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이란 상상 이상으로 강인하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아무런 면역력이 없다.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기존의 내 가치관은 크게 흔들렸다.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들과의 만남을 지속하면서 나는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관계성의 존재방식을 배워나갔다. 각자 자신으로 존재하면서도 서로 섞이고 마음을 나눌 수 있음을 배웠다.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소설 속 방대한 대화가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서로 소통하는 기쁨을 가르쳐줬다.

그 무렵 내가 그곳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모든 지식과 교양은 사람과 사람이 한없이 가까워지기 위한 관용성을 연마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119쪽

 

타인을 이해한다 내지는 하지 못한다고 크게 가르는 것은 또다른 종류의 폭력일 수도 있다. 남을 이해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의 틀 안에 넣고 재단하겠다는 뜻일 수도 있다. A는 그러니까 A이고, B는 이래서 B다, 그냥 이렇게만 받아들여줘도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A 안에도, B 안에도 분명히 내게 걸리는 연결고리 하나쯤은 있을 거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고 좋은 일 중 하나는 나누는 것이고, 뭔가를 나누려면 내가 가진 게 있어야 한다. 가진 것이 꼭 유형의 자산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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