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진짜 아이들
조 월튼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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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수 만 가지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지금. 나는 어떤 가지의 끝에 매달려 있는 것일까. 당장 짧은 말다툼으로 상처입고 공고했던 나의 세계가 내가 모르던 나로인해 흔들린 오늘, 멀미처럼 잠이 오지 않았고, 멀미약을 마시듯 쉼없이 그녀(들)의 삶을 읽었다. 나는 우리 집에 누워있지만, 내 침대 끝에 오늘의 차트가 걸려있다면, ‘매우 혼란스러워 함‘이라고 적혀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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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도란스 기획 총서 1
정희진 엮음, 정희진.권김현영.루인 외 지음 / 교양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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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격전지는 여기. 서문에 등장하는 ‘서울, (중산층), (젊은), 이성애자, 고학력, 비장애인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2016년, 한 달에 한 권 정도는 페미니즘 관련서를 읽어 보자 하고 시작한 책 관련 공부줄기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그 여름에 폭탄처럼 터지기 시작한 페미니즘서 출간 분량을 따라갈 수가 없을 뿐. 그 과정에서 이래저래 상처받고, 주위 사람들의 생각과 반응에 혼란스러웠음도 사실이다. 그래도 페미니즘 SF에 해당하는 번역을 환영하며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상을 수상했다는 SF 번역서는 꼭 챙겨보고, 책 살때마다 관련 신간이 얼마나 나왔나 챙겨본다. 공부하는 책읽기의 한 줄기인데 공부도 취향에 자꾸 치우친다. 읽기 편한 책에 기대는 중이다. 가늘게라도 공부해야지.

1월의 줄기는 <이갈리아의 딸들>, <라비니아>,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나의 진짜 아이들>(여기까지는 픽션류), <거리에 선 페미니즘>, <싸울수록 투명해진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대한민국 넷페미사>, <여성혐오, 그 후>이다. ‘여자 말을 잘 듣자‘가 어떻게 권력적인 말이 될 수 있는지 은유님의 책에서 시작된 생각이 ‘남녀가 평등하다‘는 말이 어떻게 권력과 폭력이 되는지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에서 이어진다. 한 저자가 긴 분량으로 써내려간 글이 아니라 호흡이 조금 짧지만, 머리를 때리는 시선이 가득하다. 도란스 기획총서가 계속 좋은 시리즈를 내주면 좋겠다.

이제까지 서구 페미니즘 이론이나 한국의 여성주의에서나, ‘양성‘은 집단으로서 남성과 집단으로서 여성의 존재를 전제해 왔다. 남성/여성 집단 안의 개인들의 차이와 남성과 여성의 개념 자체를 문제시하는 성적 소수자의 정치학이 등장하기 전까지, 페미니즘은 양성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나 인간을 양성으로 나눈 ‘판단자‘는 조물주나 자연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다. 다연히 양성개념은 변화할 수 있고 검토할 수 있는 사회적 산물이다. 더구나 양성 개념으로는 대부분의 ‘여성 문제‘가 해석되지 않는다. (23)

사람들은 ‘여성의 해‘ 제정과 같은 일이 여성에 대한 특혜라고 생각한다. ˝여성부는 있는데 남성부는 없다.˝는 식이다. 성의 구별이 ‘사회적 억압 제도‘가 아니라 단지 ‘대칭 집단‘이라는 사고방식은, 최근 몇 년간 온라인을 중심으로 싱을 부린 극심한 미소지니 현상과 이에 대항한 여성들의 대응을 ‘남혐‘으로 명명함으로써 절정을 맞았다.(24)

넥슨 성우 교체 사건 이후 메갈리아 반대 전선은 대동 단결했고, 근 1년간 지속된 메갈리아 성립과 경과,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한 논의는 순식간에 여혐과 남혐이라는 이분법으로 환원됐다. 이에 SNS에서 기본적인 페미니즘 구호에 실제적인 위협을 가하지 말라는 ˝#내가 메갈이다˝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메갈리아를 일베와 더불어 남녀 혐오 세력이라고 대칭적으로 인식했다(141)

