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책을 읽을 때, 우리는 '홀로'가 아니라 '함께'로 존재함을 깨닫는다. 이러한 변화가 즉각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독서를 반복하면서 우리는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또 다른 사람'이 점차 되어 간다. 독서를 통해 얻는 타자에 대한 개방적인 수용성이 없다면, 독서 공동체는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역으로, 독서 공동체의 경험은 자기 안에서 타자를 발견하는 경험을 강화한다. -242~243쪽

 

독법에는 정답이 없다. 당신은 저렇게 읽고 나는 이렇게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의 의도대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말들은 어느 정도는 오해받고 글도 오해를 받을 것이다. 오해를 줄이기 위해 내가 읽은 것을 말하고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나인 것처럼 당신도 당신이어서 우리는 같은 말도 다르게 받아들인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므로 당신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생각으로 가는 오솔길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줘서 고맙다.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참 좋겠다.

 

독서공동체는 바꾸어 말하면 포용의 공동체일지도 모르겠다. 밀어내는것보다 감싸안아 점점 더 동그랗게 퍼져 나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막연히 상상하다가 혼자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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