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의 운동화
김숨 지음 / 민음사 / 201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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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래 신은 운동화를 대신하려 나이키에서 나온 저렴한 운동화를 하나 샀다. 흰색 바탕을 빈티지하게 처리하고 뒷솔기와 나이키 로고만 검정색인 그 운동화는 요즘 트렌드에는 맞지 않았지만 뭐랄까 옛스러움이 있어서 좋았다. 대충 뒷축을 굽혀 신어도 괜찮게 만든 오니츠카 타이거의에 익숙해진 발이 새 운동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데다 금세 날이 더워져 운동화보다는 샌들을 신었다. 그 운동화는 지금 신발장에서 잠시 잠들어 있다.


방학이 시작된지라, 작정하고 미용실에서 펌을 하는 동안 김숨의 『L의 운동화』를 읽었다. 세 시간 동안 글을 읽으며 '검색 욕구'를 참느라 힘들었다. 겨우 책장을 덮고 그의 운동화를 구글에서 찾았더니 복원과 전시 과정에서 얻은 많은 이미지가 있었다. 그의 흰색 타이거 운동화는 시간과 아픔을 녹여 그 시대를 담고 있었다. 그 시대를 지나는 젊은이들이 흔히 신고 있었을법한 그 운동화에 담긴 것들이 슬퍼서 우르르 쏟아져나온 이미지를 하나하나 누르고 있기 힘들었다. 소설적인 비유일테지만 그 운동화에서 어떤 유기체의 시체가 썪는 냄새가 난다는 대목이 자꾸 떠올랐다. 


이미지와 기사 중간에는 새로운 신발 광고가 자꾸만 붙어 있었고, 햇볓을 피해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사람들의 운동화들이 자꾸만 눈에 발자국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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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페미니즘을 올해의 독서 줄기로 잡고 페미니즘서를 여러 권 읽었다.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읽기로 작정한 이유는 바로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때문이었다. 그 책은 별 다섯개를 줄 만큼 재미있지 않았지만 불씨가 되었고 그 뒤로 정희진님의 글을 비롯해 여러 책을 읽었다. 그러다 리베카 솔닛의 책을 다시 만났다. 기대가 적었지만 읽어나가면서 너무 좋았다. 두 명에게 선물했다.

심지어 ˝나만의 올해의 책˝ 비소설 부문 1위 후보다. 한 편의 소재를 다시 돌리고 다시 돌려 자기 안에서 다시 만든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와의 이별에 대한 이야기지만 자신의 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여성이 쓴 소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아이슬란드 여행기이기도 하고 친구와의 연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하다. 돌고 도는 생각 속에 이야기는 점점 익어가며 알싸한 향을 풍기다 달콤한 향을 내는 과일로 익어가는 것처럼 이야기가 익어간다. 최고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싶어진다. 프랑켄슈타인도 최고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낸 그 괴물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인줄로만 알았던 나는 역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한다는건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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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의 <바디무빙>과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를 읽었다. 중혁작가(꼭 이렇게 불러야 할 것처럼 친숙!)의 책은 대부분을 읽었고 그 발랄함과 재치가 즐겁다. 특히 전혀 상관 없어보이는 것들을 얼기설기 엮어 자신만의 그물을 만드는데 능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목소리도 알고 있고 한 번은 만나서 싸인도 받고 그래서 어쩐지 `잘 아는 작가`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김훈선생(꼭 이렇게 불러야 할 것처럼 멀다)의 글은 처음이다. 그의 문장에 관한 평가와 아직도 원고지에 글을 쓴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으나 아직 책을 들지 않았다. 그냥 잘 모르는 아저씨 같은 느낌. 그의 글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는 일러 두기에 적힌 말 때문이었다. 이 책은 세 권의 에세이집에 실린 글을 추리고 정리한 것인데 그 책들의 제목을 밝히며 마지막에 ˝이 책의 출간으로 앞에 적은 세 권의 책과 거기에 남은 글들을 모두 버린다˝라고 써있었다. 자신의 글을 버리고 추리는 작가의 손길이, 마음이 보고싶었다.

두 권의 책을 함께 주문하고 번갈아가며 함께 읽으니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중혁작가의 몸에 대한 이야기와 김훈선생의 몸에 대한 이야기는 겹쳤다 멀어졌다 하며 내 속에서 다양한 그림을 만들어냈다. 젊은 작가와 연륜있는 작가, 멀티미디어에 강한 작가와 원고지를 쓰는 작가, 쓰면서 부단히 다른 작가의 책을 언급하는 작가와 다른 작품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작가. 비교점도 많다.

- 더 긴 글을 적었으나 너무 개인적인 감상이라 버린다. 다만 깐깐한 신문기자 같은 김훈선생의 소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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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아작에서 내놓는 SF 시리즈는 표지가 아주 예쁘다. 체체파리의 비법도 표지가 예뻤는데. 이것은 개인의 취향인가! 아작에서 나온 책들을 죽 늘어놓고 보면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쉬!˝를 외치고 싶을 듯. 표지 때문에 읽은 것은 아니고, 하인라인의 SF를 경험하고자!

소년의 우주에 대한 동경을 바라보는 어른의 관점(독자와 등장하는 어른들), 어른에 대한 반감과 소년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어른(주인공), 모든 것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엄마같은 존재(엄마생물), 함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자신감과 패기로 해내는 어린 소녀(피위)까지. 다양한 관점을 읽어낼 수 있어 좋다. 과학적 사실과 과학적 상상력이 잘 만나는 괜찮은 청소년 SF.

- 엄마생물이 여성이 아니거나 `거의` 아니라는 사실을 내가 언제쯤 알게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엄마라는 존재가 되는건 태도의 문제이지 생물학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 이우니오는 내가 자신에게 동의해주고, 모욕을 모른 체해주거, 그를 존중해주는 동안에는 즐거워했다. 많은 어른들이 이런 걸 원했다. 심지어 39센트짜리 땀띠약을 살 때조차 말이다.

특히 명왕성에 대한 미국인의 집착과 명왕성을 발견한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 속에 잘 녹였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우주복에 대한 묘사가 좋다. 인류의 존재 이유와 그 가치에 대한 주인공의 시각은 어른들의 그것에 비해 진지하다기 보다 두려움을 내보인다. 누군가는 짧은 서평에서 작가가 독자를 너무 가르치려 들어 반감이 느껴진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우왕좌왕하는 주인공의 생각과 당황하는 모습을 보았다. 에필로그가 너무 잘 다듬어진 이야기라 차분하게 정리되지만, 중간중간 챕터를 뛰어넘는 방식은 우주의 거리를 느끼게 하는 지점이 있어 좋다.

역자는 거리 환산에 대해 걱정했지만, 그런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국 우주는 너무나 커다랗기 때문이다. 최근 소설이 아님에도 최근의 어투와 단어들이 섞여있어 학생들이 읽기에는 좋게 번역되었다. 나쁘지 않다.

하인라인의 정치적 견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작가의 정치적 견해와 그 작가를 분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창조해 낸 세계는 부딪혀 토론해 볼(상상일지라도) 가치가 있다. 정치적 견해가 없는 작가보다는 나와 다르더라도 그걸 갖고 있는 작가의 작품이 더 좋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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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to Read 에코백 때문에 장바구니를 비울 수 밖에 없었어요. 비틀즈 머그컵은 어쩌지 •_• 하아. 방학을 위한 책장 채우기가 도를 넘어서지만 않도록. 하지만 오늘 받은 쿠폰으로 또 뭔가 사고 있을것만 같은 이 느낌!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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