조혜영이 짚어냈든 메갈리안들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가상 세계로 이동한 게 아니라 정확히 반대로 온라인에서 현실 세계로 강력하게 개입해 들어간 것이다. 이 때문에 ‘나쁜 미러링‘의 목록을 수집하고 이것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꼽는 것으로 여성들에게 재갈을 물릴 수는 없다. 메갈리아를 일베보다 더한 이 시대의 최악으로 꼽는 이들은 ‘메갈‘의 실상을 드러낸따는 사건, 사고를 수집하고 나열하는 데 골몰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제공하는 관련 사실, 즉 ‘팩트‘는 의심할 여지 없는 지식이라고 빋는다. (...) 결국 이 데이터 다발이 양적으로 상대를 굴복시킨다는 ‘팩트 폭력‘이나 ‘팩트 폭격‘이 되고, 때로는 자기 확신을 거쳐 집단신념이 된다.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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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참치 2017-02-08 0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써주신 문장 문장이 공감되고 앞으로 어떤 책들 읽으시는지 지켜보고 싶어서 친구신청 드렸습니다. (이런 기능에 익숙하진 않지만요) 요즘에는 페미니즘 책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네요. 저는 페미니즘에 대한 기반도 없고, 학술적 읽기에 너무 빨리 지쳐버려서 매번 구입을 망설이는데, 책을 고르는 데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해의눈물 2017-02-08 08:2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SF와 페미니즘과 교육과 과학책 줄기를 따라갑니다. 기반없이 학술적 읽기는 정말 지치죠. 그래도 머리를 때려주는 책들이 많이 나와주어 좋습니다. 페미니즘 책읽기가 더 다양해지고 선택의 폭이 넓어진 건 좋은 일인 것 같아요. ^^
 

배명훈 작가의 글은 따스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어딘지 모르게 멀고도 가깝다. ≪예술과 중력가속도≫에는 버릴 수 없는 단편들이 모여있다. <스마트D>는 물론이고 <조개를 읽어요>도 정말 좋다. 누군가는 그의 글을 하드 SF로 분류하지만 나는 따뜻한 SF로 분류하고 싶다. 과학적 소재, 냉철한 사유와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의 치열한 삶을 볼 수 있는 과학소설이 아니라, 어딘가 흐느적거리면서 어쩌면 조금은 여유있는 모습으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그의 주인공들이 좋다. 그 주인공들의 세계가 조금 SF와 이어질 뿐인 것 같은 느낌. ≪안녕, 인공존재≫의 <크레인 크레인>과 <누군가를 만났어>도 따스하면서 과학적이기도 아니기도 한 그 분위기가 좋다. 외국 작가들의 번역 SF에서는 볼 수 없는 이 작가만의 분위기. 단편집만 보다가 이번에는 장편 ≪은닉≫에 도전한다. 배명훈 작가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목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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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핀 테이(조지핀 테이)에 관한 이야기는 엉뚱하게도 <판다의 엄지>에서 보게되었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언급한 작가의 책이라니! 읽고 싶다!!를 외친다. 왜 이 작가를 몰랐지? 뒤적뒤적 마침 전자책으로 나왔길래 <시간의 딸> 부터 보았다.

영국의 역사에 대해 전혀 감이 없었지만 범인을 쫒다 맨홀에 빠져 입원한 형사라니! 그가 침대에 누워 옛날 영국의 왕 리처드 3세의 범죄에 관해 이런 저런 추리를 한다. 하루 종일 침대에만 누워있지만, 앨런 그랜트라는 이 등장인물에게 반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편견과 그것을 침대에서 차근차근 뜯어내듯 벗겨내는 형사의 통찰이 즐겁다. 왜 영국의 추리작가 협회에서 선정한 시대초월의 미스터리인지 알 수 있다. 인물을 참 잘 만드는 작가다. 그의 상황과 주변과 그 주변을 살피는 모습을 잘 겹쳐서 인물을 채색한다.

그 재주는 <루시 핌의 선택>에서도 두드러진다. 주인공이면서 사건을 지켜보는 외부인인 루시 핌 외에도 여학생들의 면면이 읽는 내내 즐겁다. 영국의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주인공들이 또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짧은데도 잔잔한 느낌의 추리와 해결.

다음은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을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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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28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Book] 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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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줌파 라히리를 사랑한다. <그저 좋은 사람>의 헤마와 코쉭 연작을 특히 사랑한다. <축복받은 집>의 피르자다씨도, 센 아주머니의 집도,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도 사랑한다. 그녀의 세상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과 어쩐지 차가워 보이는 듯 따뜻한 문장을 사랑한다. <저지대>에서는 그 시선이 조금 더 폭넓은 세상을 향하고, 조금 더 긴 시간을 바라본다. 쌍둥이와 같은 형제와 그들과 결혼하게 된 여자와 그들의 딸과 다시 그녀의 딸. 다루는 시간이 긴데 마치 어제인듯 바로 어제인듯 고무줄처럼 시간을 마지작거린다. 따뜻하고 슬프고 가라앉는다. 나를 굴러가는 바퀴에서 빼냈다가 다른 자리에 얹어놓는 느낌. 다시 줌파 라히리를 사랑하게 된다. 조금 다른 위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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