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
루스 호건 지음, 김지원 옮김 / 레드박스 / 2017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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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책을 읽은 건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둘째가 완전히 제대로 꽂힌 시리즈가 있는데, 이 책은 알라딘에서 취급을 안 해서 (시리즈 중에 몇 권은 있기도 하더라만 너무 비싸...) 다른 곳에서 주문하곤 합니다.. 타이틀 The Keeper of Lost (Cities)를 입력하려고 하는데 lost까지 입력하고 나니 자동검색으로 뜨는 목록 중에 이 책 The Keeper of Lost Things 이 있더란 말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리뷰가 좋았... 표지도 예뻤어요(표지에 잘 낚이는 1인). 물론 원서와 번역서 표지는 좀 다르긴 하지만 번역서 표지도 예쁘긴 하고요. 잃어버린 뭔가를 지키는 사람들은 왜 이다지도 많은가... 새로 등장한 출판계의 클랜인가 (이쯤 해둬야겠). 같은 쓸데없는 생각은 접어두고요. 


제목을 입력하고 잠시 기다려보니 역시나 번역서가 있습니다. 가끔 읽고 싶지만 원서를 읽기가 귀찮아서 (읽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걸 어쩌겠어요) 있을까 궁금한 손가락을 두드려보면 놀랍게도 상당히 많은 책들이 번역돼 있는 걸 발견하게 돼요. 안타깝게도 얼마 못 가 절판이 되고요. 그 많은 책들은 어디에 묻히게 될까... 잊혀진 책들의 지킴이는 없을까... 아, 상상이 망상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단계가 코 앞이라 그만둬야겠습니다. 


아무튼- 


주인공일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초반에 황망(하지는 않고 뭐 정황상 예상은 됩니다만)하게 책 속 세상을 떠나버리고 조연인 줄 알았던 실제 주인공이 쭈뼛거리면서 중앙으로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소설가인 앤서니 퍼듀는 약혼자가 일찌감치 세상을 뜬 뒤 혼자만의 삶을 이어갑니다. 그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취미랄지 기행이랄지... 를 갖고 있어요. 누군가가 잃어버린 물건들을 주워 보관하죠. 물건을 발견한 장소와 날짜, 시간을 메모한 노트를 덧붙여서 거대한 분실물들의 박물관과 같은 곳을 만든 셈입니다. 앤서니에게는 이 곳이 성소와도 같습니다. 그에게는 이 기행이 각별할 수 밖에 없는 가슴 아픈 이유가 있습니다. 

죽음을 예감한 앤서니는 그의 작업과 생활 전반을 보조하던 비서 로라에게 그의 전재산을 상속합니다. 그의 손에 들어온 분실물들을 주인에게 찾아달라는 무거운 부탁과 함께. 누군가에게는 그 물건을 되찾는 것이 오랫동안 망가져 있던 심장을 되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녀는 생명력으로 가득했는데 그걸 빼앗겼지. 나에겐 삶이 아직 남아 있었는데 죽은 삶을 택했고. 그녀는 아마 격분했을 거야. 그리고 마음 아파했을 거라고 로버트는 말했지. 나는 걷기 시작하고, 다시 세상을 건드리기 시작했어. 그러던 어느 날 장갑을 한 짝 발견했지. 여성용이고, 파란색 가죽에 오른손용이었어. 난 그걸 집에 가져와서 꼬리표를 달았지. 그게 뭐고, 어디서 발견했는지 써서 말이야. 그렇게 내 분실물 수집이 시작되었어. 어쩌면 내가 발견한 모든 분실물들을 구출하면, 누군가가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아끼는 것을 구출해 줄 거라고, 그래서 언젠가는 그걸 돌려받고 깨진 약속을 바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지도 몰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네. 다른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모으는 걸 멈추지 않았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그 조그만 삶의 조각들이 나에게 이야기의 영감을 줘서 다시 글을 쓰게 만들었지.


대부분의 물건들은 별 가치가 없고 돌려받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을 거라는 걸 알아. 하지만 자네가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들이 잃어버린 걸 되찾아줘서 단 하나의 부서진 심장이라도 고쳐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거야. -108쪽


로라와 함께 이야기의 다른 축을 지탱하는 다른 주인공의 인생사에서도 사람을 사람과 엮는 많은 관계의 모습들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인지하는 범위 바깥에도 다른 형태의 삶의 동반자의 모습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논픽션과 달리 소설은 살아가는 모습의 다양성과 내가 미처 몰랐지만 분명히 누군가는 갖고 있는 감정의 수많은 결들을 더듬어보게 합니다. 감정은 손길이 닿았던 물건과 환경에 녹아 스며들어 소유주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좋은 사물, 느낌이 좋은 공간이라는 말이 그냥 지어낸 말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겠고.


어떤 이야기건, 이야기의 종류에 상관없이. 그것이 꼭 뭐라고 이름붙여 분석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예요. 세상에 이런 것을 느끼고 이렇고 저런 마음들에 기쁨이나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모르고는 분명히 다를 테니까요. 세상이, 시스템이 너무나 똑똑해지고 있으니 인간은 굳이 똑같이 기계처럼 똑똑해지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인간다움을 더 연마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차별화가 별 건가요, 뭐... 


여기까지 쓰고 지금까지 살면서 잃어버린 수많은 물건들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봤는데 십수년 전에 남편 처음 만났던 날 두르고 나갔던 블랙워치 패턴의 캐시미어 머플러가 되게 기억나네요. 무려 에딘버러에서 사 온 건데, 아저씨, 남의 편, 아니면 그대 원하는대로 so called 오라버니, 내 머플러 도로 사 줘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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