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갈의 아이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11
낸시 파머 지음, 백영미 옮김 / 비룡소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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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적는 것은, 늘 어렵습니다. 

사실 리뷰가 뭐 별건가요. 그냥 무슨 책을 읽었는데 대강 이러저러한 내용이었으며, 어떤 인물들이 등장했고, 이런 인물은 있을 법하지만 저런 인물은 너무 작위적이고, 다 마음에 들었는데 요런 부분이 에러여서 실망했고 반면에 어떤 부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작가의 책은 다음에도 또 읽어볼 것이다, 아니다. 이런 골조로 쓰면 되지, 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늘 생각 같지가 않아서 일주일에 한 권만이라도 무슨 생각을 했는지 써 두자, 싶었는데 그나마도 지키는 게 무지하게 어렵습니다. 에휴, 계획만 거창한 인생. 


여하간! 그렇게 대충 모양새를 엉성하게 세워놓은 그대로 쓸 생각입니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인상적이었던 책에 대해 기록을 남기는 것이나까... 


어제 하루만에 이 책을 다 읽었습니다. 중학생 아이들이 놀자고 징징댈 리는 만무하지만, 초등2학년인 꼬마는 안 그래도 친구도 못 만나고 학교도 못 가고 갖고 놀 것도 별로 없고 심지어는 새 이야기책이 읽고 싶은데 책마저 없어서 입만 열면 엄마 놀자, 게임하자가 입에 붙어 있어서 10분도 책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 애 앞에다 넷플릭스를 켜 놓고 옥토푸스인지 옥토넛인지를 줄창 틀어주고 시리즈가 끝난 뒤에는 저리 가서 알아서 놀아! 를 외치며 파리 쫓듯 팔을 휘저어 밀어 내며 (아들 미안...) 읽었으니 페이지 터너라고 할 만 합니다. 


줄거리는 이래요.

어린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엄마는 아니지만 마치 엄마처럼 자기를 사랑해주는 어떤 아줌마와 함께 살아요. 그녀는 아이에게 절대로 남의 눈에 띄어서도 안 되고, 집 밖에 나가서도 안 된다고 다짐을 둡니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아이는 집을 벗어나서 바깥사람들을 만나고, 영문도 모르면서 뜻밖에도 어느 저택의 아주 구석방에 감금되고 맙니다. 짐승이라 불리며 짐승같은 취급을 몇 달간 받으며 실어증까지 걸린 채 감금 생활을 이어가던 아이에게 엄마와도 같았던 아줌마가 다시 나타나며 너를 구해주마 약속합니다. 그러면서 절대 말하고 싶지 않았던 누군가에게 알리지 않고서는 너를 구할 수 없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깁니다.


며칠 뒤 아줌마의 호언장담대로 아이는 짐승우리 같던 그 곳에서 구해지고 생전 처음 보는, 그러나 첫눈에 호감이 가며 절로 애정이 샘솟는 친절한 노인을 만납니다. 자기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친절하고 살가운 노인을, 아이를 구박하고 때로는 증오하는 태도로 대하던 저택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하죠. 노인은 아이의 아줌마, 셀리아가 부르는 애칭 '미 비다(나의 생명)'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하며 본인도 아이를 그렇게 부르며 아껴주고 위해줍니다. 훌륭한 교육도 시켜주며, 맛있는 음식도 먹게 해 주고, 아이에게 저택의 사람들이 함부로 굴지 못하도록 경호원도 붙여줍니다.


아이는 점차 노인이 왕과 같은 위세를 가지고 있으나, 모든 사람들이 뒤에서는 경멸하고 증오하는 것을 눈치챕니다. 마치 자기에게 하는 것처럼. 아이도 노인의 옆에서는 노인과 같은 입장이 되지만 돌아서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죠. 그리고 그 이유는 순식간에 드러납니다. 주인공 아이는 이미 140세가 넘은 노인의 클론으로서, 청소년이 되면 그에게 치명적인 장기를 내어주고 생을 거두어야 하는 운명이니까요(책 뒤표지에 이미 나와있는 내용이고요...).


여기까지가 전반부의 내용이죠. 정말, 순식간에 사람을 끌어오는 매력이 있어요. 문장이 쉽고 깔끔하고, 거창한 수식이나 비유법은 최소한으로 절제돼 있어서 외려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는 건 읽는 쪽입니다. 그런데... 클라이막스까지는 너무 좋은데 이야기의 매듭이 너무 약한 점은 조금 아쉬워요. 바람 빵빵하게 잘 불어놓은 풍선이, 어느 순간 퍽 터져야 할 것 같은데 그냥 맥없이 바람이 빠져버린 기분이랄까요. 아니면 이건 뭐지 싶은 기분인지. 이야기를 어떻게 풀지는 물론 작가 마음인데 비범한 이야기가 평범한 요정 대모가 나타나는 페어리테일처럼 끝나서 아주 조금 속상합니다. 


캐릭터는 되게 매력있어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주인공은 그럼에도 자신을 세상에 있게끔 만들었던 악인 마약왕 노인에게 대한 일말의 애정을 갖고 있죠. 왜곡되고 비윤리적인 마약왕 노인은 눈 앞에 살아있는 자신의 유년이라 여기고 왜곡된 애정을 베풀었던 클론들을 희생시켜가며 불멸을 탐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불멸을 탐한 것이 아니라 소멸을 피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마트는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

"네가 미안하다고 하면, 그 애는 용서해 줄 거야. 마리아는 착한 아이니까."

셀리아는 말했다.

"난 사과했어."

마트는 간신히 말했다.

"그런데 그 애가 그걸 안 받아 줬구나. 그래, 그런 일도 가끔 있지. 우리는 가끔은 진심을 보여 주기 위해 무릎 꿇고 엎드려야 할 때가 있단다." - 245쪽


자신은 멍청한 짐승이고 그래서 바르게 행동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 애는 용서해 즐 것이다. 하지만 탬 린은 자신을 인간이라고 불렀고 그래서 더욱 많은 것을 기대했다. 마트는 깨달았다. 인간이란 용서하기가 훨씬 힘든 존재라는 걸.

- 273~274쪽


그리고 톤톰은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는데, 마트가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것은 톤톰이 파수꾼들의 방 청소와 설거지를 도맡아하기 때문이었다. 마트는 파수꾼들이 톤톰의 출입을 허락한 것은 톤톰이 우둔해서 눈에 보이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걸 간파했다.

하지만 셀리아가 자주 말했다시피, 어떤 사람들은 둔해서 생각이 느릴지는 몰라도 일단 생각을 시작하면 아주 철저하게 파고든다. 마트는 톤톰의 말에 귀 기울이는 동안, 톤톰이 멍청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톤톰은 파수꾼들의 행동거지에 대한 관찰과 공장의 기계류에 대한 이해에서는 지적인 정신이 느껴졌다. 톤톰은 단지 자신의 의견을 갖는 데 신중할 뿐이었다. - 589~5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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