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예술마을로 떠나다 - 잃어버린 두근거림을 찾아
천우연 지음 / 남해의봄날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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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 이 출판사에 관심이 먼저 있었습니다. 남해의봄날로 검색해서 펼쳐지는 책의 목록들을 넘겨보면서 그 많은 책들 중에서도 이 책에 눈이 달라붙었어요. 좋아하는 게 먼저 보이고, 관심있는게 눈길을 당기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저자는 문화예술관련 프로젝트 기획 업무에 종사하던 사람입니다. 흔들림없이 자신이 선택한 길을 열심히 달려가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어느 순간 그도 '이대로 계속 가야하나, 중간점검을 해봐야 하나'를 고민했답니다. 그리고 선택한 것은 일단 멈춤, 자신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 무엇인지를 재점검하는 것.

 

글쓴이가 확고하게 믿는 것은 본인이 썼듯 '예술은 우리 삶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이예요. 예술은 효율적이지만 획일적인 현대의 삶을 위해 우리가 잘라내고 분리수거해두었던 여분의 감정들을 그대로 말라죽지 않도록 살려놓는 일종의 크고 작은 온실들입니다. 자주 살펴보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온실을 갖고 있는 사람, 내지는 타인의 온실을 간혹이라도 들러보는 사람 수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다움의 습도를 찾아주도록 적극적으로 손 내미는 것이 문화예술기획자가 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각종 문화예술축제 이름들과 행사내용을 훑다 보면, 어쩌다 드러나는 진솔한 기획의도보다 너무 속이 훤히 드러나서 보는 내가 다 민망한 수준의 전시행정에 지나지 않는 축제들이 훨씬 더 많이 보이곤 하죠. 예술을 사랑해서 이 일에 뛰어들었던 열정이 있던 사람에게는 아마도 그 현실이 더 견디기 힘들었겠다 싶어지네요. 

 

그래서 글쓴이는 일년간의 여행을 계획해요.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것을 필두로, 그 다음, 또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들끼리 모아 묶어 항목끼리 분류한 다음 세 달씩, 네 곳을 방문하여 머무르면서 그들의 생활 속에 문화예술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체험할 계획을 세웁니다. 지인이 있어 소개를 받은 것도 아니고, (본문에서 읽은 느낌으로 판단하건대) 언어가 아주 유창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걸 꼭 해내겠다는 의욕 하나로 스스로 생면부지의 타인들에게 메일로 자신의 기획과 상황과 의도를 설명하고 그 모든 일을 하나씩 이뤄나가는 과정과 그 안에서 배운 것들을 차례로 써나갑니다. 물론 본인을 굳이 끌어당겼던 그 장소들과, 그 구성원들이 함께 누리는 일상 속에 녹아들어간 예술이 어떻게 그곳만의 고유한 예술문화를 만들어 나가는지도 상세히 설명하고요.

이 책에서 다루는 모습들이 시대에 굉장히 역행하는 게 아닌가 싶을수도 있어요. 사실 요즘 누가 일일이 마을 단위로 사람들이 모조리 모여서 몇달씩 인형탈을 만들고 있겠으며, 시민예술학교라니 별반 소득도 안 될 일에 누가 돈이나 마찬가지인 시간을 갖다바치고 있을 수 있겠느냐 생각하는 게 무리가 아닐 테니까요.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의 본성도 이 시대와 명백히 역행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아닐까요. 하등 쓸데라곤 없어도 뭔가를 만드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어하고, 남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하고, 얼굴을 맞대고 수다를 떨고 싶어하고, 위로하고 위로받고 싶어하고. 노동의 댓가로 금전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져가는 사람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고. 그런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려우니 우리 모두의 시간의 일정 부분을 떼어다 삶에 윤기를 주는 시간에 나눠주는 일만이라도 진짜로, 제대로 하면 어떨까... 그런 마음을 행간에서 느꼈습니다.

당위성으로 움직이는 것은 너무 기계적이잖아요...

가능성을 보고 움직이는 것이 훨씬 인간답다고 생각된단 말이죠.

 

사회가 가진 자원을 공적으로 활용해서 어떻게 내가 속한 곳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생생한 사례들이 가득합니다. 식상하지만 생생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어디서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글쓴이가 실제 몸으로 겪고 느낀 것을 감춤없이 써내려간 책이니까요. 책을 사보는 것 정도의 소소한 응원밖에 못 하지만 역시 문화예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일인으로서, 내가 남에게 나눌 수 있는 나만의 자원은 뭐가 있던가 헤아려 보게 만듭니다. 사회가 가진 자원은 결국 수많은 '나'들의 자원이니까요. 결국 나눌 수 있는 마음이 모든 일들의 선결조건이 되나봅니다.

 

자본주의의 지향점이 어디였던가를 잠시라도 잊고 우리가 잃어비린 공동의 삶, 협업하는 삶, 쓰고 그리고 만들고 나누는 삶, 그 모습들에 향수를 느끼는 분들께도, 해외의 문화예술행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들께도, 마을공동체를 일구는 일에 대한 고민이 있는 분들께도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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