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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의 매 대실 해밋 전집 3
대실 해밋 지음, 김우열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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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드를 위한 변명

과제를 하려고 컴퓨터를 키고 텅 빈 하얀 화면만 바라보고 있는데 노래를 들으려고 켜놨던 유투브 창에서 버스커버스커의 "정말로 사랑한다면"이라는 노래가 흘러 나왔다. 어쿠스틱 기타와 정말 잘 어울리는 장범준의 낮은 목소리가 "정말로 사랑한다면 기다려 주세요" 라고 읊조린다. 이 노래가 들리는 순간 내가 지금 쓰려는 소설의 주인공인 스페이드와 너무나도 다른,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남자의 대사라 약간 웃음이 나왔다. 그 시절의 사랑과 지금 현재의 사랑은 같은 사랑인데도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이드에게는 장범준의 사랑이 '호구같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반대로 장범준에게 스페이드의 사랑은 '나쁜 xx'가 되려나. 둘 다 사랑을 추구하는 데, 그 추구하는 방식은 참 다르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둘 다 여자들의 열광을 받는다. 사랑에는 정해진 방식이 없는 게 아닐까? 적어도 스페이드에게 반한 여자들이 다 정신 나간 여자들은 아닐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스페이드 식의 사랑에도 장점은 있을 것이고, 스페이드는 그렇게 나쁜 xx는 아닐 지도 모른다.

 

스페이드가 살던 그 시대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참 다르다. 몰타의 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절대적인 가치라던가, 절대적인 사랑, 진리 같은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순간의 쾌락과 현실적인 효용뿐이다. 아마도 그 시절에는 '절대성'이나 '순수성'이라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시대에는 오히려, 장범준이 외치는 "사랑한다면 기다려주세요"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무의미해진 그 시대에 태어난 스페이드가 사랑을 추구하면서도 사랑을 믿지 못 하는 성격을 갖게 된 것은 필연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사랑이 당연한 것이다. 소설에서 스페이드가 브리지드에게 들려준 플릿 크래프트씨의 이야기를 통해 스페이드의 이러한 사고관은 더욱 확실해 진다. 인생의 무작위성을 인식하고, 자신이 묶여 있는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결국 플릿 크래프트는 똑같은 생활 방식을 유지한다. 애초에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려 했던 것이 무의미한 시도라고까지 볼 수 있다. 스페이드는 그러한 삶의 굴레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브리지드를 경찰에 넘기지 않고 그녀를 지킴으로써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택을 내렸다가 나중에 후회할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가치관을 바꾼다 한들, 신의 계시와 같은 그 순간을 맞이한다 한들 그는 다시금 바람둥이 스페이드로 돌아갈 것이다. 이는 바꿔 생각하면, 그 시대의 사고 방식과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스페이드에게 지금 우리의 잣대로 왜 그런 식으로 여자를 내쳤냐며 비난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우리의 가치관 역시 지금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시대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스페이드가 마냥 나쁜 xx로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불쌍하기까지 하다. 사랑 속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겨 먹었기에 정작 스페이드 본인은 항상 외롭다. 에피에게 안겨, 엄마에게 응석부리는 아이 마냥 얼굴을 부비적거리며 위로를 원하고, 아이바가 정말 광적으로 자신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도 그녀를 떼어내지 못 하고, 브리지드가 사실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걸 짐작하면서도 그녀를 돕는다.(나는 스페이드가 브리지드를 보호한 것이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녀를 버려둘 수 없어서 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스페이드도 주위 여자들에게서 시달림은 있는 대로 받지 않았는가. 아이바는 경찰에게 전화해 스페이드를 골탕 먹이려고 하질 않나, 브리지드는 애초부터 거짓말투성이었고 에피마저 위로를 받고자 찾아온 스페이드를 매몰차게 거부한다. 혹자는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그렇게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거기에 벌까지 받고 있는 금발의 매력적인 사탄을 독자인 우리는 용서해 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

 

 

2012년 2학기, 수업 때 몰타의 매를 읽고 쓴 짧은 에세이. 첫 에세이였던 만큼 오글거리는 시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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