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작가의 글에서였나 김중혁 작가의 글에서였나. 아니면 둘 다 아닌 다른 사람의 글에서였나. 이런 문장을 (당연히 똑같지 않다) 본 적이 있다. 제목을 달고 글을 한 편 완성하고 나면(읽을 만한 글이건 아니건 간에) 처음 붙여놓은 제목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의 글이 되어 있다고. 나도 제목을 일단 붙여놓고 키보드를 오가고 있는데, 분명 최후의 엔터를 누르고 난 뒤에는 다시 곰곰히 제목 칸의 공간에 대고 마우스를 클릭한 뒤 백스페이스를 지긋이 누르고 있을 것이다. 매번 그랬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거라는 걸 안다.
갑자기 이런 내용을 적은 이유는 단순히 오늘 있었던 작은 일 때문이다. 막내가 일기 숙제를 받아 왔다. 이 아이는 제대로 일기를 써 본 적이 없다. 머릿속에 일기라는 개념이 아주 애매하게 뭉실뭉실하게 몰캉거리면서, 덩어리지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일기를 어떻게 써야 하냐고 울상을 지은 채 짜증을 부렸으니까. 그 짜증은 나는 모른다에 다름 아니었다.
나는 전형적인 일기를 대단히 혐오하는 사람이므로, 그냥 오늘 네 머릿속에 떠올랐던 생각이든 기분이든, 아니면 사람이건 사건이건 그 무엇 하나를 붙잡아서 쓰면 된다고만 알려 주었다. 아이는 본인이 갖고 있는 애매한 정의 못지않게 모호한 엄마의 설명을 굉장히 고민해서, 제나름의 일기를 써내었다. 그리고 성인이 된 나도 여전히 그러하니, 아이인들 말해 무엇할까. 제목과 내용의 불일치는 심각했다. 제목을 먼저 단 탓이다. 그런데 그 불일치를 탓하는 게 옳을까? 제목과 내용이 불화하고 있을지언정, 그 내용을 끌어낸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제목인데.
나는 일기 쓰기가 세상에서 제일 고역인 국민학생 시절을 지낸 경험으로 미루어, 아홉 살 어린이가 한 장의 일기 페이지를 꼭꼭 메워 쓰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아주 잘 안다. 엉뚱한 내용을 끌어낸 그 제목을 지우라고 하고 싶지 않다. 어쨌거나 쓰기의 불씨를 당겨 준, 고마운 제목이 아닌가. 그런데 선생님은 뭐라고 할까? 이것을 고치라고 해야 할까, 그냥 두라고 해야 할까? 내 나름의 교육 철학은 내버려두라고 외친다. 그러나 사회생활에 숙련된 이차적 자아는 갈등한다.
이 갈등에서 비롯한 불편하고 긴 침묵은 아이에게 '내가 잘못한 게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아이는 다시 쓰겠다고 노트를 빼앗아가려 하고, 그 순간 작은 전쟁이 끝나고 나는 단언하다. 잘 썼다, 이 이상 잘 쓸 수는 없다. 아이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나를 쳐다본다. 그래서 짐짓 목소리를 한 톤 깔고 덧붙인다. 일기는, 누가 잘 썼다 못 썼다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선생님은 뭐라 안 하실 거야. 엄마의 목소리에서 평온을 찾은 아이는 진짜? 그러고 웃는다. 애는 애다. 제 엄마 말 머리와 꼬리가 휘딱 뒤집혀 붙은 꼬라지를 전혀 눈치 못 챈다. 이제 나는 자책한다. 이 머저리야, 생각을 좀 하고 말을 해.
그리고 대강 오늘의 사건일지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또 갈등한다. 아, 솔직할까 말까. 한 번 더 앞뒤 안 맞는 맺음을 할까말까. 딱 한 번만 고치지 않고 그냥 두어본다. 제목은 저렇게 달고 시작했다. 그리고, 본문에서 증명했다시피 제목과 아무 상관없는 글이 되었다. 그런데 은근히 재미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