 쿠킹 클래스 - 요리에 서툰 사람들과 함께한 '진짜 요리' 이야기
캐슬린 플린 지음, 최경남 옮김 / 현암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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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하고싶은 말.


캐슬린 플린의 글을 읽으면 이 사람의 요리를 맛보고 싶어진다.

요리로 치면 과한 재료나 특별한(그래서 호불호가 아주 뚜렷하게 갈리는) 향신료 없이 담백하고 그냥 누구나 집에서 일상적으로 만들어 먹는 아주 평범한 것인데 그 평범함은 아주 단단히 다져진 기본기 밑에서 우러나오는 생활에 익은 평범함이다. 그런고로 아무나 이렇게 쉽게 쓰겠다 싶겠지만 이렇게 직업일상적으로 요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그런 맛이 있는 글이라고 해야할지도. 

요리하면서 글도 쓰는 사람들의 문장에는 공통적으로 칼로 도마를 균일하게 두드리고 지나가는 소리와 강불에 시어링하는 소리가 배경음으로 앉아있는 바람에, 몇 장 읽지 않았는데도 허기가 져서 뭔가를 입에 집어넣고 와삭거리는 배경음을 자체삽입하고 읽는 때가 종종 생긴다. 맛있는 책을 맛있게 읽는 비법이라고나 할까.


플린은 어느 날 마트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모녀의 카트에 온통 마음을 뺏겨 은밀히 그들을 스토킹하며 무엇을 카트에 집어넣는지 면밀히 관찰한다. 그 카트 안에 들은 것으로 말하자면 굳이 주워섬길 필요도 없이 온통 인스턴트 식품. 이를테면 인스턴트 매쉬 포테이토라든가 냉동 라자냐라든가, 한마디로 초가공식품이다. 요리를 업으로 하는 플린의 가치관으로 판단할 때 '음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카트였던 것. 그러다 드디어 그 쇼핑객이 닭가슴살 한 팩을 집어넣으며 '비싸다'고 중얼거리는 순간 플린은 잽싸게 '한 마리를 사는 게 훨씬 더 싸요' 라고 참견할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


마트에서 만난 그 여성도 요리를 할라치면 자신감도 기술도 부족한 것이었다. 그녀는식재료를 저녁으로 바꿀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고 그 결과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제한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요리를 할 수 없다고 하면, 이익을 최대한 많이 남기는 데만 관심을 보이는기업들에 휘둘리도록 자신을 몰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39쪽


플린이 제정신이 아닌 여자라고 생각했던 모녀 쇼핑객은 그녀의 오지랍에 감사하며 마트를 떠나고 이 만남을 통해 어떤 아이디어를 얻게 된 그녀는 결국 자칭 요리무능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모아 무료 클래스를 연다. 와우... 이쯤되면 보통 오지랍은 아니고 사명감을 등에 둘러업은 혁명가라도 봐도 되겠다. 


적어도 초가공식품에서는 탈출해 보겠노라 원대한 야망을 품은 아홉 명의 여성이 팀이 되어 칼질부터 배운다. 아줌마 경력 16년차인데 나도 이 첫날의 기본 수업에서 칼을 다루는 기본 중에 처음 배운 것이 있었다. 하루 세 번 밥상 내고 치우는 게 주요업무인 나조차도 이랬는데 부엌일과 친할 시간이 없었던 분들은 어떠하리... 


"이렇게 해보세요. 여러분의 냉장고를 열고 서로 잘 어울릴 것 같은 재료 세 가지만 골라보세요. 여러분이 신뢰하는 요리법 사이트에서 그 세 가지 재료를 넣고 검색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결과물이 끔찍하다고 한들 그냥 한 끼일 뿐이랍니다." -321쪽


이런 사소하지만 중요한 팁들... 소중하다... 내 경우엔 부추라든가 상추라든가 여하간 대략 어마무지한 양으로 사게되는 채소들을 구입하기 전엔 그것들로 응용가능한 음식이 뭐가 있는지 얼마의 끼니 간격을 두고 그것을 상에 올릴지 미리 밑그림을 쫙 그려본다. 이를테면 오징어를 채썰어 넣어 부친 부추전이라든가 양파채와 함께 버무린 겉절이라든가 오이와 서걱서걱하니 버무린 송송이같은 김치라든가 그러고도 남으면 바지락 한 봉다리 부어넣고(해감 필수) 도로록 끓여 부추를 종종 썰어 휙 흩뿌려서 삼남매에게 돌리면... 끝난다. 드디어 그놈의 부추를 (쳐)부수는데 성공하는 것이다... 이 사전계획이 귀찮기 짝이 없지만 굳이 이러는 건 매번 새들새들해진 부추 반 단을 버리는 데 이골이 났기 때문이고 양심의 가책도 더불어 따라왔기 때문이다. 너 부른 적 없는데... 그런데 이걸 보는 순간 유레카 했다. 이런 건 생각 못해봤는데!


요리는 그저 한 가지 행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이 아플 때 가져다준 치킨 수프는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보살핌이다. 생닭을 사서 처음부터 만들었을 때 전해지는 메시지는 통조림과는 완전히 다르다. "당신은 소중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회복을 돕기 위해 시간을 들일 정도로 당신에게 마음 쓰고 있습니다." 웃음과 마찬가지다. 통조림 속에 박제된 수프의 의미는 다르다. -342쪽


누구나 다 알지만 선뜻 가까운 '남'을 위해 기꺼이 요리해주기가 쉽지 않은 시대여서 그런가, 이 집 식구들 먹이는 것도 고달픈데 뭘 남의집까지 살펴... 싶기도 하지만 여전히 가까운 이웃들을 위해 원래도 큰 손 더 넉넉하게 써서 뭔가를 만들어 나누는 일은 기분이 썩 좋다. 고마워해주고 맛있다 해 주면 더 좋고. 다행히 내겐 친언니같은 인심 좋은 이웃 언니가 있어서 곧잘 된장이라든가 김치라든가 이런 걸 얻어먹기도 하고 나는 대신 간식거리를 만들어 나누는 식으로 되갚기도 하는데 이런 나눔의 식문화가 많이 사라진 건 좀 아쉽다. 나만 아쉬운 것 같기도. 


예측가능한 결말이지만 캐슬린 플린의 수제자들은 다행히도 모두 그럭저럭 끼니 연명을 위한 생존 부엌일의 레벨을 넘어서서 제법 요리를 즐기고 손님 초대도 그럴듯하게 해낼 정도로 레벨업을 한다. 뿌듯하시겠지만 왜 나는 여전히 그 비용이 걱정되는 것인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끝까지 기억나는 것 두 가지. 


스스로 할 수 있는 생산적이거나 건설적인 활동이 있을 때 인간은 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할 수 있다는 거. 

요리 교실을 열었던 장소가 에어컨이 없어 너무 더운 나머지 스탭들이 종종 워크인 냉장고에 틀어박혔다가 나오곤 했다는 거... 이거 너무 신박하지 않습니까? 일반 가정에는 택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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