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몬 라
빅토르 펠레빈 지음, 최건영 옮김 / 고즈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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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행한다. 미지의 세계, 동경의 세계를 향하여. 닿을 수 없는 저 먼 곳에서 빛나는 그 세계는 오물로 가득 찬 현실과 달리 청명하고 영광스럽다. 우리는 꿈을 꾼다. 현실의 기나긴 고통의 터널 끝에 빛으로 가득 찬 꿈을. 그렇게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면서 동시에 꿈을 살아가고 꿈을 살아가면서 여전히 현실 속에 존재한다

 

이 기묘한 줄다리기. 혹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고 현상계를 넘어서는 초월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눈에 보이는 것이 과연 전부인가'라는 물음은, 인간이라면 한 번쯤 하게 되는 것 같다. '오몬 라'는 그 팽팽한 줄다리기의 긴장을 여과 없이 보여 주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오몬 끄리보마조프는, 극단적으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차 확실하지 않다. 환상이 현실과 계속하여 겹쳐지고, 비슷한 모티브가 반복되어 나타난다. 마치 꿈처럼. 로켓, 별 모양 마카로니와 냉동 닭고기, 끈적끈적한 케이블, 리놀륨 바닥, 자전거, 흐릿하고 왜곡된 시야 너머로 보이는 광경, 웅웅거리는 소리, 노랫소리, 적색 선 등이 우연치고는 너무도 자주 반복되는 것이다. 낮에 본 광경이나 했던 생각이 밤에 꿈 속에 재현되듯이 말이다. 마지막 장은 시공간과 인과성을 모조리 무너뜨리고 급격히 장면전환 되는 꿈처럼 시시각각으로 요동친다. 달표면에 호흡곤란으로 쓰러진 오몬이 태연히 일어나 산소호흡기를 벗어 던질 때부터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소설이 진행되며 쌓여 온 불안과 의심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아무런 설명 없이 불쑥 정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악당에게 쫓기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것은 악몽과 너무나도 비슷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오몬의 환상이었던 것일까? 마지막에 지하철 안에서 노선도 안의 적색 선을 바라보는 오몬은 진짜현실일까?

 

책을 다시 읽어보아도 여전히 이 현실과 환상의 사이를 명확히 구분 지을 경계는 찾을 수 없었다. 오몬은 여전히 7살이고 전부 그의 꿈이었다고 해도 말이 되는 것 같고, 그가 로켓 캠프에서 꾼 꿈이라고 해도 말이 되는 것 같다. 뒤집어 말하면 전부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결국 이 소설은 는 누구인가, 그리고 이 세상은 진짜인가라는 철학적 물음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있는 것일까? 보고 있는 '' 누구인가? 그리고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나는 밖에 있는 어떤 것을 보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의 내면을 보고 있을 뿐일까? 그런데 자신의 안과 밖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107

 

그런데 사실, 이 모호함은 소설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자신의 세상을 파악하는 데 자신의 지각능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보고 느끼고 기억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 지각능력은 완전한가?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듣고 읽는 것, 이들은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쏘베트가 만든 터무니 없는 모양과 기능의 루노호뜨나 스튜디오 내부에서 촬영하는 우주 착륙 광경, 거대한 사회주의 이념의 포장으로 가려지는 가련한 개개인들의 운명은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는 다른 진실을 품고 있다. 굳이 이것을 현대사회의 미디어의 병폐로 잇지 않더라도, 즉 진정으로 정보를 왜곡하려는 '의도' 외에도, 우리의 주위에는 정보의 왜곡과 소통의 오류가 '필연적으로' 존재하여 '진실'을 향한 길을 어지럽힌다. 소설이라서 허구와 진실을 혼란스럽게 뒤섞어 놓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꿈을 꿀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신이 되고 싶어하지만 우리의 발은 지상에 묶여 있다. 몇몇은, 그래서 더더욱 신에 대한 꿈을 꾼다. 하지만 꿈과 현실이 뒤죽박죽으로 마구 섞이고 버무려지는 그 혼란의 순간,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는 그 순간 저 먼 동경의 별을 향하는 머리와 땅에 놓인 다리는 분리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 솔직히 말하면, 이 난해한 소설이 진짜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여전히 모호하기만 하다. 잡으려고 해도 낱말들은 자꾸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말았다. 다만 그 낱말들 사이를 마구 휘저어 간신히 움켜잡은 것은, 꿈과 현실의 그 모호함 사이에서 자아를 잃고 산산이 조각나는 것이 엄청난 비극이 된다는 것. 그 뿐인 것 같다.


p.s. Pink Floyd의 노래를 이 소설을 읽고 처음 듣게 되었는데, 참 이 소설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노래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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